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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친절한금금 Oct 05. 2024

엄마와 싸웠다

N잡러 전업주부의 위기

큰 소리로 엄마와 싸웠다. 네가 옳다 내가 옳다를 우겨가며 몇 번의 줄다리기를 한 끝에 "전화하지 마"라는 말로 통화가 종료되었다.


친정엄마와 싸우는 건 흔한 일이 아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기숙사 생활을 했기에 한 달에 한두 번 볼까 말까 한 딸을 엄마는 손님처럼 귀하게 대했다. 매일 보지 못하기에 작은 실수정도는 가볍게 넘어가며 웃음으로 넘어가는 사이좋은 모녀지간이었다. 성격이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여유와 인내를 타고난 나 역시 엄마에게 구구절절이 힘든 상황을 이야기하지 않았다. 일이 모두 해결되고 난 후에야 "사실은 엄마, 지난번에 이런 일들이 나를 힘들게 했었어"라고 웃으며 이야기하곤 했다.


싸움은 언제나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다.


엄마는 명절을 맞이하여 평소 소중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햅쌀을 돌리셨다. 문자로 쌀이 도착했다는 연락을 받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상대방에게 어떠한 연락도 오지 않는 상황이 되자 엄마는 걱정이 되셨나 보다.


"택배문자에는 어제 분명히 배송완료라고 했는데, 왜 잘 받았다고 연락이 없지? 무슨 일이 있나?"


엄마는 문자와 달리 상대방에게 닿지 않았을까 봐 걱정했다. 뻔히 엄마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면서도 나의 대답은 삐딱선을 탔다.


"선물했으면 그만이지 왜 연락을 기다려요"


선물을 하고 마음 졸이는 엄마의 모습에 속상했을 뿐인데 마음과 다르게 발 없는 말이 화살처럼 엄마의 마음에 꽂혔다. 말도 안 되게 엄마와 언쟁을 벌이고 몇 분뒤 그분에게 연락이 왔다. 햅쌀을 너무 잘 받았았다고. 상대방도 바쁜 사정이 있어서 당장 연락을 못했던 간발의 몇 분 차이에 엄마에게 깊은 생채기를 남겼다. 


택배는 잘 도착했고 상황을 엄마에게 전달했으니 별 일이 아니라 여겼다.


"엄마, 잘 받으셨데요"


이 한 마디면 될 줄 알았다. 햅쌀이 도망가지 않고 잘 전달되었으니 엄마의 마음도 안심이 되었을 것이라며 일상으로 돌아갔다.


다음날, 정신없는 등교 시간에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요새 힘든 일 있니?"


평소라면 "아니야 그런 일 없어"라고 했을 텐데 그간 힘들었다며 짜증 나는 어투로 엄마에게 속사포로 말을 쏟아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받아주는 엄마라고 생각했었는데, 찬물을 뒤집어 쓴 것 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힘들다고 상대에게 말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어제 엄마는 잠 한숨 못 잤어"


심각성을 파악하지 못하고 등교 전쟁으로 어질 하던 머리에게 징이 울렸다. 엄마의 경고였다. 호탕을 웃음을 지니고 뭐든 받아 줄 것 같은 친정 엄마다. 하지만 잘못된 순간에 단호박 자르듯 단호하셨다. 어리광 섞인 짜증을 넘어선 나의 태도에 엄마는 오랜만에 쓴소리 담긴 회초리를 드셨다.


엄마가 전화를 안 받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일을 하시는 분이라 오전 시간에 연락이 잘 닿지 않는 것은 알지만 이 정도로 연락이 안 될 줄이야. 애간장이 타들어갔다. 더 이상 졸이다가는 검게 졸아붙어 내 마음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았을 때, 엄마가 전화를 받았다. 다행히 엄마의 목소리에는 화가 식어있었다. 머릿속에서 온갖 안 좋은 상상을 했던 것과 달리, 엄마는 본업을 하시느라 정말 바쁘셔서 못 받으셨다. 도둑이 제 발 저려 안절부절못했던 걸 보면 내가 힘들어서 엄마에게 짜증을 낸 것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나 추석에 친정을 방문했다. 단 둘이 있게 된 짧은 시간 엄마가 등을 두드리며 말씀하셨다.


"무리하지 마"


현재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정확히 모르시지만 아이를 키우고 집안일을 하는 것 외에 딸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며 정신을 쏙 빼놓고 사는지 알고 계셨다.


이 일이 있기 전까지도 생각해보지 못했다. 명함을 꺼내기 민망하지만 전업주부로 살면서 N잡러의 삶을 살아가며 부대껴하고 있는 내 현실을 자각했다.


아이의 여름 방학 동안 매일 블로그 포스팅을 하고 체험단 활동까지 다. 노력하면 방문자수가 수직상승할 거라는 기대에 찬 열의로 매일 포스팅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공짜로 체험을 하는 게 아니기에 업체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성심껏 글을 쓰는 일은 은근한 스트레스였다. 좋아서 일상을 기록하던 이전과 다르게 책임감을 가지고 글을 쓰는 일이라 알게 모르게 부담이 되었다.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말은 진리였다.


올해는 강사로 서야 할 일들도 많았다. 전공분야였던 재생종이 수업을 포함하여 디지털 드로잉 강의를 몇 차례 했다. 누군가 앞에 서서 지식을 전달하는 일에 막중한 책임을 느꼈기에 수업 전 많은 고민을 했다. 고민한 만큼 준비에 충실하고 싶었지만 가정 일을 하면서 시간을 빼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번에 두 가지를 해내는 워킹맘들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솟아났다. 오전에 픽업과 살림을 하고 오후 아이들 숙제를 봐주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질 체력이 원망스러울 뿐이. 


주변에 열심히 사는 분들을 동경했다. 작가처럼 글을 잘 쓰는 분, 유입자 수가 많은 인기 블로거, 그림을 잘 그리시는 분, 강의가 천직인 것처럼 일하는 전업 주부들과 함께 성장하는 모임을 가지다 보니 황새 쫓아가다 가랑이 찢어진 꼴이 된 것이다.


"무리하지 마, 어차피 돈 되는 일도 아닌데 아이들부터 잘 키워야지"


엄마의 말 때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살림에 소홀하면서 내 것을 찾아 부단히 애쓰던 내게 한 템포 쉬어 갈 쉼표를 었다. 생각해 보면 글을 쓰는 시간에 많은 시간을 소비했지만 글로 뚜렷하게 얻은 것은 없었다. 체험단이 업체와 가정 경제에 동시 다발로 도움이 될 수는 있었지만 무리한 체험단 활동은 화가 되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목적을 가지고 의무감에 글을 쓰는 일이 나와 맡지 않았다.


브런치 스토리 글 쓰기 역시 마찬가지였다. 수려한 문장과 뚜렷하게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에 작가 제의를 받거나 출판으로 이어질 수 없었다. 엄마의 말 따라 돈이 되지 않는 일에 밑 빠진 독에 끊임없이 바가지로 물을 붓다 번아웃을 맞이한 격이다. 


견물생심으로 글을 쓰면서 '혹시나'를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주변 상황과 내 상태를 파악하지 않고 해바라기처럼 '성장'만을 바라보다 내 몸과 마음이 타들어 가는 줄도 모른 채.


처음 글을 쓸 때의 마음을 기억하고자 한다. 기대 없이 일상이 글로 남겨지는 것이 좋았던 그때로. 일상 기록이 취미인 나에게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 만 집중하는 것은 속 빈 강정이나 다름없다. 단기 기억 상실에 걸린 듯 어제를 떠올리기 힘들어 오늘을 남기려했던 일을 이어가자. 나다운 엄마의 모습은 기록하는 엄마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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