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첫 화면에 나오는 흑백 요리사에 대한 이야기가 자자했다. 안 보면 안 될 것 같아 1회를 보았다. 모르는 요리사들에 대한 소개에 별 감흥이 없었다. 채널 변경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심사위원에 백종원이 나오는 걸 보고 리모컨을 내려놓았다. 알고 지낸 사람을 만나 반가운 것처럼 흑백요리사에 대한 호감이 올랐다. 요리가 시작되자 백종원 보다 심사를 하는 안성재의 평가에 빠져들었다. 냉철하지만 본인의 기준에서 쏟아내는 정확한 평가가 기다려졌다. 이후에는 요리하는 사람들의 모습보다 백종원과 안성재의 팽팽한 심사평이 귀를 솔깃하게 했다. 그런 두 사람이 칭찬한 음식이 있었으니 철가방 요리사가 자신 있게 만든다는 '동파육'이었다. 정지선 셰프 외에도 중식을 하시는 분들이 꼭 한 번 말했던 동파육.
도대체 동파육은 어떤 맛일까?
남편은 동파육 레시피에 대해서 조사를 했다. 그리고 카톡으로 재료 준비를 위한 리스트를 보냈다.
돼지 앞다리살 1kg
올리브유
월계수 잎 3~4장
청경채
생각 2~3조각
양파반 개
청양고추 1개
마늘 3~4개
쌍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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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와 남편은 재료들을 살피더니 요리를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옆에서 도왔을 텐데 남편은 근처에 있지 말라고 했다. 궁금하긴 했지만 눈 가린 심사위원이 된 것처럼 요리과정을 보지 않고 기다린 채 먹기를 기다렸다.
드디어 음식이 나왔다. 청경채 화관을 둘러싼 동파육이 나왔다. 아이들은 아빠가 해 준 요리를 보고 선뜻 손을 가져가지 못했다. 먹어도 되는 것인가. 동파육이라고 불리지만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검은 고기라서 인지 모두 멀뚱하니 쳐다보고 만 있었다.
겁 없는 내가 젓가락을 가져갔다. 고기를 먹자 평소 알고 있던 맛과 조금 다른 오묘한 보쌈의 느낌이 났다. 달콤하면서 독특한 향이 나는 잘 삶아진 수육이었다. 예민한 남편은 중국의 향이 느껴지는 게 쌍화탕 때문인 것 같다고 했지만 코가 예민하지 않은 나는 특유의 향이 강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음으로 청경채를 하나 집어 들어 씹었다. 소금물에 데치더니 짭짤하면서 아삭한 식감을 내는 게 알맞게 익혀진 것 같았다. 하지만 청경채의 익힘 정도와 상관없이 나의 답은 하나였다.
"청경채의 익힘 정도가 좋네요". 마치 안성재 쉐프가 된 것처럼 남편의 요리에 대한 평가를 후하게 해 줬다. 주말에 음식을 하지 않아도 되는 수고를 덜어줬으니 이만하면 충분했다.
하지만 남편의 미간은 좁혀지지 않았다.
"이게 정말 동파육 맞아?"
중국음식을 먹어도 짜장과 짬뽕 외에 요리라고는 탕수육과 팔보채 말고는 먹어 본 적이 없다. 흑백요리사에서 동파육이 나오고 사람들이 극찬을 하고 있어도 침이 고이지 않는 것은 먹어 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다. 레몬은 생각만 해도 뇌에서 침샘을 자극할 텐데 먹어보지 않은 동파육은 그림의 떡이었다. 모작을 그리더라도 직접 보고 그렸으면 진짜를 뛰어넘어 자신의 색을 표현할 테지만 혀끝에 닿아 본 적 없는 음식을 레시피만 보고 따라 했더니 본인이 만든 음식에 불신이 들었다.
나를 빼고 소식하는 우리 집에서 앞다리살 1kg은 차고 넘치는 양이었다. 하지만 남편은 큰 고민을 하더니 오늘 안에 끝내야 하는 숙제를 해야 할 것처럼 이야기했다.
"동파육 하나만 시켜줄래?"
내 귀를 의심했다. 굳이 지금 배가 부른 상태에서 시키는 게 맞는 걸까. 분명 나 만 먹고 말 것 같은데? 하지만 나도 궁금하긴 마찬가지였다. 지금 내가 먹은 건 검은 수육일 뿐인데 이런 걸 티브이에서는 극찬한단 말인가. 찝찝하게 남겨두는 미제 사건이 되기 전에 오늘 안에 동파육을 끝장내고 말겠다며 배달앱을 켰다. 검색창에 동파육을 검색하자 배달이 가능한 집은 '중국집'이 아닌 '마라탕' 가게였다. 이만 팔천 원이라는 가격에 배달료 이천 원을 더해 삼만 원을 지출하여 마라탕집에서 동파육을 시키고 기다렸다. '띵동' 방금 먹은 동파육이 아직 내려가지도 않았는데, 배달시킨 동파육이 문 앞에 도착했다.
뚜껑을 열자 반질반질 윤기가 감도는 진짜 동파육이 왔다. 빛깔도 훨씬 맛깔스럽게 검었다. 이런 게 진짜 동파육이구나 싶었지만 색과 윤기를 제외하고는 남편이 플레이팅 했던 동파육과 별 차이를 느낄 수 없었다. 이제 맛으로 판별할 차례가 되었다. 균일하게 잘린 고기 한 덩이를 입에 가져갔다.
"읍.... 뭐야 동파육 맛이 왜 이래"
코가 예민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나에게도 강력한 펀치 한 방을 날리는 특유의 향이 강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혀를 자극했던 것은 짠맛이었다. 왜 이렇게 짠 거지? 당장 물을 한 컵 들고 와서 삼켰다. 그래도 짠맛이 가시지 않아 청경채를 집어 들었다. 안성재 셰프가 말하는 청경채의 익힘 정도를 내가 알리 없지만 이만하면 "청경채의 익힘 정도가 이븐 하네요"라는 평가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맛이었다.
아이들은 한 입씩 먹더니 가지런히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후각이 민감한 남편은 동파육 특유의 향이 거북하다며 더 이상 먹지 않을 것임을 암묵적으로 표현했다. 결국 삼만 원을 들여 사놓은 골칫덩이 동파육은 나의 몫이 되었다.
하나 분명한 사실은 남편이 했던 음식이 동파육이 맞다는 결론에 도달했다는 것이다. 비록 이를 위해 비용이 지불되었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흑백요리사에서 백종원과 안성재의 평가가 여러 차례 팽팽하게 대립된다. 안성재는 우리나라 유일의 미슐랭 3 스타로써 직접 요리를 하며 터득한 본인만의 기준이 있다. 백종원은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안 먹어 본 음식이 없을 정도로 많은 맛의 데이터베이스를 갖추고 있다. 물론 음식 솜씨가 좋은 것도 포함이다. 방향은 다르지만 이 둘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강점은 '경험'에 의한 실력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어렵고 창의력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알게 모르게 내가 해오는 경험들을 토대로 우리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고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현재 핸드폰이 없어서는 안 되는 유용한 물건이지만 조선시대로 간 핸드폰은 불쏘시개로도 쓸 수 없는 고물일 뿐이다. 하지만 지금 아이들은 핸드폰 하나를 쥐어주면 유튜브로 정보를 검색하고 그림을 그리며 영상을 편집하는 등 다양한 일들을 한다. 직접 해 보고 잘 한 사람들의 것을 보고 따라 하며 내 것을 만들어 간다.
돈으로 살 수 없다는 경험은 재산이나 다름없다.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지 않도록 하는 방법은 우물 속에서 보던 동그란 하늘을 벗어나 더 넓게 펼쳐진 세상을 바라보는 용기를 가지는 일이다.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는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지 고민하던 나에게 짠맛이 가득했던 동파육이 진한 여운을 남긴 것 같다. 많이 먹어보고 많이 보고 많이 겪어보면서 진짜를 내 것을 찾아가야 할 것을 아이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 같다.
남편, 그래서 다음에는 중식당에서 진짜 동파육을 먹어보는 건 어떨까? 진짜를 찾기 위해서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