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좀 못 탄다고 삶이 크게 변하지 않는다. 자동차 운전도 마찬가지라 운전면허증은 필수가 아니라 선택일 뿐이다. 하지만 선택의 여하에 삶의 질은 달라질 것이다.
처음 아이가 태어나 뒤집기를 할 때만 해도 기특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무거운 머리를 얇은 목으로 지탱해서 철퍼덕하고 넘기는 순간이 어찌나 감동스럽던지. 되집기를 할 때는 '이런 것도 한단 말인가'하고 감탄까지 했다. 누워서 생활하기만 싫어했던 아이는 자발적으로 원하는 사물에 닿기 위해 손을 발처럼 사용하여 앞으로 기어 다녔다. 네 발을 이용하면 충분히 원하는 목적지에 닿을 수 있었다.
한동안 배로 밀로 무릎으로 청소를 하며 다니던 아이가 가슴까지 오는 턱에 손을 잡고 허리를 펴기 시작했다. 한 발짝 한 발짝 떼기 시작하더니 엄마가 걷던 모습을 따라 손을 떼고 기우뚱 걸었다. 네 발로도 얼마든지 원하는 곳에 갈 수 있지만 두발을 이용해서 걷다가 뛰는 일은 목적지에 빠른 속도로 도착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동그라미는 인간이 발명한 것 중 가장 쓸모 있는 발명품 일 것이다. 동그란 탈 것에 의지하면 무거운 짐을 옮기는 것부터 내 몸 하나 이동시키는 일은 누워서 떡 먹기다.
동그란 것으로 할 수 있는 것 중 자전거로 산책하는 것을 좋아했다. 걸을 때는 느낄 수 없는 바람을 얼굴로 맞으면 상쾌한 기분이 든다. 바퀴에 발이 하나 더 달렸을 뿐이지만 세 발로는 느낄 수 없는 가벼움이 있다. 좋은 것은 나누면 배가 되기에 남편은 아이들에게 두 발을 빨리 가르치고 싶어 했다. 5살에 네 발 자전거를 사주고 매년 큰아이에게 물어봤다.
"두 발 자전거 타보지 않을래?"
두발은 무섭다며 아이는 한사코 네 발을 고수했다. 그런데 올해 9살이 되어 아이가 두 발 자전거를 배우고 싶다고 했다. 자동차도 남편에게 절대 배우지 말라고 한 것처럼 자전거를 가르치다 부녀 사이가 틀어질까 걱정된 남편은 매형에게 부탁을 했다.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신 아이의 고모부가 함께 운동장으로 나갔다. 아이가 배우는 상태를 보니 하루 만에 배우기는 힘들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해보고 안되면 주말 동안 연습해 보자 마음먹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딸은 쉬지 않고 연습을 하더니 페달에 두 발을 올리기를 몇 번 하며 기우뚱하더니 중심을 잡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56분 만에 일어난 일이다. 믿을 수 없었다. 징징거리면서 힘들다고 할 줄 알았던 아이가 거짓말처럼 내 눈앞에 두 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엄마, 너무 재밌어"
큰 아이의 두 발 자전거 타기는 우리 집의 숙원 사업이나 마찬가지였다. 두 발 자전거를 성공한 그날 저녁, 매형 식구와 함께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이 기쁨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될 일이었다.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일이 기대했던 시간보다 빠르게 이뤄졌다. 성격인 급한 부부에게 LTE급 성공을 이뤄내게 도와주신 매형에게 감사를 전하며 다 함께 즐거운 저녁을 맞이했다. 남들이 들으면 두 발 자전거를 타는 게 뭐 대단한 일이냐고 할 테지만, 아이가 두 발 자전거를 탔으면 하는 기다림 끝에 맞이한 성공이었다. 좀 유난스러우면 어때. 기어 다니던 아이가 두 발로 걸을 때처럼 좋은걸.
그리고 며칠 뒤 7살 딸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 겁 많은 막내가 선뜻 두 발 자전거를 타겠다고 했다. 하지만 두 딸은 달랐다. 두 살이나 어렸기에 인지 부분에서 차이도 있었겠지만, 같은 말을 받아들이는 게 상반되었다. 큰 딸은 알려주면 자기식으로 바꿔서 내 것으로 만드는 스타일이었고, 막내는 가르쳐주는 대로만 익혔다.
두 딸을 가르치다 남편도 도가 텄는지 막내를 가르치는데 요령이 생겼다. 세심한 하나부터 열까지를 알려주며 아이가 대처해야 할 것들을 알려줬다. 그럼에도 아이가 핸들을 심하게 꺾어서 넘어질 것 같은 불안함이 있었다. 손잡이를 잡고 아이를 도와주던 나는 그 손을 놓지 못했다. 이러다 쓰러질까 봐. 아이가 넘어져 다칠 상황이 뻔히 보이는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놓아주지 못했다. 결국 운동장 한 바퀴를 내 손으로 아이를 끌고 다녔다. 뒤에서 한참 보던 남편은 손을 떼라고 이야기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망설였지만 이대로라면 나아지지 않을 것 같아 큰 마음을 먹고 손을 놓았다. 그런데..
역시나 아이가 슬로모션으로 갸우뚱 기울었다. 이제 쿵하고 넘어져야 할 차례인데 반동을 주듯 틀어 반대쪽으로 핸들을 꺾더니 이번에는 반대로 기울었다. 그럼 반대로 넘어지려나? 했더니 핸들이 제자리를 찾았다. 속도가 붙으면서 안정감이 들었는지 도리도리 고갯짓을 하던 핸들도 앞을 향해 바라보았다.
3일 동안 자전거 연습을 하면서 새 부리처럼 입을 내밀었던 아이의 입이 활처럼 휘었다. 자전거말고 씽씽카를 타고 싶다던 아이가 두 페달을 힘껏 밟으며 "자전거 너무 재밌어"라고 말한다.
쉬는 날에게 어김없이 두 발 자전거를 타러 가자는 아이를 보니 기쁨과 동시에 혼란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해보지 않은 일을 할 때 우리는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에 지레 포기한다. 처음이 어려울 뿐이지 막상 성공하고 나면 세상에 재밌는 일들이 많다. 비단 두 발 자전거뿐일까. 아이들이 하기 싫어하는 공부마저도 하기 싫지만 체득하게 되면 세상을 살아가는데 이롭고 즐거움으로 가득찰 것이다. (최근에 아이가 하기 싫다고 했고 시켜야 만 했던 게 공부라서 몸으로 배웠던 두 발 저전거였지만 묘하게 같은 선상에서 생각하게 된다.)
아이들은 못한다는 벽에 가로막혀하기 싫어하고, 억지로 무언가를 시키면 나쁜 부모가 아닐까라는 생각에 해야 할 일을 차일피일 미루게 된다.
그러나, 해보기 전까지는 모른다.
아이도 나도 세상에 처음이 너무 많다. 하지만 못한다는 마음과 재밌는 것만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다 보면 정작 해야 할 것을 하지 못해 자존감은 낮아지고 진짜 재미는 모르고 살 수 있다. 두 발 자전거는 못 타도 살 수 있지만 기본적인 공부는 해야 살 수 있는데 아이가 싫다고 할 때마다 마치 악독한 엄마가 된 것처럼 느껴져 망설일 때가 많다.
두 발 자전거를 해보니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서는 배우려는 자의 의지와 잘 가르쳐 주려는 노력이 시너지가 나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전문 교육인도 아니고 부모로서 잘 가르치려는 의지를 가지고 덤벼들지 않으니 나의 의지 역시 부족한 것을 느낀다. 결국 '의지'의 문제인 것을. 배려를 가장한 방치보다 두 발 자전거의 자유로움을 만끽했던 것처럼 배움의 즐거움을 알게 하고 싶다.
아이 상황에 맞춰 잘할 수 있도록 뒤에서 잡아주고 알려주다 적절할 때 놓아주는 일. 눈앞에서 멀어지는 자전거를 바라보며 앞으로 아이와 함께 나아가야 할 모습을 그려본다. 처음은 어렵지만 어떤 일이든 해나갈 우리의 모습을.
파란 하늘 아래 두 발 자전거로 함께 먼 곳까지 갈 수 있어서 얼마나 행복한지. 다음에는 막내도 함께 넷이서 좋은 곳에 타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