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가 되면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데 어째서인지 모기 입이 더 뾰족해진 것 같다. 얼마나 한 여름에 더웠으면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 모기가 떼로 나타났을까. 기후 변화에 민감하지 않던 사람이라도 올여름 최악의 더위를 겪으면서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들었을 것이다.
지구 온나화라는 말은 어릴 때부터 들었지만, 마흔이 돼서야 체감할 수 있을 만큼 기후 위기가 다가온 것 같다.
과연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동네 서점 사장님은 첫 번째로 알게 된 친환경을 실천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스치는 말로 "핸드폰을 6년이나 쓰셨어요? 친환경 하고 계시네요"라는 말을 했다. 사람의 말에는 무게가 있어서 어느새 나는 친환경을 위해 애쓰는 사람 중 하나가 되었다.
이후로도 서점에서 열리는 친환경 관련된 수업에 빠짐없이 참여했다. 폐가죽을 이용한 필통 만들기, 샴푸바 만들기 등 버려지는 것들을 이용하거나 플라스틱을 사용하지 않고 쓸 수 있는 생활을 알려주었다. 서점에 모이는 사람들은 어느새 친환경을 말하는 사장님의 말에 초록물이 들었다. 모일 때는 텀블러를 챙겨 오거나 동짓날에는 부끄럽지만 "용기 내주세요"를 외치며 락앤락 그릇에 팥죽을 포장해 왔다. 각자 집에서 챙겨 온 수저집은 티니핑, 피카추 같은 아이들것들이어서 마치 친환경 아줌마를 인증하는 것 같았다.
동짓날 용기에 포장해 온 팥죽과 아이들 수저집
엄마들에게 시작된 초록빛 아이들에게 물들어갔다. 각 집에 아이들을 모아 '연수어린이 기후행동'이라는 이름으로 동네 서점 세종문고에서 지구복지사님의 환경 수업 및 활동을 펼쳐갔다. 지구에 닥친 위기를 실감하며 태양열 선풍기 만들기, 비건 과자파티, 플로깅 등 아이도 엄마도 함께 다양한 친환경 활동을 했다.
나 또한 마을학교 강사로써 여름방학이 되어 서점에서 아이들을 대상으로 우유팩으로 재생종이 만들기를 수업을 했다. 수업 준비를하면서 환경과 관련된 자료를 더 찾아보게 되었다.
3년째 마을 아이들에게 재생종이 만들기 수업을 하고 있지만 올해는 더 다양한 시도를 해 보았다. 그중에서도 이번에는 자원 순환 관련된 것을 강조했다. 천연펄프를 관찰하고 우유팩으로 재생 종이를 만든 후 땅에 묻어 변화를 확인하여 자원이 순환되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것이다.
일주일 후 분해된 이미지 지구복지사님 실험 및 사진 제공
막상 종이가 일주일 뒤 분해되는 것을 확인하니 플라스틱을 사용하는 것에 거리낌이 느껴졌다. 당연하게 사용해 오던 샴푸와 바디워시부터 플라스틱을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나의 게으름 때문이었다. 플라스틱 용기를 분리배출하려면 깨끗하게 내부를 청소해야 하는데 모든 게 힘든 일이었다. 떼를 잘 벗겨내고 거품을 풍성하게 만들기 위해 들어간 첨가제들은 쉽게 물에 씻겨 나가지 않아 오랜 시간 헹궈야 하는데 일련의 모든 수고가 싫었던 참이었다.
주방세제는 어떤가. 아무리 깨끗하게 헹궈내도 일 년에 우리가 입으로 마시는 세제양이 꽤 된다고 하던데... 슥슥 세 번 만에 헹굼을 마치는 게으른 나에게는 친환경 설거지 바가 답이었다.
당장 친환경 제품을 파는 곳에서 샴푸바, 바디워시, 설거지 바 등을 샀다. 종이 박스에 테이프 없이 포장돼서 온 것부터 친환경에 가까이 간 느낌이었다.
샴푸바는 생각 외로 괜찮았다. 무엇보다 헹구는 일이 귀찮은 내게 잔여물이 남아도 기존 액상 샴푸보다 안전하다는 안정감을 줘서인지 머리 빠짐도 덜하다는 착각을 들게 했다. 샴푸바와 바디바 모두 거품은 풍성하지만 물이 닿기만 하면 금세 뽀도독 소리가 났다. 여러 번 헹궈도 미끄덩 거렸던 기존의 제품들과 달리 헹구는 시간도 적으면서 잔여물에 대한 불안감도 없으니 일석 이조였다. 무엇보다 헹궈서 버릴 용기가 없다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아이들은 간혹 물어본다.
"엄마 언제까지 이 비누를 쓸 생각이야?"
키가 크면서 정수리 냄새가 나는 딸을 보면서 기존 제품들을 더 써도 될까라는 의구심이 들었다. 샴푸가 몸에 남으면 안 좋을 것이라는 찜찜함 때문이었다.
샴푸바로 바꾸면서 확신이 섰다. 분리배출을 위한 게으름이 친환경을 위한 밑거름이 되었지만 오히려 우리 가족도 지구도 아낄 수 있는 친환경 생활을 하고 있다는 믿음이 생겼다.
"죽을 때까지 쓸 거야"라는 엄마의 대답에 향기를 좋아하고 펌프질을 즐겨하던 아이가 시무룩해졌다.
이제 포장 용기를 버릴 필요는 없어졌지만 우리가 지구를 위해 할 수 있는 용기는 더 키워가면 좋겠다. 게으름이 불러온 선순환을 보면, 게으름도 썩 나쁘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