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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방 안에는?

by 친절한금금

등교전쟁으로 바쁜 아침시간이 지나고 아이들과의 실랑이로 넋이 나간채 약속에 나가기 위해 채비를 했다. 가방 안에 필라테스를 위한 보라색 발가락 양말 하나, 남편이 단백질 파우더 먹을 때 필요한 우유를 사기 위해 지갑을 넣는다. 약속 시간보다 5분 여유로웠던지라 집에서도 읽지 않는 책을 한 페이지라도 읽을 요량으로 챙기고 나니 가방이 가득 찬다.

집을 나서기 위해 뒤를 돌아보니 방금 까 놓았으나 아이들 입에 들어가지 못하고 남겨진 사과가 보인다. 가져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세 시간 뒤 돌아왔을 때 어두운 낯빛으로 변했을 사과가 눈에 들어왔다. 나 밖에 먹을 수 없겠구나 생각하니 가방 안에 넣어가야겠다 싶었다.

촉촉한 단면을 보이는 사과를 가방에 그냥 담을 수 없으니 고민이 됐다. 짹각짹각 시간은 가고 어제 쓰다 넣어둔 깨끗한 위생비닐팩이 떠올라 손에 들었다. 이 정도면 먹고 쉽게 버릴 수 있다. 운동 갈 때 짐도 되지 않으니 편리함과 휴대성을 둘 다 잡은 것이다.

그때 뇌리에 '작심삼일'이란 사자성어가 스쳐 지나갔다. 하필 전 날 독서모임 주제가 '환경'이었다. 무지와 무관심 그리고 편리함으로 인해 뿌리까지 썩어가는 지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정유진 작가의 <아직 봄이 오지 않았을 거야>가 번뜩 떠올랐다. 내 가방의 가벼움 때문에 지구에 무겁게 내리는 쓰레기 비에 일조하고 싶지 않았다.

비닐을 서랍에 두고 유리그릇을 꺼내 들었다. 무겁지만 깨끗하게 닦인 유리안으로 아직 마르지 않은 사과들이 담겼다. 가방 안에 커피가 든 텀블러까지 넣으니 어깨는 무거워도 환경을 지켰다는 생각에 걸음은 가벼웠다.

지인들을 기다리며 함께 먹으려 한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앗...."


사과에서 은은한 마늘향이 났다. 칼에 묻었던 걸까. 유리그릇에 묻었던 걸까. 중요한 건 누군가 먹기 곤란하니 어서 내 입으로 넣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한 입에 두 개씩 빠르게 마늘향 사과를 해치웠다. 가벼워진 유리그릇을 누가 볼까 봐 빠르게 가방 안에 넣었다.

이주미 작가의 그림책 <당신의 가방 안에는?>을 읽고 글쓰기 모임에서 꺼내 들었던 유리그릇이 오늘의 나를 이야기했다. 각자의 가방 안에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누군가는 갑자기 찾아온 노안으로 매일 챙겨야 하는 돋보기가, 잃어버렸지만 모르는 사람이 찾아주었기에 10년이 넘도록 인연이 되어 항상 소지하게 된 명함지갑이 있다. 환경에 대한 그림책 덕분에 비닐보다 다회용기를 넣어 가져온 내 삶의 변화까지. 당신의 가방을 들여다보면 당신의 삶을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

문득, 궁금하지 않은가.

"당신의 가방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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