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야 산다

똥인지 된장인지 구분하는 확실한 방법

by 친절한금금

탕! 경쾌하고 맑은 소리가 내 머리 위로 울린다. 정확히 말하자면 머리에 써진 호면 위로 내려쳐진 죽도의 단발적인 타격에서 짧지만 강한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뜨겁게 흐르는 진한 농도의 액체가 인중 아래로 흘렀다. 좁고 어두운 동아리실 복도에서 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던 선배들이 소리를 지르며 다가온다.


"코피가 나잖아".


"어? 코피?"


다급히 방으로 들어가 호면을 벗은 나는 거울을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입시 공부를 하면서도 코피 한 번 나본적 없던 황소 같은 나였는데, 죽도로 머리 한 번 맞았다고 코피가 나다니..


검도는 머리, 손목, 허리, 목 부위를 유효 타격 부위로 인정한다. 검도 동아리에 가입해서 한 달 동안 선배에게 신물이 날 정도로 배우고 연습했던 것들도 머리, 손목, 허리를 치는 동작이었다. 긴 봉에 타이어 세 개가 꽂혀 있는 타격대를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타격 부위를 치면서 연습했다. 충분히 자세를 익힌 신입생들은 "호구식"을 거쳐 정식으로 호구를 입을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호구식이 있기 전 날 동아리 방에서 한가롭게 수다를 즐기고 있던 선배들은 나에게 미니 호구식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했다. 미리 한 번 머리를 맞아보면 어떤 느낌인지 알 꺼라며 도복을 입고 호구를 착용하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어쭙잖은 중도 자세를 취하고 숨을 크게 들이쉰 뒤 '탕!' 소리가 나게 머리를 맞은 것이었다. 코피가 나긴 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잠깐의 에피소드를 뒤로하고 동아리 방으로 달빛이 드리워지는 어두워지는 밤, 선배들은 신입생들이 내일 호구식을 잘 치를 수 있을지 걱정을 하면서도 어떻게 하면 후배들을 골려줄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호구식 준비를 했다.


검도에서 호구는 상대방과 대련을 했을 때 직접적인 타격을 받지 않게 해주는 보호장비이다. 검도에서 하는 기본 동작조차 모르는 신입생에게 바로 호구를 착용하게 하지는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기본자세를 익히고 호구식을 거쳐야만 정식으로 호구를 착용하고 대련을 할 수 있는 것이다. 호구식에서는 신입생들이 타격대가 된다고 하는 편이 이해가 빠르겠다. '고기도 먹어 본 사람이 많이 먹는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맞아봐야 어디가 타격 부위인지 정확히 알 수 있다는 의미로 호구식을 치렀다.


동기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지그 재그로 줄을 선다. 반대편에서는 선배들이 죽도를 들고 줄을 서있다. 단단한 갑을 착용하고 있지만 갑을 뚫고 나올 것처럼 나대는 심장을 부여잡고 중단 자세를 취한다. 처음에는 머리를 타격한다. 중단을 하면서 방어 자세를 취하고 있지만 선배들은 손쉽게 내 방어막을 뚫고 머리를 친다. 시합에서도 똑같다. 중단을 잘 잡으면 상대가 어떻게 하든 나를 공격할 수 없지만, 맞닿은 죽도 끝으로 간을 본 뒤 살짝 쳤을 때 조금의 빈 공간이라도 보이면 호면 위로 죽도가 탕! 하고 머리를 치고 간다. 여러번 맞아보니 상대를 칠 때도 맞았을 때도 가장 깔끔한 게 머리였다.


손목은 타격 부위 중 가장 아픈 부위였다. 벙어리장갑처럼 생긴 호완을 끼고 있지만 손목을 보호해주는 부위에 솜뭉치가 들어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손목을 감아치는 죽도의 타격감은 실로 엄청나다. 시합에서는 단발성을 끝날 충격이지만 호구식에서는 줄지어 서 내 손목을 치러 들어오기 때문에 아픔의 연속이었다. 맞아 본 만큼 손목을 저렇게 쳐야 하는구나 알면 좋았겠지만 당시에는 '줄이 언제 끝나지?'라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다. 하지만 시합에서 손목으로 점수를 따면 그것만큼 기분 좋은 게 없었다. 드러나게 보이는 머리와 달리 죽도 뒤에 감춰진 손목이 비는 순간을 포착해서 가볍게 내리칠 때 희열이 있었다. 손목을 맞으면서 그런 기분까지는 아니었지만 맞았을 때 아팠던 손목부분을 반대로 상대에게 타격하면 점수를 딸 수 있다는 것은 확실히 알았다.


허리는 제법 괜찮았다. 단단한 갑을 착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충격이 내 몸까지 파고들지도 않았고, 죽도에 맞아 울려 퍼지는 갑의 소리가 경쾌했다. 죽도를 하늘 위로 높이 쳐드는 상단 자세가 불편하긴 했지만, 시합에서 상대가 머리를 치려고 상단을 할 때 재빠르게 허리를 치면 유효한 점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찰라의 순간을 알고 칠 수 있는 것은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는 것을 3년 간 동아리 운동 연습을 통해서 알았다.


실컷 맞아보니 타격대를 칠 때 느낌이 새삼 다르긴 했다. 호면 사이로 보이는 선배들의 동작을 보면서 머리는 저렇게 치는 거구나, 손목은 저렇게 치는 거구나 알게 모르게 내 머릿속에 있는 것 같았다. 유효한 타격을 위해서는 내가 가장 아프게 맞았던 그 부위를 쳐야 한다는 사실을 몸으로 습득한 것이다.


글로 세상을 배우고 경험해 보지 않고 모든 것을 알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이다. 물론 그런 방식으로 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책을 읽고 공부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글로 해소되지 않는 것들이 있다. 내가 맞아가고 부딪히고 뒹굴어봐야 이게 된장인지 똥인지 구분할 수 있는 영역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이렇게 몸소 배운 것들은 나에게 상흔을 남긴만큼 지워지지 않는 오랜 기억을 선물로 남겨준다. 무엇인가 하고 싶을 때 주저하지 않고 발로 뛰기를 바란다. 나에게 바라는 쉬운 예로 돈을 벌고 싶어서 부동산에 관심이 있다면 책으로 공부를 할지라도 직접 아파트 분양 사무소를 가본다던지, 경매장을 가는 발품을 팔기를 바란다. 백문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고 직접 경험해 보는 그 한 번이 얼마나 큰 공부가 되는지를 아팠지만 강렬했던 동아리 호구식을 통해서 다시 한번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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