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얻은 두 번째 삶

by 친절한금금

그날이 다가오면 멀쩡하던 몸이 괜히 쑤시고 아프다. 디데이 하루 전, 나는 저녁부터 생생하게 떠오르는 그때를 떠올린다. 죽음의 문턱을 넘지 않고 토끼 같은 딸들의 곁에 머물 수 있었던 아찔했던 그날은, 기억력이 나쁜 나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순간으로 각인되어 있다.




둘째의 임신은 첫째보다 쉬웠다. 첫째는 인공수정 및 다양한 방법으로 임신을 시도하다 다행스럽게 자연 임신이 되었다면, 둘째는 물 흘러가듯 적당한 시기에 때 맞춰서 찾아온 복덩이였다. 하지만 임신 기간 동안 나는 둘째에 대한 원망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치태반으로 인해 절대 안정을 취해야 했고, 소양증으로 인한 전신 피부 트러블로 인해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견뎌내야만 했다. 찬물로 샤워를 하고 소금으로 문지르고 오일을 전신에 바르는 일들을 하루에 다섯 번 이상 했다. 차라리 약을 먹고 가려움을 가라앉히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최대한 버틸 수 있을 때까지 이겨보자며 얼음팩을 끌어안고 살았다.


출산이 며칠 남지 않은 어느 날, 전치태반으로 인해서 둘째 임신 기간 동안 한 번도 안아주지 않았던 첫째를 등에 업었다. 힘들게 가진 아이였고, 오로지 내가 바라볼 수 있는 내 새끼였는데, 둘째 임신 유지를 위해서 매일 같이 안아주던 첫째를 모른 채 했던 게 못내 아쉬웠기 때문이다. '어차피 곧 출산인데 뭐 어때...'라는 마음으로 집까지 아이를 업고 돌아가던 산책로에서 첫째는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엄마의 목을 꼭 끌어안았다.


평소라면 밥을 먹고 씻을 텐데 그날따라 아이와 먼저 샤워를 했다. 그리고 오붓하게 앉아서 저녁을 먹는데 밑에서 와락 하고 무언가가 쏟아졌다. 양수가 터진 것이다. 급하게 화장실로 달려가 양수가 다 쏟아지기를 기다렸다. 마치 예상이라도 했던 것처럼 덤덤하게 병원을 가기 위해 미리 쌓아 놓은 출산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섰다. 엄마와 애착이 강했던 첫째가 헤어지기 싫어서 크게 울었지만 양수가 터져서 위험한 상태에 놓인 태아를 위해 병원으로 향해야만 했다.


첫째를 유도 분반으로 30시간 만에 출산을 했었기에 둘째도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예상하고 남편을 첫째에게 보냈다. '8cm 정도 벌어지면 연락할 게, 첫째 재우고 와' 웃으며 진통이 오기를 기다렸다. 불과 10분 뒤 첫째 때 느껴봤던 통증이 전달됐다. 그때는 1cm만 벌어져도 죽을 것처럼 아파서 짐승 같은 소리를 내며 병원에서 난동을 부렸다. '산모님, 이러면 태아에게 좋지 않아요 소리 지르지 마세요' 복도를 지나가던 간호사가 말했다. 내가 다 죽어가게 생겼는데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괴성도 지르지 말라고 하는 간호사에게 상스러운 말이라도 건네주고 싶었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둘째 때는 달랐다. 이미 벌어졌던 골반이라서 쉽게 열리는 것이었을까? 진통이 참을만했다. 첫째 때는 3cm도 벌어지지 않았을 때 무통 주사를 맞았는데 이번에는 5cm가 벌어져도 견딜만했던 내가 대견하기까지 했다.


무통이 너무 잘 들어서 유도 분반을 하면서 시간을 많이 허비했던 첫째 때가 기억나서 둘째 때는 최대한 버티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한 시간을 넘게 진통을 하면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순간이 다가왔다. 나는 간호사에게 무통 주사를 요청했다.


'산모님 벌써 8cm가 벌어지셔서 이제 그대로 출산하셔야 해요'.


'네???'


나는 아쉬워할 틈도 없이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당장 산부인과로 오라고 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집과 10분 거리에 있는 병원으로 달려온 남편에게 보란 듯이 '숭풍'하고 쾌속으로 둘째를 낳는 모습을 보여줬다. 첫째 때는 남편과 함께 이틀을 굶어 가면서 슬로우 출산했던 것에 비하면 가히 초고속 출산이라고 할 수 있었다.


너무 기뻤다. 출산도 빨리 끝났으니 이제 조리원에 들어가 편히 쉬면서 첫째와 함께 지낼 일들을 생각하니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데 후속 조치를 하는 선생님의 손길이 바빠졌다. 거기다 갑자기 머리가 핑 도는 느낌이 나서 '선생님, 첫째 때 출산하고 기절한 적이 있었는데 지금도 그때처럼 핑 돌아요'라고 물어보자 하혈이 멈추지 않고 있는 위험한 상황이라고 했다. '아... 네..' 금방 괜찮아질 것이라 생각하며 남편에게 너무 잠이 온다고 말했다. '정신 차려, 너 지금 자면 안 돼'라고 나를 붙드는 남편의 손을 잡았다. 머리 위로는 수혈을 위한 붉은 팩들이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담당 선생님은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으니 큰 병원으로 바로 옮기자고 하셨고,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나는 엠뷸런스에 실렸다.




대학병원 응급실에 내가 실려오다니 이 모든 상황이 우습게 느껴졌다. 고작 애 낳다 피가 멈추지 않는다고 이런 대우를 받는다는 게 존재하지 않는 드라마로 다가왔던 것이다. 피는 몇 시간이 지나도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의사가 수혈이 잘 될 수 있도록 쇄골 근처 혈관에 두꺼운 바늘을 꽂는 순간 나는 쎄한 느낌이 들었다.


'나 죽을 수도 있는 건가?'


그때 갑자기 눈에서 눈물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거짓말 같은 이 장면이 꿈이 아니라 현실이고, 곧 마지막 순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당장 엄마부터 찾기 시작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니고 엄마였다. 엄마를 꼭 봐야만 했다. '엄마 좀 불러줘' 새벽 2시 남편은 장모님에게 전화를 걸다 터져 나오는 눈물 때문에 문자로 나의 긴급한 상황을 전달했다.


새벽같이 부모님이 달려오셨다. 의식이 있을 때 엄마의 손을 잡은 마지막 기억을 끝으로 나는 수술장으로 들어갔다. 수술은 무사히 끝났다. 도구를 사용해서 내시경으로 수술했으면 가장 좋았겠지만, 자연 분만으로 출산했던 나는 무려 15cm 정도 배를 째고 혈관을 묶는 수술을 해 무사히 살아났다. 덕분에 제왕절개를 하는 산모들의 고통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그들보다 두 배가 넘게 배를 째고 말이다.


임신을 하기 전에는 드라마에서 출산하는 장면을 보고 남편 머리채 한 번 잡고 소리 지르면 애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첫째를 낳았을 때는 애를 낳는 게 엄청난 고통이 수반되는 위대한 일이라는 걸 몸소 배웠다. 둘째를 낳고 보니 옛말에 '애 낳다 죽는다'는 말을 소름끼치게 체감했다. 지금과 같은 의료 장비가 없던 시절에 나처럼 피가 멈추지 않아서 꽃 다운 나이에 하늘로 가신 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데 이런 일을 겪고 보니 최근에도 나와 같은 일들이 아직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현대 의학기술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 와중에도 새로운 생명을 낳다가 빛을 못 보고 사그라들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외동딸로 자란 내가 아이를 둘 키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특히 모든 쉽게 흘러갔던 첫째와 달리 둘 째는 항상 새롭고 난관의 연속이었다. 젖병을 떼는 일, 기저귀를 떼는 일은 애를 새로 키우는 것처럼 낯설었다. 5살이 되었지만 아직도 잘 때 엄마를 붙잡고 자서 수면 분리를 꿈꿀 수 없는 둘째는 어려운 수학 문제처럼 나를 매번 힘들게 한다. 하지만 9월이 다가오고 둘째의 생일이 다가올 때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린다. 그리고 생각한다. '내가 네 덕분에 새로운 인생을 사는구나'. 그리고 '만약'이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한다. 만약 내가 그때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채로 갔다면 이 아이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남편은? 부모님은? 오랜 생각의 끝에는 '오늘도 아이들을 내 손으로 키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진한 마침표로 끝난다.


뭐하나 특출 나게 잘해주는 것 하나 없는 엄마다. 맛있는 음식을 해주지도 않고, 엄마표로 아이를 가르치는 열정도 부족하지만 내가 네 곁에서 숨 쉬며 너의 젖은 옷을 갈아입혀 줄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감사하다. 나와 네가 이렇게 마주 보고 웃을 수 있고 함께 하는 것만으로 우리는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아가고 있다. 나는 앞으로도 육아를 하면서 매우 지치고 부족함에 내 속을 긁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매년 9월, 아니 둘째를 보면서 또 생각할 것이다. 너로 인해서 나는 오늘 하루도 감사함을 느끼고 사랑하면서 살아가야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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