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명하게 떠오르는 빨간 두 줄. 초대한 적도 없는 손님, 코로나가 우리 집에 떼로 몰려왔다. 남들 다 걸릴 때 우리 가족은 O형이라서 안 걸리는 거라며 남몰래 안도하고 있었는데, 역시 혈액형과 별자리 같은 것들은 믿을 것이 못 되는 것 같다. 큰 아이가 코로나에 걸리기 시작하더니 우후죽순으로나머지 가족들 모두 파김치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다지도 코로나가 심각하게 아픈 것 일 줄 알았다면 끝까지 살아남은 위너가 됐어야 했는데. 도대체 큰 아이는 어디서 코로나를 달고 온 것일까.
코로나 확진 2일 차, 목이 잠기다 못해 소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목 상태가 악화됐다. 보이는 증세로는 중증을 호가하지만 움직이는데 별 무리가 없었던 나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밀린 빨래들을 개고 있었다. 코로나가 쉽게 지나가는 것인가? 우습게 생각하고 잠을 청한 뒤 크지도 않은 내 코가 납작해질 정도로 엄청난 오한이 덮쳤다. 바늘이 천 개쯤은 되는 듯 온몸을 찌르고 한 겨울이 오지 않았음에도 몸은 사시나무 떨듯이 떨려왔다. 그럼에도 내 몸 챙기자고 일어나서 진통제와 물 한 잔 먹는 것이 힘들었는데, 옆에서 자고 있던 막내가 기어코 나를 세운다.
증세가 나와 똑같았던 막내는 온전치 않은 말로 당장의 힘듦을 전달한다. "추워" "입이 아파".. 입이 아니라 목일 텐데.. 말도 제대로 못하는 게 아프니 안쓰러움이 크다. 단 두 마디와 이마에서 전달되는 뜨거운 열감이 오뚝이처럼 나를 일으킨다. 새벽녘, 침침해서 보이지도 않는 눈을 게슴츠레 뜨고 약의 눈금을 겨우 헤아려 해열제를 따른다. 약을 가지러 간 잠깐 사이, 다시 잠들어 있는 막내를 살포시 깨워 더운 숨을 내쉬는 입에 해열제를 밀어 넣는다. 일어난 김에 진통제를 꺼내 하나 먹는다. 약의 기운이 6시간은 버틸 수 있게 해 주리라는 안도감에 편히 잠을 청해 본다.
코로나 확진 3일 차, 사람이 이렇게 많은 시간을 잘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약을 먹고 자는 일의 반복이었다.먹고 자는 단조로운 비일상을 지켜내기 위해 백조의 발처럼 나는 쉬지 않고 삼시 세 끼를 차렸다. 챙김을 받고 싶은 나의 바람은 헛되었고 감히 바랄 수 없는 연기가 되어 사라졌다.
평소에도 배달 음식은 잘 시켜 먹지 않는 집이다. 아이들이 어려서 매운 음식은 시킬 수 없었고, 식사량이 나보다 적은 남편 덕분에 2인분 음식도 소화하지 못해 배달은 한정적이다. 배달이 안되니 곰 같은 손으로 직접 차리는 수밖에 없다. 진수성찬을 차려서 먹는 것은 아니었다. 유달리 소화가 안됐던 남편은 간단하게 국과 밥 정도만을 먹었다. 국 하나 끓이고 일정한 시간에 밥과 김치를 놓기만 하는 것임에도 때를 맞춰 끼니를 차려내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배달음식을 수월하게 잘 먹었다면 이참에 산해진미 맛보듯 배달 맛집 투어라도 할 텐데. 나보다 식사량이 적은 남편이 괜스레 밉다.
밥을 먹고 치우기가 무섭게 약 병 두 개를 챙긴다. 몸무게 차이가 3킬로 인지라 애매하게 다른 양의 약을 아이들이 먹는다. 덜렁대기는 어디 가서 지지 않지만 아이들의 약 타는 순간만큼은 정신줄을 붙잡으려 애쓴다.아이들의 약 병 2개 그리고 나의 약까지 먹고 나면 삼시 세끼 중 한 끼가 끝이 난다. 밥 차리느라 진이 다 빠졌다고 생각했는데 약을 타는 순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 걸 느낀다. 아이들 약은 왜 이렇게 넣어야 하는 것들이 많은지... 그런데 이걸 하루에 세 번.. 휴... 깜박증이 잦아 약 먹는 걸 까먹는 게 당연한 나에게 누군가의 약을 챙기는 것은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코로나가 수월하게 지나갔다는 사람도 많던데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겠다. 태어나서 처음 느껴보는 아픔에 아이와 남편이 함께 아프니 응석하나 부리지 못하는 현실이 싫다. 크게 내색하지 않아도 어쩌다 내는 목소리만 들어봐도, 나는 너무 아프다. 아픈데 같이 아픈 식구들의 끼니를 챙기고 내 약을 먹기도 전에 아이의 약을 타고 있다.
릴레이 감염이 아니라서 다행이라 생각했다. 물론 오랜 기간 돌아가며 격리하지 않고 한 번에 끝내는 것이 나을 것이다만, 엄마의 코로나는 괜스레 서럽다. 나이롱환자가 아닌데 나를 일으켜 세우는 엄마의 확진이 서글펐다. 융숭한 대접까지는 아니어도나 혼자 온전히 아픔의 시간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이 가슴을 스쳐가 지난밤 배갯잎을 적셨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