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에 입사한 지 3년 차 된 나에게 입사 1년 차 되는 회계팀 여자 직원이 말했다. 나보다 4살 어린 동생을 타이르며 나는 이야기했다.
"그동안 여직원들이 해왔던 일이야"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자란 나는 어른들의 커피 심부름을 곧잘 하는 착한 아이였다. 시골에 살았던 나는 이장님이 오시거나 어른들이 우리 집에 방문하면 당연스럽게 커피 포트에 물을 붓고 스위치를 켰다. 보글보글 주전자 주둥이로 수증기가 쏟구 쳐 오르면 미리 컵에 넣어둔 커피 알에 뜨거운 물을 채웠다. 쟁반을 들고 어른 한 분 한 분에게 커피를 드리면 "고마워, 참 착하구나"라는 인사를 받곤 했다.
손님이 오면 대접을 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석사를 졸업하고 연구소에 취업을 했지만 여직원이 세 명밖에 없는 남초 회사에서 회의실 다과 심부름은 여직원들의 몫이었다. 입사를 하기 위한 계약서를 쓸 때 상품개발을 위한 중대한 일만큼이나 여자만이 할 수 있는 나의 일로 규정지어졌다.
집에 오는 손님을 대하듯 긍정적인 마음으로 회의실에 다과를 놓았다. 실험을 하는 중간에도 커피가 필요하다면 언제든 실험용품을 내려놓고 라텍스 장갑을 벗어 원두커피를 내리고 티스푼을 들었다. 회계팀에 새로운 여직원이 오면서 10년 넘게 다과 준비를 하던 대리님과 나는 '더 이상 커피 타기 싫다'는 그녀의 말에 당황했다.당연함과 긍정으로 무장했던 내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던 날이었다.
막내에게 주어지는 일로 여기며 준비했던 커피 심부름을 회계팀 여직원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가 입사하고 일 년이 지나면서 새로운 남자 직원이 들어왔지만 여전히 커피는 여자 직원의 몫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있던 팀의 남자 대리님은 난색을 표했다. 여자 직원이라서 시켜왔던 커피 심부름을 하기 싫어하니 그 일을 남자 대리님이 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나는 실험실에 그녀를 데리고 가 타이르듯 이야기했다. 사실 어르고 달래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말대로 이것은 엄연한 성차별적인 일이었고 바뀌어야 하는 문화였다. 하지만 자라온 환경과 나쁜 것을 인지 못했던 그때의 나는, 생각과는 반대로 그녀의 손에 티스푼을 들라고 말했던 것 같다.
최근 서현주 선생님으로부터 어린이 책으로 배우는 포괄적 성교육 수업을 들었다. 임신과 출산에 국한된 성교육이 아니라 너, 나, 우리를 존중하고 서로의 경계를 배려하는 의미의 성을 배웠다. 이중에는 성차별에 대한 것도 포함된다. <산딸기 크림 봉봉>이라는 그림책을 보면 100년 전 200년 전 300년 전 산딸기 크림 봉봉을 만드는 사람들에 대해서 나온다. 300년 전에는 엄마와 딸이, 200년 전에는 흑인 노예가, 100전에는 요리에 관심이 있는 엄마가 산딸기 크림 봉봉을 만든다. 현재는 아빠와 아들이 레시피를 찾아가며 산딸기 크림 봉봉을 만들어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과 파티를 하며 나눠 먹는모습으로 책이 마무리 된다.
수업을 들을수록 내가 성인지 감수성(성별 간의 불균형에 대한 이해와 지식을 갖춰 일상생활 속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내는 민감성)이 현저히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나는 300년 전에 당연스럽게 산딸기 크림 봉봉은 엄마와 딸이 만드는 것이고 가족들이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 성인지 감수성에 무지한 여자로 머물러 있었다.
제대로 된 교육을 배우지 못했고 여자로서 해야 하는 일들에 길들여졌던 내가 스스로를 성 차별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돌아봤다. 딸 둘을 키우는 지금에 와서 아이들이 "커피는 여자가 타야 한다는 생각"을 엄마가 심어주는 일을 방지하고 싶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많은 주 양육자인 내가 보여주는 행동들이 어떤 교육보다 중요할 것임을 안다. 그래서 포괄적 성교육에 임하는 나의 태도가 비장해졌다. 나부터 변화된 인식으로 올바른 성인지 감수성을 키워, 내 딸들은 일상 속에서 일어나는 상황이 차별인지 아닌지 그때의 여자 직원 같은 분별력을키워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