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부족했던 엄마의 일탈
나를 채워줬던 추억 속의 그녀들과의 일탈
아침부터 정신이 없다. 설거지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혹시나 차를 남편이 쓸 수도 있으니 픽업으로 더러워진 차 안을 정리한다. 약속시간까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내 몸을 치장할 시간에 남편이 아이들 씻기느라 힘든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딸들과 샤워를 한다. 최대한 집과 아이들을 말끔하게 정리한 채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일단 집을 나섰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지하철을 향해서 가는 길, 소래포구를 향해서 가려면 어느 방향으로 타야 하는지도 헷갈려 갈필을 못 잡고 있을 때 전화가 울린다. "엄마, 차 키 어딨어?" 아차! 습관처럼 가방 안에 차 키를 가지고 와버렸다. 다행히 남편이 괜찮다 이야기했기에 나의 발길은 약속 장소인 소래포구로 향했다. 한 숨 거르고 나니 타는 방향을 잘못 와서 기차를 눈앞에서 놓쳤다. 어째 가는 길이 순탄치 않다. 일 년 만에 만나는 고등학교 친구들과의 만남에 설렘보다는 바쁜 마음이 컸다. 어지로 운 집안 속에서 아이들을 정돈하고 나가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았기 때문에 친구들과의 만남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갈 수 없었다.
지하철을 놓쳐서 안 그래도 바쁜 마음이 더 급해졌을 때 구리와 서울에서 오고 있던 친구들을 만났다. 승강장에서 마주친 눈빛과 마주한 손을 잡는 순간 우리의 핑크빛 기류는 폭발했다. 조잘조잘 지하철이 오기 전부터 소래포구 역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입을 쉬지 않았다. 손은 끊임없이 박수를 치며 호응하기에 바빴다. 소래포구 역에 도착해 과천과 광명에서 온 친구들을 마주했다.
우리는 너무 배가 고팠다. 만나서 반가웠지만 주린 배를 채우고 이야기하자는 모두의 의견에 따라 장소를 물색했다. 애초의 계획은 브런치가 맛있는 집에 가서 우아하게 이야기를 하고 소래 생태 습지를 산책 한 뒤 숙소에 들어가는 1박 2일의 일정이었다. 하지만 대뜸 친구가 이야기한다. "유명한 해물칼국수 집이 있는데, 여기 어때?". 브런치와 해물 칼국수는 격이 너무 다르지 않은가라는 물음표를 뒤로 한채 우리는 일단 해물칼국수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나이가 들고 보니 느끼한 햄버거보다 따뜻한 국물에 면발이 당기는 입맛으로 맞춰가는 20년 지기 친구들과의 대화는 뭘 해도 웃음이 터진다.
횡단보도를 걷다 나는 제안했다. "저녁에 먹기로 한 조개찜을 지금 먹는 건 어때?". 오랜 친구들과의 만남이 좋은 것은 큰 트러블이 없고 눈치 볼 일은 더더욱 없다는 것이다. "그래"라는 말과 함께 우리는 소래포구 수산 시장 2층에 위치한 조개찜 집으로 올라갔다. 대낮의 해가 등을 뜨겁게 비추는 자리에 앉아 조개찜과 초록병을 주문했다. 오랜 친구와의 만남에서 갈색 커피보다는 영롱한 초록병이 '짠' 소리 나게 잘 어울렸다. 조개찜은 생각보다 별로였지만 세트 메뉴에 구성되었던 새우구이와 새우 머리 버터구이가 지금 생각해도 입에 침이 고일 것처럼 맛있었다. 제철음식이 맛있다더니 대하 철이라서 그런가 굵은소금 위에서 붉은빛을 내며 익은 새우의 하얀 속살이 그렇게 통통하고 맛있을 수 없었다.
친구들과 소래 생태 습지를 갔던 건 10년 전의 일이었다. 긴 시간 동안 우리는 걷고 풍경을 보는 대신 <하삼동 커피>에서 수다로 여러 갈래의 길을 가는 것을 택했다. 건강, 미용, 인간관계 등 진한 커피를 마시며 입으로 떠나는 여행은 더없이 즐거웠다. 잠시 커피만 마시고 나온다는 게 몇 시간의 수다로 대하구이와 조개찜, 4인분의 칼국수를 소화시키기에 충분했다.
숙소가 저렴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저녁으로 먹을 것을 사서 입실하기로 했다. 평소에는 먹지 못 할 '킹크랩'을 쪄서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한 상 거하게 차려 먹으면서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우리 라떼 얘기는 하지 말자"했지만 모든 한마디에는 그때의 추억들이 묻어 있었다. 소주병따개를 손으로 치지 않고 뚝 끊어버리며 "너 마셔"라고 했던 20살 때 친구와의 일화를 얘기하다 그때로 돌아간 듯 어느샌가 내 손가락은 병따개를 향해 조준 사격하고 있었다. "탕" 유쾌한 소리를 내며 병뚜껑에 달린 병 꼬리(?)가 날아갔다. 숙소가 떠나가라 환호성이 떠오른 뒤 '원샷'을 강행하는 친구들을 보며 왕년의 실력이 녹슬지 않았음에 흥이 더 올랐다.
적당히 먹고 즐거웠으니 숙소의 하이라이트인 '노래방'으로 갔다. 결혼 후 노래방을 가면서 나는 적잖이 답답한 마음이었다. 하고 싶은 노래가 많지만 마음 놓고 부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7살 딸이 아이브와 에스파의 노래를 열창하는 덕분에 더더욱 내가 노래를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친구들과의 노래방에서 18살 때의 텐션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 노래방이 '자우림 콘서트장'을 방불케 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우림 노래를 참 좋아했다. 카세트테이프가 늘어질 정도로 자우림 노래를 들었으니 히트곡 이외에도 노래방에 등록된 자우림 노래를 다 알고 따라 부를 정도였다. 친구가 가수에 자우림을 검색하고 아래로 노래를 선택하며 예약 버튼을 누를 때마다 쾌재를 불렀다. 마이크를 붙잡고 부르든 떼창을 부르든 자우림의 노래는 우리에게 진리였기 때문이다.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듣고 부르는 자우림의 노래는 가슴을 더 후벼 팠다. 가사들이 이 정도로 좋았던가 싶을 정도로 울림을 주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일탈>은 노래방에 있는 나의 상황과 싱크로율 100%인 것처럼 일치했다.
매일 똑같이 굴러가는 하루
지루해 난 하품이나 해
뭐 화끈한 일
뭐 신나는 일 없을까
우와우와우와우와
할 일이 쌓였을 때 훌쩍 여행을
신도림 역 안에서 스트립쇼를 내가 하지는 않을 테지만 3평짜리 노래방 안에서 혼신의 힘을 다해 노래하고 춤까지 추면서 즐겼던 것은 충분한 일탈이었다. 아이들 저녁을 차리고 씻기고 재우는 시간에 타입슬립을 한 것처럼 고등학교 친구들과 노래방에서 즐기는 것은 내 삶의 궤도를 벗어나는 일이었다.
일탈이 좋은 것은 일상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맞이하는 일탈이라서 짜릿하고 그 에너지로 궤도 안의 일상에서 활력을 가지고 임하는 것 같다.
고등학교 친구 5명이 모두 모이는 일은 작년에 이어서 올해 두 번째였다. 출산과 육아를 하는 친구들 때문에 혹은 개인 사정으로 온전하게 모이기가 힘들었다. 한두 명씩 개별적으로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완전체로 모여서 하룻밤을 오손도손 보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친구들 속에서 나는 여전히 소녀적 감성이 살아있었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로 살아가던 일상에서 그 시절의 '나'를 보니 개그 감성을 숨길 줄 모르고 아무 말 대잔치가 일상이었던 천진난만한 여고생 그대로였다.
이렇게 놀고 보니 우리의 앞날에 대한 기대감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도 빨간 등산복 입고 검은 선글라스 쓰고 설악산 앞에서 사진 찍는 거 아니야?". 언젠가 이야기를 나눴던 것 같은 이 말이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물건도 사람도 오래될수록 길이 들고 익숙해진다. 햇된장도 맛있지만 오래 묵은 된장이 맛있는 것은 발효되는 과정을 통한 숙성이 되었기 때문에 깊고 진한 맛을 내기 때문이다. 우리의 우정을 된장에 비유해서 미안하지만 이만큼 우리의 깊은 정을 이야기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는다. 2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의 희로애락을 모두 함께 해 준 친구들이었기에 1년 만에 성사된 만남이었음에도 더 깊고 진한 여운을 남긴 것은 아니었을까. 비록 집에 두고 온 딸들 걱정에 내가 2% 부족한 모습을 보였어도 102% 충전을 해준 친구들 덕분에 나는 1년을 버틸 수 있는 힘을 채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