꾀병이라 생각했는데 구급차까지 타다니

by 친절한금금

"아이가 무릎을 펼 수 없다고 하는데 구급차 가능할까요?"


최대한 침착하게 목소리를 가다듬고 119에 전화를 걸어 구급차를 요청했다. 전화를 마치고 고통으로 울부짖는 아이에게 윗 옷을 입히고 나갈 준비를 한다. 저녁 식사 후 마시려고 글라스에 따라놓은 하얀 막걸리에는 유리잔 밖으로 이슬이 맺히다 못해 줄줄 흘러내리고 있다. 구급대원이 오기 전에 어지러진 밥상을 간단히 치우고 초인종이 울리기를 기다린다.


소머즈라도 된 것처럼 바깥소리에 귀를 밝히고 있는 남편은 엘리베이터 알림음이 "띵"하고 울리기 무섭게 현관문을 연다. 무릎을 펼 수 없는 아이를 태우기 위해 이동식 침대가 스르륵 우리 집 안으로 들어왔다. 어린이집처럼 알록달록 꾸며진 우리 집이라고 할지라도 형광 주황빛 유니폼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점령한 거실은 남의 집처럼 낯설어 보였다.


아이는 당황한 듯 처음보다 더 크게 울어 버렸다. 그런 아이를 달래주기라도 하는 듯 구급대원은 "나이가 몇 살이에요?" "어디 유치원 다녀요?"라고 물어봐주었다. 대답을 했던 건 뜻밖의 인물이었다. "나는 5살이에요" "OO어린이집에 다녀요"라고 동생이 명랑하게 말하며 울고 있는 7살 언니를 대신해 자기소개를 했다.


무릎을 펼 수 없는 아이를 위해 구급대원들은 부목을 이용해 다리를 고정시켰다. 조심스럽게 아이를 안고 이동식 침대에 앉힌 뒤 사고 발생 20분 만에 구급차에 탑승했다. 구급차에 탄 아이는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정신을 차릴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당장의 아픔도 있었지만 긴장이 됐는지 손과 발이 차다고 말하는 아이에게 마사지를 해주었다.


구급차는 소아 병동이 있는 대학병원 응급실로 달리고 있었다. 이동하면서 나와 함께 탄 구급대원은 간단한 인적사항을 물어보았다. 아이 이름, 나이, 몸무게 등을 이야기하고 나니 체온을 측정했다. 코로나로 인해 37.5도가 넘어가면 격리실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고 경위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를 했다.


119에 전화를 하면서 간단하게 설명하긴 했지만 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어 좀 더 부가적인 이야기를 했다.


"저녁을 먹으면서 할아버지 할머니하고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어요. 아이가 갑자기 발레 연습을 한다고 일어서서 발레 동작을 했는데 갑자기 무릎을 펼 수 없다며 고통을 호소했어요. 저는 그 상황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 아이가 말하길 두 발을 붙여서 벌린 채로 몸을 아래로 구부렸다는 말만 들었어요.


내년에 발레 공연이 있어서 평소보다 발레 연습을 많이 하는데, 아이가 발레를 좋아해서 집에서도 많이 연습하는 편이에요.


지난 토요일에는 왼쪽 뒤꿈치가 아프다고 해서 정형외과를 다녀왔어요. 초음파 결과를 보니 어른으로 치면 족저근막염 같은 통증일 텐데, 활동량이 많아서 그럴 수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뼈에는 이상이 없다고 했어요. 오늘 다친 부위는 그때와 반대로 오른쪽 다리예요."


응급실에 도착하고 소아 전문의 선생님이 아이의 다리를 진찰하셨다. 여전히 아이는 조금도 펼 수 없다며 큰 소리로 울고 고통을 호소했다.


"아파서 못 펴는 거예요? 무서워서 못 펴는 거예요?" 우는 아이에게 의사 선생님이 질문을 했다.


"무섭기도 하고... 아파요". 아이의 답변을 뒤로 한채 엑스레이와 피검사를 우선 해보자고 의사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엑스레이를 찍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리를 편 채로 찍어야 하는데 아이가 완강하게 거부하며 고통을 호소하니 남편이 들어가 아이를 안은 채로 찍어야만 했다.


엑스레이 결과로 확인이 어려울 경우 MRI를 찍어야 하기 때문에 작은 손에 이쑤시개만큼 두꺼운 바늘을 꽂아야 한다고 했다. 다리가 아파서 죽을 것처럼 아파했는데 과연 주삿바늘은 꽂을 수 있을까? 그때 아기가 말했다.


"엄마, 독감주사 맞을 때처럼 눈 한 번 감으면 되는 거야?


평소 주사 맞을 때 온갖 난리를 펼치던 아이가 최근에 울지도 않고 다 큰 언니처럼 주사를 맞은 일이 있었다. 이번에도 그러면 되냐고 묻는 아이에게 "당연하지"라고 말하며 웃어주었다. 평소 맞던 주삿바늘보다 5배는 두꺼워보였지만 미리 두려움을 심어주고 싶지는 않았다.


아이는 울지 않았다. 오히려 주사를 놓던 선생님께서 굉장히 씩씩하다고 칭찬을 해주셨다. 아이들이 주사를 맞기 전이나 주사를 꽂은 후에도 아프다고 울고 소리를 지르는 경우가 많은데 찍 소리 한 번 내지 않고 버텨줬다며 엄지 척을 내밀어 주었다.


혈액 검사를 기다리던 중 아이가 소변이 마렵다고 했다. 무릎을 펼 수 없어서 소변줄이라도 껴야 하나 했는데, 수술과 같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소변줄을 꽂지 않는다며 소변기를 가져다주셨다. 어쩔 줄 몰라하는 남편 앞에서 배운 적도 해 본 적도 없는 나는 '엄마'라는 사명감으로 능숙하게 일을 처리했다. 아이를 안아서 소변기를 엉덩이 밑으로 깔고 자세를 조절해 가며 조심스럽지만 시원하게 아이의 볼 일을 해결했다. 동시에 소변 검사를 위한 일정량의 소변을 받는 일도 잊지 않았다.


몇 분이 지난 뒤 고통스럽지만 조금씩 다리를 펴는 연습을 하던 딸이 "엄마, 나 다리가 펴져"라고 이야기했다. 조금씩 조금씩 다리를 펼치더니 어느새 양쪽 발이 어긋남 없이 뻗어있는 것이 아닌가. 안도의 한숨이 나왔지만 결과를 보기 이전까지 완전히 숨을 돌릴 수는 없었다. 펴진 다리를 주무르며 기다린 지 30분 만에 담당 선생님이 나를 불렀다.


"엑스레이 결과상 뼈에는 이상이 없습니다. 혈액과 소변 검사에도 이상이 없어요. 집으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소아 정형외과 선생님을 만나보시고 싶다면 기다리셔야 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릴 테니 내일 집 주변 정형외과를 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이상이 없다는 소견과 아이가 정상적으로 걷는 모습을 보니 일단 마음이 놓였다.


사실 낮에 아이는 꾀병을 부리다 나에게 걸렸다. 소파 위를 뛰고 동생과 잡기 놀이를 하면서 괜찮던 발이었는데, 유치원이 끝나자 아프다고 호소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의 말을 전적으로 믿어야 하지만 한 번 확인을 해 볼 필요가 있었다. 어릴 적 꽤나 꾀병을 부렸던 나의 경험으로 의심의 레이더가 항상 돌기 때문이다. 역시나 유치원에서 말하길 절뚝거리거나 통증을 이야기한 적은 없다고 했다.


상황의 전말은 알았지만 아이를 추궁할 수는 없었다. 다만 나의 걱정스러운 마음을 전달하기로 했다. "엄마도 예전에 학교 가기 싫어서 꾀병을 부리곤 했어,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엄마가 굉장히 마음 아파하셨어. 엄마는 우리 딸이 놀고 싶을 때 집에 있고 싶다고 솔직히 말해주면 좋겠어. 아프다고 이야기하면 엄마가 굉장히 마음이 쓰이거든"


진심이 통했는지 낮에 아프다고 했던 것은 거짓이었다고 실토를 했다. 그런데 말도 안 되게 밤에 집에서 발레 동작을 하다 구급차를 타게 될 줄이야.


그리고 다음날, 아이의 상태를 확실히 파악하기 위해 동네 정형외과에서 엑스레이와 초음파 검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게 됐다.


"어떤 이벤트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아이 무릎에 물이 찼어요. 인대가 상되면서 무릎에 물이 찼을 가능성이 있으니 2주 동안 운동은 시키지 마세요."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어릴 적 부렸던 꾀병처럼 아이도 역시 아픈 척을 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가 되면 거짓말도 믿게 되고 한 번 더 확인해보게 되는 것 같다. 대학병원에서 괜찮다고 확인은 받았지만, 확실히 검사를 해보자는 남편의 말을 듣고 초음파를 찍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만약 괜찮다 넘어가서 무리한 활동을 했다면 같은 일이 반복됐을 것이다.


꾀병이라 의심될지라도 다시 한번 아이를 살펴보자. 꾀병도 병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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