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살,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아빠는 운전대를 나에게 맡기셨다. 자주 운전을 해야 실력이 는다면서 아빠가 가야 하는 모든 곳에 나를 운전기사로 특채 임용하셨다.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에도 어김없이 밤 운전을 시키셨는데, 중앙선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운전하는 나에게 화내시기보다는 '하마터면 저승 갈뻔했네'라고 웃으시며 긴장을 풀어주셨던 아빠였다. '어떤 길이든 사람 걷는 거랑 똑같이 주위 살피면서 조심히 가면 돼'라고 일러주신 아빠 덕분에 운전이 무섭다고 느껴진 적이 없었다.
취업을 하고 회사차를 운전하면서 다양한 길들을 가게 되었다. 본사에서 공장으로 가는 길은 물론이거니와 가끔 병원을 간다는 목적으로 내 마음대로 차를 가지고 다녔다. 모르는 길을 아무렇지 않게 가다 보니 운전이 어렵다는 생각을 못했다. 길을 잘못 들면 다시 돌아서 가면 되었고 모든 길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돌아가면 그뿐이었다.
퇴사 후 운전은 나와 거리가 먼 일이었다. 운전대 위에는 언제나 남편의 손이 올려져 있었고, 나는 그의 옆에서 귤 까주는 정도의 소일을 하면서 주변 구경이나 하면 그뿐이었다. 안전제일주의에 본인의 운전을 더 신뢰했기에 남편은 감히 내가 넘보지 못하는 일처럼 기사 역할을 자초했다.
그런 나에게 운전을 해야만 하는 이유가 생겼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유치원을 다니게 된 큰 아이 때문이었다. 입학 6개월 전부터 걱정만 앞섰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사고내면 어떡하지? 면허는 있지만 교통법규는 잘 모르는데... 많은 걱정 풍선들이 머리와 가슴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입학 일주일 전 주말, 모든 걱정 풍선이 '펑' 하고 터졌다.
불안했던 남편은 금기를 깨고 부부간의 운전 강습을 시행한 것이다. 아무리 사이좋은 부부라도 옆에서 운전을 가르쳐 주면 싸움이 난다는데, 우리 차 안의 분위기도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해야만 했고, 남편도 나에게 꼭 알려줘야만 했다. 혹여나 아이를 태우고 가는 길에 실수란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강습의 첫 번째로 남편은 가야 할 길을 설명했다. 정해진 차선대로 가는 것이 나의 미션이었다. 이 길로만 가면 차선을 많이 변경하지 않고 안전하게 갈 수 있다는 남편의 특약 처방이었던 것이다. 길을 가는 것까지는 어렵지 않게 했지만 문제는 '주차'였다. 유치원 건물 지하주차장은 좁고 위험해 보여서 남편이 제외한 영역이었다. 지상 주차장은 가능했지만 이 또한 협소해서 길가에 주차하는 쪽을 택했다. 준비성 철저한 남편은 차선책까지 마련하여 차를 댈 수 있는 몇 군데 더 알아봐 주었다.
2시간의 숨 막히는 도로연수가 끝나자마자 집에 갈 때는 남편에게 운전하라며 운전대를 덥석 넘겨주었다. 더 이상 남편을 옆에 둔 채로 운전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도 없었고 실수할까 봐 걱정이 앞섰다.
입학실 날, 드디어 실전의 날이 다가왔다. 엄청 떨렸지만 생각보다 수월하게 운전을 해냈다. 이게 뭐라고 성취감까지 느껴지다니. 전업주부를 하면서 자신감이 많이 떨어진 건가 싶기도 했다. 한 달을 길가에 주차하면서 등 하원을 무리 없이 시키던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불법주차요금 7만 원> 길가에 주차를 해서는 안 되는 곳이었다.
남편과 나는 다시 주차에 대한 깊은 고민에 들어갔다. 남편 생각에 지하주차장은 불가하니 답은 지상 주차장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지상주차장을 택하지 않은 이유는 금세 만차가 되었고, 평행주차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었기 때문이다. 몇 번이나 핸들을 돌렸는지 알 수 없을 만큼 힘들게 평행주차를 했다. 그 뒤에는 삐딱하긴 했지만 아이를 데리러 다니기에는 문제없이 주차를 해왔다. 하지만 지상 주차장은 아무리 봐도 차가 너무 많았다. 특히 좁은 공간에서 고급 외제차 옆에 주차를 할라치면 가슴이 얼마나 콩닥거리던지... 나는 남편과 상의하지 않은 채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기로 했다.
막상 지하에 차를 대보니 초입이 어렵다고 느껴졌을 뿐이었다. 주차 자리가 넓은 편이었다. 다만 지하 1층에 자리가 없어 지하 2층으로 가야 할 때, 경사가 너무 급해서 고꾸라질 것 같은 느낌과 차 끝이 데이면 어쩌나 하는 쫄보 같은 마음을 패키지로 안고 가면 되는 것이었다.
이런 고충도 익숙해지려고 하는 찰나가 되면 새로운 난관에 닥치게 된다. 마치 운전을 통해 인생을 배우는 느낌이다. 큰 산 하나 지나가면 또 하나의 산이 다가온다. 하지만 몸으로 체득한 것은 다음에는 쉽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자신감이 생기니 큰 산 앞이라고 쫄 필요가 없다.
유치원 지하 주차장은 출입구가 하나라서 반대편에서 차가 오면 비켜줘야만 한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서 비상등만 깜박이고 숨을 죽였다. 상대 운전자가 능숙하면 알아서 내가 갈 길을 비켜주곤 했다. 운이 좋은 날은 내 앞에 차를 보고 따라 하면 하길 반복하기도 했다. "아~이렇게 비켜주면 되는구나". 몇 번 차를 빼고 비켜주는 연습을 하면서 이제는 앞에 차가 들어와도 나이스 하게 후진해서 앞 차가 갈 길을 마련해주는 내가 대견하다.
안 해봐서 두려웠고 걱정만 많았다. 닥쳐서 직접 해보고 실수도 하면서 행동 교정이 들어가다 보니 어느새 아이를 픽업하는 운전은 나에게 휴식 같은 시간이 되었다. 바쁘게 오전 시간을 보내고 아무 생각 없이 쉼을 찍을 수 있는 시간이 아이를 데리러가는 운전할 때다. 오로지 내가 가고 싶은 방향으로 내가 밟는 대로 나아갈 수 있는 운전이 요새 좋아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비가 오거나 눈이 오는 날을 더 좋아하는 2년 차 초보 운전자다. 바깥에서 천재지변이 일어나도 온습도가 균일하게 유지되면서 비와 눈을 구경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좋다. 계절에 맞게 플레이리스트에서 노래를 선택해 고막이 터지도록 볼륨을 높이고 운전을 하면 마치 내가 베스트 드라이버가 된 것 같은 착각까지 든다.
2년 전에는 정해진 차선대로만 다니던 초보운전자였다면, 이제는 빠른 길을 향해서 차선을 바꾸고 사고 현장 앞에서 능숙하게 우회할 줄 아는 2년 차 초보운전자가 되었다. 아직도 초보 운전이라고 말하는 것은 운전을 하는 지역이 동네에서 한정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1년 전보다 동네 안에서 운전해 가는 영역이 늘어났다. 2년 동안 지정 차선만 가지 않고 나만의 새로운 길을 찾아가고 있는 걸 보면, 시간이 걸릴지 몰라도 언제가 지금의 지역을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조금씩 천천히. 나만의 속도로. 나의 인생도 내가 정한 방향을 향해 가는 길이 아이를 태우러 가는 지금처럼 힐링의 순간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