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상을 밥먹듯이 하는 여자

by 친절한금금

“오늘 외상하고 내일 가져다 드려도 될까요?”

“그럼요, 다음에 가지고 와요”


나는 외상을 밥 먹듯이 하는 단골손님이다. 덜렁거리는 성격 덕분에 지갑을 놓고 다니는 일이 빈번해서 자주 가는 가게에서 외상 하는 일이 많다. 하지만 모든 가게에서 외상을 허락해 주는 것은 아니다. 딸아이가 우동이 너무 먹고 싶다고 했던 날이 있었다. 역시나 지갑을 가져오지 않았던 나는 몇 번 방문한 적 없었던 우동집에 가서 여쭤봤다.


“혹시, 외상이 가능할까요?”


터무니없는 부탁인 줄 알면서도 먹고 싶다는 딸의 의견을 무시하지 못해 용기 내어 여쭤봤다. 당연히 돌아오는 답은 날이 선 거절이었다. 요즘 같은 세상에 무엇을 믿고 선뜻 남에게 외상을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우동을 먹을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돌아가는 길에 딸은 울었고 민망해진 나는 우는 아이에게 못된 말들을 퍼부었다. 잘못은 지갑을 가져오지 않은 나에게 있었는데, 딸에게 모진 말을 쏟아낸 것이 미안해진 나는 아이에게 몇 번이나 사과했는지 모른다.


우동집의 일화를 생각해보니 지금 내가 다니고 있는 단골집들이 편안하고 따뜻한 느낌이다. 빵집, 서점, 슈퍼, 정육점 어느 곳을 가든 서로의 안부를 물어볼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왔다. 처음부터 나에게 단골집이 생긴 것은 아니다. 아이와 함께 빵집, 슈퍼 등을 다니면서 “오늘도 왔네” “지난번보다 키가 많이 자랐네”와 같은 인사를 주고받으며, 얼굴이 신원 보증이 되어 외상을 해 줄 만한 사이가 된 것이다.


빵집 사장님은 나보다 나이가 어렸다. 결혼과 육아 선배인 나는 사장님이 임신 문제로 고민했을 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며 어서 아이가 생기기를 함께 기도했었다. 그리고 며칠 뒤 술을 마시고 들어가는 길에 들린 빵집에서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저 임신했어요”


세상에 그렇게 반가운 소리가 없었다. 술이 만취가 됐었지만 어떻게 해서든 축하해 주고 싶은 마음에 옆에 있는 아이스크림 가게로 달려가 선물을 샀다. 아이스크림은 빵집에서도 팔고 있는데 당장 가까운 곳에서 선물을 해 줄 것을 찾지 못한 내가 전달할 수 있는 최소한의 마음이 그것이었다. 우리는 지금도 그때의 일을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가끔 사장님이 주시는 담요, 샐러드 케이스와 같은 이벤트 상품 등을 주변 분들이 보면 '도대체 얼마나 자주 가길래 이런 걸 받는 단골이야?'라고 묻는다. 일주일에 3번 이상을 방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행위를 넘어서 관계를 형성했기 때문에 단골이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단골의 의미는 단순히 빈도수가 많은 사람을 뜻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마트를 자주 가지만 그곳에 있는 분들을 아무도 모른다. 누구 하나 나의 안부를 묻는 사람도 없고 어떤 관계를 맺지도 않았기 때문에 볼 일만 보고 나오면 끝난다. 그러나 진짜 단골은 틀린다. 물건을 사러 갔지만 ‘오늘 날씨가 좋아요’ ‘요새 너무 힘드네요’ 같은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마음까지 풍성해져서 돌아간다.


생일이 되니 주변 분들이 주는 선물 대부분이 빵집 기프티콘이다. 주변 사람이 알 만큼 나의 단골집인 그곳에 오늘도 나는 선물 받은 기프티콘을 사용하러 갈 것이다. 딸아이가 다니는 발레 학원 1층에 빵집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참새가 방앗간을 못 지나가듯 그곳에 들러서 아메리카노를 사면서 이야기를 주고받겠지. “날씨가 참 덥네요, 감기 조심하세요” 따뜻한 인사말을 주고받을 수 있는 나만의 단골 장소가 있어서 참 좋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이웃주민과 결혼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