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가방이 없어"
"잘 찾아봐"
"고깃집에 놓고 온 것 같아"
2022년이 얼마 남지 않은 30일 금요일 밤이었다. 남편 회사 동료와 배부르게 고기를 먹고 카페에 갔다. 커피를 기다리다 아이의 가방이 없다는 것을 알아챘다. 분명 고깃집에서 남편이 아이 가방을 챙겼는데, 도대체 어디서 잃어버린 걸까?
일단 고깃집으로 가서 찾아보기로 했다. 우리가 다녀갔던 자리는 이미 말끔하게 치워진 후였다. 혹시 의자 안 수납공간에 가방이 있을까 싶어 모든 의자를 열어 보았다. 하지만 핑크색 아이의 가방은 보이지 않았다. 단골집 사장님 또한 가방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카페로 걸어가는 길, 혹시 걸어가다 가방을 떨어뜨렸을까 봐 발아래를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다녀갔던 길 어디에도 아이의 가방은 없었다.
회사 동료에게 아이들을 맡기고 남편과 가방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돌아왔던 길을 두 번 세 번 살폈다. 가게에 다시 들러 의자를 확인하는 일도 반복했지만 가방은 없었다. 불현듯 아이 핸드폰이 추적이 가능하다는 게 떠올랐다. 키즈폰이기 때문에 아이 핸드폰의 위치를 남편이 확인할 수 있었다.
핸드폰 위치는 고깃집과 카페에서 반대방향으로 떨어진 곳이었다. 누군가 가방을 주워 버린 걸까? 문득 우리 옆자리에 앉아서 식사하던 학생들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것은 요즘 아이들이 좋아할 만 캐릭터 가방이었다. 면식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의심의 싹이 솟아나고 있었다. 혹시 길을 가다가 떨어뜨렸다면, 지나가던 사람이 주어서 길에 버렸을 가능성도 있었다.
수많은 가능성 속에 세상에 대한 불신과 화가 치솟고 있었다.
나는 왜 이렇게 가방을 찾으려고 애썼던 걸까. 가방 안에 들어있던 핸드폰은 돈 한 푼 들이지 않은 키즈폰이었다. 다만 그 안에 많은 사진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에 찾아야 만할 것 같았다. 또 하나의 이유를 보태자면 한 해의 마지막을 이렇게 찝찝하게 보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새로 사지'하고 넘어가는 성격인 내가 눈에 불을 켜고 아이의 가방을 좇았다.
키즈폰은 남편의 핸드폰으로 모든 기능을 잠금 할 수 있다. 누군가 훔쳐갔다 하더라도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하지만 불안한 마음에 핸드폰 대리점으로 가서 정지할 수 있는 방법을 여쭤보았다.
"잃어버리신 지 얼마나 되셨어요?"
"30분이요"
"하루정도 기다려 보지죠, 연락이 올수도 있으니까요"
우리는 연락이 오지 않은 것이라고 단정했다. 신호가 잘 가던 핸드폰의 전원이 꺼져있었기 때문이다. 누군가 일방적으로 핸드폰을 끄지 않는 이상 핸드폰 전원이 나갈 수는 없었다. 그때 고깃집 사장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CCTV확인이 가능하니 한 번 보러 오시겠어요?"
고깃집에서 CCTV영상 확인이 되는지 물어봤었다. 녹화가 되지 않았다는 사장님의 말을 듣고 포기한 상태였는데, 가방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발견한 것이다. 주저 없이 아이들의 손을 잡고 고깃집으로 향했다.
"여기 보면 아이가 가방을 메고 나가는 것이 보여요"
순간 부끄러운 마음이 솟구쳐 올랐다. 알지도 못하는 옆 테이블 사람들에게 가방을 가져간 죄를 덮어씌운 내가 수치스러웠다. 죄스러운 마음을 뒤로하고 길가에서 다시 한번 가방을 찾아다녔다. 위치 추적을 했을 때 아직도 가방은 고깃집과 카페 반대 방향으로 한참 떨어진 위치였다. 길을 가다 주은 사람이 멀찍이 던져 놓은 것 같다는 생각에 확신을 더했다. 그러나 같은 길을 한 시간이 넘도록 찾아도 없는 것을 보면 이제는 포기해야 하는 것 같았다. 남편과 나는 찝찝한 마음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딱 한 번만 더 둘러보고 그래도 없으면 가자" 남편에게 말했다. 각자 아이를 손에 잡고 나는 카페 방향으로 남편은 핸드폰 위치 추적이 가르치는 곳을 찾아본 후 만나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방문한 카페 구석구석 살펴봐도 핑크색의 흔적은 어디도 없었다. "혹시 찾으면 전화드릴게요". 카페 점원의 친절한 호의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발길을 돌리며 마지막으로 주변을 살피며 가는 찰나였다.
"어??? 저거?????"
고깃집에서 카페로 가는 커브길에 있는 식당 실외기에 가방이 올려져 있었다. 안에 있는 내용물을 보니 잃어버린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남편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남편과 나는 가방을 보고 멍하니 섰다. 함께 찾아다닌 아이들이 '손 시려우니 집에 가자'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선채로 얼어버렸을 것이다.
"왜 우리는 바닥만 본 걸까?"
"왜 모르는 사람을 의심한 걸까?""
집에 들어와서도 우리는 가방 사건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했다. 길을 가다 잃어버리거나 누군가 주어서 버렸을 가능성을 두고 '바닥과 쓰레기 더미'만 찾아봤다. 알지 못하는 사람을 범인으로 몰아세우며 핸드폰을 일부러 껐다고 화를 내기도 했다. 핸드폰은 배터리가 20% 있던 상태에서 고기를 먹으며 유튜브를 봤고, 핸드폰을 찾는다는 명목으로 수없이 전화를 걸었으니 꺼질 만도 했다. 당연스럽게 남이 껐을 거라 생각하다니 우습지 아니한가. 작은 불씨였던 의심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올라 화마가 되어 나를 집어삼키는 건 순식간이라고 느꼈다.
속고만 살았나? 왜 아이가 길을 가다 떨어뜨렸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걸까.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나의 오만에 소름이 돋았다.
아이는 평소 크로스로 메던 가방을 옆으로 길게 메고 다녔다. 어른처럼 예쁘게 보이고 싶었던 마음과 달리 가방을 챙기기에는 어렸다. 누구를 탓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행히 가방을 찾았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불신을 지울 수 있었다. 더불어 직접 보지 않은 상황을 확대해석 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아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읽지 않을 실지라도 말씀드리고 싶다. 길을 가다 가방을 주워 눈에 보이는 위치에 올려주신 마음씨 고운분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세상에 좋은 마음씨를 지닌 분들이 많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