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 길들이기

딸에게 쓰는 편지

by 친절한금금

벌써 3주가 된 것 같다. 직장에 다니는 친한 언니가 방학 중인 딸을 몇 시간만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 매주 수요일 A(편하게 이니셜로 부르기로 한다)는 9시부터 12시까지 나와 함께 있는다. 모든 채비를 마치고 온 A는 우리 집 거실에 깔려 있는 이불과 등원 준비가 되지 않은 내 딸을 의아하게 쳐다본다.


"저희 엄마는 새벽에 일어나서 책을 읽고 6시에 아빠 밥을 차려줘요. 그리고 회사를 가기 위해 어요"


지난주에도 들었던 A의 일상은 우리 집과 정반대였다. 엄마가 일찍 일어나는 만큼 A도 7시에 일어나 밥까지 먹은 뒤 우리 집에 온 것이다. A는 본인도 알지 못한 채 일찍 일어나는 생활에 길들여져 왔다.


등원하기 전 아이의 손톱을 정리하고 있을 때였다. A가 다가와서 물었다.


"티슈 깔고 안 하나요? 저희 아빠는 꼭 깔고 그 위에 하거든요, "


이렇게 말하고는 사방으로 튄 손톱을 아담한 손으로 한 곳에 모아 주었다. 손발톱을 깎고 난 후에 청소기로 마무리하는 나와 달랐다.


다른 가정환경에서 살아온 10살 된 A와 나의 생활 패턴은 많이 달랐다. 하다못해 남편과 나는 30년 이상 누적된 세월을 거쳤으니 생활방식 및 신념 등 하나부터 열까지 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은 수많은 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중에서 최상위는 부부 관계가 아닐까.


부부는 서로 다른 요소들로 채워져 만난 A와 B 집합이다. A가 가지고 있는 원소와 B가 가지고 있는 원소에는 교집합을 이루는 부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도 존재한다. 교집합의 영역이 크다면 불화의 요소가 적을 것이다. 하지만 일치하지 않는 부분들이 충돌할 때 서로의 '길들이기 신경전'이 벌어진다.


부부가 된다는 건 내가 가지고 있는 원소들의 교집합 영역을 늘려가는 것이다. 사소하게는 손톱을 깎고 난 뒤의 것을 처리하는 일, 아침에 일어나는 패턴 등 서로의 원소를 길들여 교집합 안에서 살아가게 한다.


길들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원만한 합의로 서로에게 길들여질 수도 있지만, 생채기로 짓무른 곳에 새살이 돋기를 반복하 길들여질 수도 있다.


길들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처음, 시작'이다. 록 상처가 날지언정 나의 의사를 전달하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된다. 상대를 배려한다는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이야기 다 하지 않고 관계를 맺다 보면 어느 순간 B의 부분집합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린 왕자>에서 그랬듯 길들인다는 것은 관계를 맺으므로 인해 서로가 특별해지는 것이다.


"누군가를 소중하게 만드는 건 네가 그 누군가에게 쏟아부은 시간이야"


길들이는 것은 한 번에 가능한 일이 아니다. 길들이는 일은 오랜 시간을 걸쳐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대상으로 만드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길들이고 길들여지는 일은 '잘' 해야 한다. 허영심으로 가득 찬 장미와 지혜롭게 관계를 맺을 줄 몰랐던 어린 왕자의 만남처럼 서로가 지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배려라는 것은 나의 모든 것을 버리고 상대의 의견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한 사람의 배려가 강요되서도 안된다. 부부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의 교집합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처음 길들이기'가 매우 중요하다.


그래서 딸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다. 결혼을 하기 전에 웨딩드레스를 입는 환상에 젖지 말아라. 신혼여행이라는 단꿈보다는 평생을 살아가야 하는 배우자와 어떻게 '잘 살사는 법'에 대한 이야기를 입에 단내 날 때까지 했으면 한다.


집안일은 같이 해야 한다, 명절에 양가에 똑같이 방문해야 한다, 아이 교육은 부모의 지나친 개입은 없어야 한다 등 결혼하기 전부터 세워두었던 가치관을 남편과 명확하게 이야기한 후에 인생 2막을 시작해라.


세상에 남자는 많지만 나에게 길들여져 관계를 맺은 특별한 남자는 남편뿐이다. 다른 이에게 길들여진 상대와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관계를 맺기 위해 '나 길들이'를 먼저 하길 바란다.


결국 누군가 관계를 맺는 일은 8할이 나의 태도에 달렸다. 잘못 길들여진 사이에 대해 상대를 탓하기보다는 지금 상황을 일으킨 나의 태도에 문제가 없었는지 돌아보길 바란다. 그리고 기억해라. 길들이는 것은 처음이 중요하지만 곱절의 노력으로 다시 새로운 방향으로 맞춰갈 수 있다는 것을. 너에게 맞는 삶으로 길들이는 것에 주저하지 말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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