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아직 7살인데...

4~7세보다 중요한 시기는 없으니, 엄마인 나는 부지런해야 하는가...

by 친절한금금

"구구단을 이제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아직 7살인데..."

"나는 7살 때 구구단 다 떼고 학교 갔는데?"

"물론 나도 그랬지만... 초등학교 2학년에 나오는 구구단을 미리 할 필요가 있을까?.."


남편과는 교육관이 다르다. 남편은 내가 생각한 것보다 항상 빠른 편에 속한다. 반면 나는 수순에 맞게 하면 된다는 생각이라 "하지만... 아직..."이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사노 요코의 <하지만 하지만 할머니>라는 그림책이 있다. 98세의 할머니는 물고기를 많이 잡아오는 고양이가 신기하다. "어떻게 잡아? 어디서 잡아?" 고양이에게 궁금해서 물어보곤 한다. 막상 고양이가 물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하면 "하지만 나는 할머니인걸" 하고는 가지 않는다.


할머니의 생일날, 99개의 초를 사야 하는데, 고양이가 5개의 초만 가져왔다. 우연히 할머니는 5살의 생일을 맞이한 것이다. 다시금 물고기를 잡으러 가자는 고양이의 제안에 "하지만 나는 할머인데... 아! 맞다! 5살이지"라면서 나갈 채비를 한다. 할머니는 나이라는 프레임 안에 자신을 가두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라서 케이크를 잘 만들어, 할머니라서 뛸 수 없어'라는 말들로 행동에 제한이 가해졌다.


아이는 현재 구구단을 굉장히 잘한다. 심지어 친구들에게 자신의 특기가 구구단이라고 자랑할 정도다.


이렇게 잘하는데 아이가 어리다고 무엇을 망설인 건지 민망할 정도이다. 구구단을 가르치면서도 많은 갈등이 있었다. '아직 7살인데... 굳이..'라는 마음이 한편에 있다 보니 적극적으로 아이를 돕는 것이 아니라 마지못해하는 행동들로 내가 지쳐갔다. 반해 남편은 달랐다. 어떻게 하면 아이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지 고민해서 워크지를 만드는 정성까지 보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1%의 남편이 우리 집에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임숙 작가님의 <4~7세 보다 중요한 시기는 없습니다>라는 책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온다.


어린아이를 공부시키자니 너무 속물적이라는 생각, 다른 한편으로는 조금이라도 뒤처질까 불안한 마음, 이것이 바로 현재 대한민국 부모가 가진 공부에 대한 양가감정이다. 이러한 양가감정은 공부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생겨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겠다. 하루 세끼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고 함께 웃고 쉬고 잠자고 배변 활동하는 일이 필수 과정이듯, 아이의 성장에는 배우고 익히는 공부가 필수다. (중략) 다만, 언제 어떻게 가르칠까의 문제가 중요하다.


어찌 보면 공부에 대한 선입견이 단단히 씌거나 오해를 하고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 자라온 환경에 따라 형성될 수밖에 없겠지만,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해 왔던 나는 아이의 공부를 봐주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부모님이 가르쳐주셨던 것은 구구단과 한글이 전부였다. 이것을 제외하고는 스스로 계획해서 공부했기 때문에 남편이 아이들 공부에 관심을 가지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책상머리에 앉아 아이들과 있을 때 울컥하고 반감이 차오른다. '나중에 스스로 하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하면 더 잘할 텐데..' '6살 때보다 7살 때 한글을 하면 3개월 걸릴 것이 1개월이면 끝날텐데...'라는 마음이 일어난다. 그러면서도 미리 한글을 알면 다양한 것을 볼 수 있을 것 같고, 영어를 미리 알면 편할 것 같으니 불편한 마음을 짊어지고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 것이다.


"아이의 빛나는 순간을 놓치지 마라!" 인용된 책에서 나오는 말이다. 아이들의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어린 나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방치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강압적으로 학습을 하자니 아이의 인권을 침범하는 불편한 감정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이임숙 작가님은 강조한다.


언제,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아직도 저 물음에 대한 답을 구체적으로 내릴 수 없다. 여전히 나의 마음속에는 '때가 되면 다 한다'라는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편과 아이의 교육에 대해 공유를 하면서 하기 싫어도 해야 하는 부분이 있기에 오늘도 저녁을 먹기 전 아이들과 책상에 앉는다.


수학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 보드게임을 한다거나 배경지식을 넓히기 위해 책육아를 하는 바지런함은 나에게 없다. 문제집과 학습지를 끼고 아이들과 둘러앉아 저녁시간을 할애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미 벅차다. 아이들만큼 자신의 성장이 목마른 나에게 오후 시간을 온전히 할애하는 일은 많은 에너지를 필요로 한다. 작년만 해도 내면의 성장을 위해 오전시간을 불태웠는데, 이제는 하나 둘 줄여야 하는 현실에 속이 쓰리다.


매일 저녁, 고삐를 잡아 책상에 끌어 앉혀두고 있는 것은 어찌 보면 아이들이 아니라 엄마인 '나'인 것 같다. 아이들이 어서 자발적으로 공부하는 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할 뿐이다. 나도 공부하고 싶다. 엄마가 시키지 않아도 책상에 둘러앉자 스타벅스 매장음악을 틀어 놓고 각자의 공부를 하는 날이 언제쯤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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