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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발개도리 Dec 28. 2023

서로 다른 시공간, 서로 다른 자유

- 북한과 남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경험이 주는 삶의 밑천 -


2012년 7월 00 어느 날!!

저는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새로운 자유를 얻고 다시 태어났습니다. 

신기하게도 북한에서 태어난 7월 00 날! 

저는 30살이 되는 7월 00 날 대한민국이라는 새로운 세상에서 다시 태어나게 되었습니다. 참으로 의미 있는 날입니다. 새로운 자유를 얻은 대가로 사랑하는 가족과 다시는 만나지 못할 수 있는 이별이라는 값진 슬픔을 치르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만약 북한을 벗어나지 못했다면, 북한이라는 그 우물에서 '세상에 부럼 없어라'를 평생 부르며 살았을 것입니다. 대한민국에서 누리는 자유는 제 인생에 가장 큰 행운입니다. 





30년 만에 처음 맛본 새로운 '자유'라는 행운


저는 처음으로 북한과는 완전히 다른 자유를 만끽하며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마음만 먹으면 미국도가고, 유럽도 가고 어디에든 갈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방방곡곡은 언제든지 떠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이동의 자유는 저에게 신비 그 자체였습니다. 이런 자유를 누린다는 것은 인생의 축복입니다. 


어디든 마음먹으면 갈 수 있지만 제일가고 싶은 곳!! 제일 가까우면서도 제일 먼 그곳! 제 고향이 있는 북한에만 갈 수 없습니다. 언젠가 가는 날이 꼭 오겠지요? 그날을 간절히 기원합니다. 


저는 고향을 벗어나본 적 없이 30년을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특히 평범한 백성이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꿈꿔본 적도 없습니다. 북한 내를 여행하자고 해도 여행 증명서(통행증)를 발급받아야 되고 교통수단 이용도 불편합니다.


제가 2016년에 황해도 친척집으로 여행을 했던 이야기입니다. 여행증명서를 신청한 지 20일 정도 지나 확인과 승인 과정을 거쳐 발급받을 수 있었습니다. 북한은 대부분 이동수단으로 기차를 많이 이용합니다. 저도 기차를 타고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대한민국으로 말하면 서울에서 전라도 갈 수 있는 거리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서너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14일 만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기차가 가다가 고장 나고, 정전되고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서 보름이라는 기간이 걸렸습니다. 집으로 돌아올 때는 10일 정도 소요되었습니다. 이렇게 북한은 길에서 시간을 다 보냅니다. 


대한민국에서 이동의 자유는 저에게 찾아온 큰 행운 중에 행운입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속담이 있듯이 저는 북한이라는 우물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 와서 용이 되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 수 있는 이런 행운이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이런 행운은 3대가 덕을 쌓아야 찾아올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 부모님들이 많은 덕을 쌓은 덕분에 오늘에 제가 대한민국에서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모를 선택하거나 태어날 곳을 선택할 수 없습니다. 가끔은 대한민국에 태어나 어린 나이에 엄청난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해 온 분들의 글을 읽으며, 그런 경험을 하신 분들에게는 정말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그럼에도 저는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것은 그 자체가 '행운'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특히 비행기를 타고 세계를 여행할 수 있다는 자유는 참으로 큰 성취감을 줍니다. 저는 겁이 많아 비행기 타는 것을 무서워합니다. 그럼에도 저에게 찾아온 이 행운을 확인하고, 느리기 위해 기회가 되면 비행기를 타고 여행을 떠납니다. 비행기를 탄다는 성취감이 무서움보다 몇백 배 큰 행복이기 때문입니다. 


'여우도 죽을 때 머리를 고향으로 눕는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저는 지금 이 순간도 고향이 너무 그립고 가고 싶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이 죽을 만큼 보고 싶고, 친구가 그립고, 저의 30년이 그리워 때 없이 향수병 앓이를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군가가 당장 보내줄 테니 그곳에서 살아라고 한다면.... 선뜻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한번 맛본 자유는 너무 강열하기 때문입니다. 



북한에는 '자유'가 있을까?


저는 고향과는 다른 새로운 세상에 적응하면서 만나는 사람들마다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았습니다. 먼저 이 기회에 고마움을 전하며 머리 숙여 감사의 인사드립니다. 처음에 사람들은 흔히 북한에서 왔다면 어떻게 한국에 왔냐고, 또 어떻게 자유가 없는 북한에서, 무서운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어보곤 합니다.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입니다. 북한에는 과연 자유가 없을까? 

이 물음의 답으로 제가 어린 시절 인민학교(남한의 초등학교)에서 배운 노래 '자유가'가 떠오릅니다. 


사람은 사람이라 이름 가질 때 
자유권을 똑같이 가지고 났다
자유권 없이는 살아도 죽은 것이니 
목숨은 버리여도 자유 못 버려 


결론은 북한에도 자유가 있습니다. 북한의 고유명칭은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입니다. 하지만 북한은 북한에서 만의 자유, 대한민국의 자유와는 완전히 다른 자유입니다. 북한에는 표현의 자유, 거주, 이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 등 많은 자유들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저는 제한되어 있는 이 자유들이 자유가 아닌, 당연히 지켜야 될 의무로 알고 살았습니다. 물론 대한민국에서 다른 자유를 경험하면서 비로소 북한의 자유 아닌 자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자유에 대한 책임


북한에서는 한 곳에서 30년을 살다 보니 많은 사람들과 이웃이고, 아는 사람이고, 유치원부터 고등중학교(한국의 중학교, 고등학교 합친 것과 같음)를 다 같이 다닌 친구들이고, 조금 멀다 하게 사촌들, 친척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북한은 사회주의사회다 보니 주로 공동체 의식이 강조됩니다. 가족과 이웃들과의 연대와 협동이 일상의 중심이었고, 조직과 함께 하는 문화가 자리 잡혔습니다. 이러한 가치들은 당연하게 여겨졌고, 저는 그 문화 속에서 소속감과 안전감, 공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북한과는 완전히 다른 한국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웠습니다. 대한민국은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강조되며, 각자의 개성과 꿈을 추구할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 와서 북한과는 완전히 다른 시공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바쁘게 6개월을 헤맸습니다. 어느 날 복지관에 먼저 대한민국에 온 고향 선배와 함께 봉사활동에 참여하였습니다. 그 선배가 어르신들 발 마사지를 해주면서 '이런 게 사회복지다'며 대학에 들어가라고 추천해 주었습니다. 


'이런 게(봉사활동) 사회복지면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여러모로 고민 끝에 젊은 세대와 소통하고 배우다 보면 대한민국을 알게 되고, 진로를 정하게 되리라 생각하며 대학에 들어가기로 결심하였습니다. 2013년 저는 다행히 특별전형으로 사회복지 학과에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에 들어가 정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대학교 생활은 정치적인, 사회적인, 학문적인 차이를 떠나 수업에 참여하든지 말든지, 누구 하나 지시하는 사람 없고 관여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저는 이 시스템에 당황하였습니다. 그러나 북한과는 다른 대한민국의 새로운 자유를 경험하면서 '자유'에 따르는 '책임'도 함께 알아가며 배우게 되었습니다. 


북한은 사회주의 교육 체제에 기반을 두고 국가의 이념과 주체사상체계에 대한 교육이 강조됩니다. 그리고 학생들은 학교에서 일정한 규칙과 통제하에 집단생활은 의무적으로 필수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대학생활은 동아리활동, 학회활동 등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학회장 선거에서 자신을 학회장으로 투표해 달라고 후보들이 캠페인을 진행할 때, 그 활동은 참으로 흥미 있고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습니다. 북한에서 선거는 추천제이기 때문입니다. 북한과 다른 선거방식은 참으로 신선했습니다.


자유란 개인의 선택권과 표현의 자유와 다양한 권리가 포함됩니다. 이는 인간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이 자유에는 무엇인가를 선택하고 행동하는 권리와 동시에 그로 인한 결과에 대한 책임이 따릅니다. 자유는 무제한 선택이 아닌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닌 것에서 시작됩니다. 이것은 자유를 누리는데 꼭 필요한, 필수적인 사항입니다. 


대한민국에서의 자유!! 


자유를 권리처럼 누릴 때 그 자유의 의무를 잊어서는 안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책임감이라는 가치와 함께 존재함을 저는 배우게 되었습니다.


저는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자유와 다양성이 강조되지만, 이로 인한 가족과 이웃과의 연대와 공동체의식이 상대적으로 약해졌다고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북한에서와 대한민국에서 얻은 가치들은 저에게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북한의 공동체 의식은 저에게 협동과 공감의 중요성을 가르쳐주었고, 대한민국에서의 자유와 다양성은 저에게 책임감과 꿈을 추구하고 성장하는 기회를 주었습니다. 


저는 북한에서 30년 그리고 시간여행을 통해 만난 대한민국의 10년의 경험을 통해 저만의 삶을 새롭게 구축하고 있습니다. 가족과의 소통과 연대 그리고 개인의 자유와 독립성을 모두 존중하며, 양쪽의 장점을 결합하여 저만의 유니크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북한과 남한의 서로 다른 시공간, 서로 다른 자유의 다양한 경험은 저에게 넓고 풍부한 시야를 열어주며, 끊임없이 도전에로 이끌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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