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리맨이 존재하던 2000년대 초반
2화, 대한민국 여성은 모두 1번 이상 성추행 당한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여자 넷이서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저녁 5시쯤에 모여서 줄넘기를 하러 가기로 했는데, 길에서 우리를 부르는 낯선 남자의 손짓이 있었다.
"얘들아, 잠깐 여기로 와볼래?"
때는 2004년, 우리 동네는 높은 아파트 단지가 많지 않았던 주택가였다. 나도 내 친구도 주택에 살았고, 주거지역 사이로 시장이 길게 있던 동네였다. 4명이서 그 길을 걸어가는데, 차 한 대가 멈춰 섰다. 그리고 창문을 내려 손짓하며 우리를 가까이 불렸다. 친구들은 창문 너머 차 안으로 시선을 옮겼다. 차 안에는 바지도 속옷도 입지 않은 채 발기된 성기를 흔들며 보여주는 남성이 있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봤으면서도 못 본 척하고 지나쳐 갔고, 세 친구들은 멀뚱히 서서 지켜만 보고 있었다. 그렇게 노출증 환자는 차를 몰고 가버렸다.
"봤어? 봤어?"
“나는 너 못 본 줄 알았어”
누가 그렇게 하라고 일러준 것도 아니지만, 당시 나는 이걸 어른에게 말하지 않으면 정신병에 걸릴 수도 있겠단 생각에 다음날 바로 친구들을 데리고 양호선생님께 갔다. 자초지종을 설명하고 상담을 받았다. 정작 친구들은 아무렇지 않았는데, 나만, 나만 그 이후로 아무렇지 않지가 않았다.
나는 꽤 오랫동안 거의 고등학생 때까지 어른 남성의 바지 지퍼, 소위 우리가 말하는 남대문이 열려있는지 안 열려있는지 체크하는 습관이 있었다. 남성 성기에 대한 트라우마 같은 게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당하는 상대방도 참 당황스러웠을 테지만, 대화 중에도 잠겨있는 걸 눈으로 확인해야만 안심이 되었다. 그렇게 남자라는 존재가 내게는 꽤 오랫동안 불편했고, 은연중 모두가 변태일 수도 있다는 생각과 함께 불신이 생겼다.
우리가 그렇게 중학생이 되고, 다른 학교로 진학하게 되면서 나는 남녀공학으로 학교를 가게 되었다. 다행히 나는 못 봤지만, 그 당시에는 “바바리맨”이란 존재가 있었다.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은 벌거벗은 남자가 출몰하는 시기가 있었다. 그들은 정문으로 당당히 다니지 못하고, 뒷산이나 골목길 같은 곳에 주로 등장했다. 친구들은 학원에서 바바리맨을 본 경험담을 재밌다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듣는 것만으로도 너무 불쾌하고 싫었다. 어떻게 그게 재미가 될 수 있는지 그렇게 남자에 대한 불신은 커져만 갔다.
초등학생 때도 사귀는 친구들이 있긴 했지만, 중학교 때부터 이성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다. 서로 남자친구 여자친구를 사귀기 시작하고, 키스, 섹스란 게 이차성징이 일어나고 있는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큰 이슈 거리가 되었다. 나도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남자친구를 사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