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하는 교수님과 아니, 이젠 '김프로'로 불리고 싶다는 분과 갑작스럽게 당일 약속으로 점심식사를 했다.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다. 내가 교수님과 이렇게 편하게 밖에서 밥을 먹는 날이 올 줄이야. 교수님이 나를 상대해 주는 날이 오다니!ㅋㅋㅋㅋ
급 만나게 된 이유는 내가 교수님께 로고디자인을 부탁드려볼까 싶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로고 디자인, 정부지원금으로 신청해 놓은 돈도 있겠다, 상품개발하랴 촬영 준비하랴 이것저것 하느라 바쁜 나 대신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교수님 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승의 날 선물을 보내드린 다다음날이었나, 연락을 드렸더니 마침 당일 점심시간 가능하시다고 해서, 내 점심 일정까지 미루고 교수님을 뵈러 갔다.
다행히 교수님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다. 그래서 성수에서 보기로 했다. 어디서 점심식사를 할지 나보고 정해보라고 하셔서 그동안 모아놨던(하지만 절대 가지 않는, 사람 많고 줄 서서 밥 먹는 거 딱 싫어함) 성수동 맛집 리스트를 펼쳐보았다. 전에 고기 사달라고 말했었기 때문에 한식 위주의 추천 메뉴 그리고 한 개 내가 좋아하는 퓨전 일식집을 소개해드렸다. 교수님이 그 집을 고를 줄은 몰랐지만, 너 아니면 이런데 언제 와보겠냐며 여기로 가자고 하셨다. 1시까지.
마제파스타
우리가 만나기로 한 곳은 바로! 진작다이닝. 진짜 인테리어 때문에 더 맛있는 효과가 나는 집이기도 하다. 특히 눈이, 아니 귀도 즐거운 것 같기도 하고. 천창에서 내려오는 햇빛과 우드 인테리어가 포인트라고 할 수 있고, 물소리(?)랑 백색소음이 매력적인 것 같다. 편안하고 아늑하고, 내부 공기 관리를 따로 하는지 높은 천장으로 인한 쾌적한 느낌까지. 메뉴 중에 마제파스타를 가장 좋아하는데 이 날도 메뉴판도 안 보고 마제파스타를 고르는 모습을 보더니, 교수님도 마제파스타를 시키셨다. (마제파스타 강추..)
최근에 사이클을 팔아치우고, 브롬톤으로 자전거를 바꿨는데 자전거를 끌고 갔더니 교수님이 역시나 좋아하신다. "야, 너 인생 재밌게 사는구나?" 맞습니다. 교수님, 저 인생 온전히 누리고 있습니다. "세상 맛을 좀 본 거 같아서 반갑다, 야." 제자들이 너무 어려서 말이 안 통한다고, 첫 번째 제자였던 내가 드디어 나이를 먹어서 좋다고 하셨다. 조만간 교수님과 골프 치고, 술잔도 기울일 수 있는 날이 올 것만 같다.
밀린 회포를 풀고 하고 있는 일을 말씀드렸다. 교수님께서는 많이 대견해하셨다. 인정을 받으니 그동안 고생한 세월들이 묶은 짐들이 쏵 내려가는 기분이었다. 교수님은 처음부터 로고 디자인은 해줄 생각도 시간적 여유도 없으셨고, 그냥 내가 보고 싶으셨나 보다. 그리고 장관상까지 받은 제자 한 건 하라며 든든하게 응원해 주셨다. 나도 잊고 있던 내 장관상..ㅋㅋㅋㅋ 그래, 내가 무려 10년 전에 장관상도 받았던 사람인데 못할 게 뭐냐.
여느 아버지들 다 똑같듯이 멋없게 작별인사하는 교수님께 미국 스타일로다가따뜻한 애정 담아 포옹해 드렸다. 아프지 말고 건강 챙기시라고. 곧 또 뵙고 좋은 이야기 주고받아야지. (골프 너무 좋아해서 목디스크까지 왔다는 김프로 님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