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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운 Nov 01. 2020

[논문은 다른 세상 사람들의 글인 줄 알았어]

당장 배움에 뜻이 없는, 열일하던 사람의 착각 

  

공부를 엄청 잘하는 사람도, 그렇다고 딱히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수준의 나. 

예체능적인 흥미도 있고 소질도 조금은 있었지만 ‘기똥참’이 없었던 나.      


국영수사과, 도덕, 체육, 음악, 미술 등등 어느 것 하나 100점은 없는데, 

골고루 두루두루 77~95점 정도. 

그렇게 애매한 수준을 특기 삼으며 살아온 삶이 꽤 오래나 흘러버렸네.


앞으로의 세상은 이런 사람들이 살아남기 좋다는 희망적인 조언... 

‘다능인’이니 ‘N 잡러’이니 하는 새삼 신박한 포장으로 나를 바라보고도 싶었지만, 

나는 늘 내가 맘에 들지 않았었지.


비교하기를 좋아하던 집안사람들의 늪에 빠져 나는 늘 열등감을 달고 살았던 것 같아.

심지어 성별에 있어서도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꽤 많은 차별을 받았고, 

내 나이에 비해 꽤 보수적이고 예스러운 분위기의 유년을 보냈다는 것이 놀랍기까지 해.


이 모든 것은 성인이 되었을 무렵 열등감이라는 글자가 되어 많은 것들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했어. 

우선 착각을 심하게 하기 시작했지. 

‘하면 안 돼. 나는 못해.’라는 착각에 이어 결국

‘네가?’라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폭력을 행사하게 된 것.     


내가 미쳤지. 

그 나쁜 착각들만 아니었더라면 나는 더 많은 일들에 도전하고 

더 많은 경험과 행복을 느껴볼 수도 있었을 텐데.      


일례로 조금 늦게 도전해서 얻은, 

가장 근래 내가 얻은 행복은 ‘논문 최우수상’


대학 가서 졸업만 무사히 잘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아온 인생이었건만. 

내 주제에 감히 석사란 것은 없었지.


꼬리에 꼬리를 문 방송. 예술계 인연과 강의 커리어가 쌓이던 와중 
“고운아, 너도 대학원 가야 돼!”. “대학원 괜찮아. 분명 좋은 도움이 될 거야!”라는 

선배들의 조언이 이어지기도 했어.


그렇지만 왜 가야 되는지, 왜 좋은지에 대해 생각조차 해보지 않았던 나에게는 

선배들이 편하게 던지는 조언이 내심 불편한 거야.


‘그 어려운 것을? 안 가고 안 하면 안 되나?’라는 생각으로 

또 그렇게 몇 년이 흘러버렸어.      


그러던 어느 날 대학에서 교양 과목을 맡게 되는 기회가 생겼어. 

방송. 강의 경력과 다양한 성과를 인정받은 기회였기에 너무너무 기뻤어.

그렇게 나와 대학의 인연이 다시금 이어지게 된 거야. 


나에게 수업을 받는 학생들 가운데 학점 평점이 4.5라거나, 

장학생이라는 친구들이 많아서 놀라기도 했었지. 

나도 학부 때 장학금을 몇 번 받은 기억이 있지만, 

요즘 장학생이 그때 장학생과 수준이 다르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거든. 

    

또 하나의 기회는...

우연히 유명 연예기획사에서 아이돌 연습생의 스피치 코칭을 맡게 된 일이었어.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정말 좋겠네~ 정말 좋겠네~’라며 흥얼거리던 

내 어린 시절이 오버랩되기도 했고 말이야. 


각종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간다는 친구들, 하나라도 더 배워 성장하고 싶단 이들의 눈망울은 

내 가슴속 깊이 너무도 뜨겁게 다가올 수밖에 없었어.


‘하라니까’ 만나게 되는 사람들과 ‘하고 싶어서’ 만나는 사람들의 느낌은 사뭇 달랐어.


내 과목이 꽤 실습이 많아서 실용적이긴 하지만 ‘하고 싶어서’ 배우는 이들에게는 반드시 

스킬 외적으로 학문적인 부분과 여러 가지 계보, 사례들을 

은근하게; 재미있게; 얹어야 만족을 시켜줄 수가 있었으니까.

 

이때부터 나 또한 자연스럽게 배움에 대한 갈증을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아.

뭐든지 저돌적으로다가 배우고 열심히 도전해야 하는 10대 ~20대 초반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다시금 ‘열정’이란 것이 타올랐던 거지.  


결국 나는 뒤늦게 ‘하고 싶어서’ 대학원 문을 두드리게 됐고, 

전공 또한 ‘하고 싶어서’ 문화콘텐츠라는 학문을 선택했어.

대학을 어디로 갈지는 고민조차 하지 않았어.  

내가 공부하고 강의로써 다시 만난 운명적 모교에 지원을 했어. 

그리고 ‘하고 싶어서’ 미친 듯이 연구에 빠져 사시는 교수님을 14년 만에 다시 만나 뵙게 되었지.


내가 스무 살 교양 수업에서 만났던 그 열정적인 교수님의 모습 그대로. . .

아직도 똑같이 수업 준비를 열정적으로 하고 계셨고, 매 수업마다 학생들에게 감흥을 전해주셨어,


교수님 맨치로 내가 학문에 푸욱~ 빠질 수는 없었지만, 

나 또한 ‘하고 싶어서’ 2년 반을 휴학 없이 달렸던 것 같아. 

그리고 마침내 나만의 논문이 완성되었어.


‘1인 미디어 상의 아이돌의 비언어 커뮤니케이션이 충성도에 미치는 영향 : BTS VLIVE를 중심으로’     


정말 내가 쓰고 싶었고, 내가 좋아하고, 내가 배우고 경험한 일들을 접목시킬 수 있었던 

아주 즐거운 '인생 작업'이었어. 


내가 잘할 수 있다는 착각 속에서 맘껏 논문 언어를 펼치도록 도와주신 지도교수님, 

논문 석차 1등인데도 끝까지 뉘앙스 한번 풍겨주지 않으신 

센스 만점 김영재 선생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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