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생각나서"

이유 없는 연락의 이유 한마디

by 이고운

보고 싶은 데에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목소리가 듣고 싶은데, 그래서 연락을 하고 싶은데

이유가 있어야 할 필요가 없다.


굳이 꼭 이유가 있어야 한다면?

"그냥 생각나니까!"






언제부터 그랬던 건진 잘 모르겠다. 사람들과 손가락으로 대화하는 날이 너무도 많아졌고, 이제는 그게 더 익숙해져 버렸다. 전화기가 진동할 때는 왜 놀라는지도 모르겠다. 액정에 '02-'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010'이나 낯선 사람 이름으로 시작하면 왜 긴장을 하는지도 잘 모르겠다. 일단 전화는 받지 않고 어디인지 확인의 확인을 거친 뒤 다시 거는 경우도 있다. 통신 기술이 만들어 낸 신상 증후군인가 보다. 굳이 앓는 증후군까지 신상일 필요는 없는데, 나의 신경 세포들이 꽤나 트렌디하다. (혹시 나와 비슷한 사람은 손!)



이토록 요즘스러운 내게 가끔씩 한방의 '레트로 펀치'를 날리는 사람이 있다. 무슨 일이 있나 싶어서 전활 받으면 아주 해맑은 목소리가 시작된다 "어어~~ 고운아! 그냥 길 가다가 생각나서~~!" 그녀는 다른 시대를 사는 걸까? 그 멘트 한방에 무장해제된 나는 그만 웃고야 만다. 별 다른 이유 없이 날 떠올렸다니까 고맙기도 하고, 다른 이들과는 촘 다른 연락 방식에 신기하기도 하고, 그 매력적인 해맑음이 좋아서 웃는다.


그녀와 나는 어릴 적 친구도 아니고 옆집이라서 알게 된 사이도 아니고 그냥 어쩌다가 알게 된 사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더듬어 보자면 프리랜서와 사업가 사이로서 우연히 콜라보를 함께 할 뻔했었는데, 주최 측 진행이 무산되면서 결국 연락처만 남게 된 사이였다. 서로 친해지려고 크게 노력했던 사이도 아니다. 그냥 같이 하려던 일은 엎어졌지만 밥이나 먹자며 만난 것, 이후로 집도 가까운데 맥주나 마시자며 만난 것, 나이와 고향이 비슷해서 공유할 이야기가 많았던 것 등등이 줄줄이 쌓여 지금의 사이가 된 것 같다.


한참이나 지나서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그녀는 답답한 카톡보다 전화로 말하는 것이 느므 편해서 전화를 먼저 자주 걸게 됐단다. 너모 심플하다. 또한 '관계 짓기'에 있어서는 크게 경계를 만들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렇다 보니 일하다 만난 낯선 사람과 금세 친구가 되는 일이 가능하고, 처음 가는 식당 주인과도 갑자기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말해줬다. "신기하다"라고. 생각해보니까 요즘 넷플릭스에서 즐겨보는 미국 리얼리티 프로그램 속 캐릭터 같기도 하다. 외쿡 사람만큼이나 마음이 열려있고 소통을 참 잘한다는 느낌. 그녀가 음악을 하는 사람이고 사업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과는 또 별개인 부분인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친한 사람에게조차 전화를 걸기 전 먼저 지레짐작 '전화는 귀찮아하지 않을까?' '바빠서 내 연락을 못 받지 않을까?' '*#$@( 하지 않을까?' 등등의 생각을 하는 소심이다. 생일 정도 돼서야 선물하기 버튼과 함께 안부를 전하는 경우가 있고 말이다. 그래도 닮고 싶은 것들에 있어서는 용기 있게 시도해보는 당참이 공존한다는 것이 내 마음속 아이러니.


얼마 전부터 나는 그녀의 따라쟁이가 되어보았다. 물론 너무 과하지 않게. 연락해보고 싶은 친구한테 전화를 걸거나 먼저 해맑은 톡을 건넨다.


"**야, 잘 지내지? 문득 생각나서 연락해!"


사실 걱정이 되기도 했다. "니 뭐 잘못 뭇나?" "오글거린다"(나는 갱상도 출신) 류의 대답이 돌아올까 봐. 그런데 괜한 기우임을 알게 됐다. 대부분은 화답이다. 심지어 상대방으로부터 먼저 연락해줘서 고맙단 말을 몇 번이나 듣기도 했으니 이 정도면 따라쟁이가 되길 참 잘했단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진작 이 간단한 멘트를 할줄 몰랐을까? 왜 바보같이 꼭 특별난 이유나 명목이 있어야 연락을 할 수 있단 사고를 가지고 있었을까? 그리고 왜 먼저 말하지 못했을까? 그냥 그냥 생각이 났다고...


옷을 따라서 똑같이 입는 건 꽤 불쾌하겠지만, 이렇게나 괜츈한 행동 양식을 닮아가는 건 그녀도 좋아할 만한 일이겠지? 그러고 보니 요즘 서로 일상이 바빠서 인스타그램 '좋아요'나 누르고 지낸 느낌이 확연하다. 있다가 자기 전 야행성인 그녀에게 전활 걸어봐야겠다.


"언니~ 그냥 생각나서 연락해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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