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셨군요, 선생님. 많이 불편하셨겠습니다."
"저라도 같은 상황이라면 화가 났을 것 같습니다."
전화 응대를 실습하는 가운데, 교육생 한 명의 표정이 자꾸만 눈에 들어왔다. 어디론가 성인 교육을 가면, 이런 사람이 한 두 명씩 나타나곤 한다. 입술은 분명히 친절을 말하고 있지만, 표정이 '귀찮음'을 외치는 그런 사람 말이다.
이날은 공공기관에 민원인 응대 교육을 나간 날이었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꼭 '교육받는 것도 귀찮고, 친절하기도 귀찮아'라며 외치고 있는 한 사람이 강의 내내 마음에 걸리기 시작했다. 보통은 둘 씩 짝을 지어 대화 실습을 하게 되면, 하하호호 유쾌한 웃음을 비치며 적극적으로 임하는 경우가 많았기에 이런 분은 나의 연구대상이 되고야 만다.
적극적이지 않은 이 분 옆에 다가가 나는 더욱 활짝 웃어 보이며 말했다. "선생님, 조금만 더 입꼬리를 올려 말해 볼게요. 표정을 지으면서 말하면 좋은 목소리가 더욱 빛난답니다." 그러자 이분은 마지못해 애써 웃음 지으며 실습에 응하기 시작했다.
"여러분, 너무 수고 많으셨습니다. 쉬는 시간 10분 정도 가지고 다시 교육 들어갈게요!" 한 시간 가량을 열강한 뒤, 나는 쉬는 시간을 알렸다. 이어 물 한 모금을 들이키려는 내게 뚜벅뚜벅 걸어오는 이 사람. 아니나 다를까 좀 전의 그 사람이다.
(교육생) "강사님. 저 궁금한 게 있어서요~"
(나) "네네. 말씀해주세요!"
(교육생) "제가 표정이 많이 없나요? 사실 평소에도 그런 말을 많이 들어서 좀 신경이 쓰였거든요."
(나) "그랬군요. 선생님, 많이 신경 쓰이셨겠습니다."
"저라도 같은 상황이라면 많이 답답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저는 제 강의가 그렇게 재미가 없나 싶어서 반성을 하고 있었답니다." (하하)
나의 말이 좀 전의 수업 내용을 응용한 멘트라서 그런 건지, 갑자기 웃음을 지으시는 이분. '아니, 표정이 없으시다더니 일부러 안 웃으신 거 아냐?', '아니면 내가 좀 명강사인 거야?' 조금 허탈해지는 순간이었지만 기분만큼은 매우 뿌듯했다. 이어 쉬는 시간 내내 표정 꿀팁을 서너 개 정도 방출해드렸더니 훨씬 더 만족스러운 얼굴을 보여주셨다. 너무 다행이었다.
고객 응대 부분은 교육하면서 가끔씩 의문에 빠질 때가 있다. '이렇게 배운다고 해서 정말 실질적인 상황에 적용이 될까?' 서비스직 출신이 아닌 데다 직접 응대 현장에 있지 않는 나로선 내심 궁금한 부분이 있었다. 말하기를 업으로 삼았던 덕분에 상황과 상대에 따른 화법 연출엔 자신이 있었지만, 실사례와 관련한 내용은 외부 케이스를 도입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 그래서 종종 주변의 서비스 직군 지인에게 설문을 하기도 한다.
이날은 이분으로 말미암아 나의 커뮤니케이션 교육 내용에 관한 확신을 더한 날이었다. 즉각적인 말의 효과를 보여주셨기 때문에 더욱 감사했던 순간으로써 생생하게 남아있고 말이다.
그러니까 '그랬군요'라는 한마디는 정말로 옳았다. 이분의 고충을 헤아리고 공감함으로써 좀 더 우리는 가까워졌고, 결과적으로 더 좋은 교육 효과까지 누릴 수가 있었으니까. 내가 만약에 다짜고짜 "네. 표정이 좀 없으셨어요. 그래도 훈련하시면 나아질 겁니다!"라고 응대를 했더라면? 그 뒤의 분위기는 별로 상상하고 싶지가...
어린 시절 철없던 남동생은 자주 나의 말에 반박을 하곤 했다. 말의 앞자리에 자주 '그런데', '그래도'라는 말을 자주 배치시키며 지식이나 생각의 우위를 높이려고 했던 대단한 동생님. 당연히 나는 그런 화법에 자주 화가 났다. 내가 옳든 그르든 간에 인정하거나 받아주지 않는 태도가 섭섭했던 것이다.
이렇듯 한마디에 관한 힘을 배우면 배울수록, 나의 그때 그 순간들은 퍼즐처럼 끼워진다. '그래서 그런 거였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타인을 향한 나의 고개는 더욱더 숙여진다.
가끔씩은 반발심도 들었다. '왜 자주 내가 숙여야 하는 건데?' 하면서 이놈의 커뮤니케이션 화법이 '나다움'을 해치는 느낌까지도 받았달까. 하지만 이내 진리에 승복했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이라는 진리, 그리고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말이다.
소위 요즘 친구들이 말하는 꼰대님들은 도무지 이런 화법에 익숙하지가 않다. 우선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을 인정하고 수긍하는 공감 화법이 내심 맘에 들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옳음과 앎을 내세우며 상대의 부족함을 확인하고 싶어 하는 그 성미와 말 습관을 애써 누른단 게 사실 어려운 일이니까.
하지만 꼰대님이 그 빼족한 말 습관을 이어가다간 불현듯 외로워질 것이 당연하다. 이어 자신의 외로움을 인정받고 싶어 질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이 한마디를 건넴으로써 그의 눈물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랬구나"
"많이 외로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