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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고운 Apr 13. 2021

“걱정했어요”

-답답함, 그러나 이해함 한마디

       “무슨 일 있었던 건 아니죠? 걱정했어요.”
    


괜히 사람 미안해지게 만드는 B 씨의 한마디. 자주 그런 건 아니지만, 할 일에 빠져 잠시 스마트폰을 잊고 있었던 내가 카톡 연락을 일찍 해주지 못한 까닭에서였다. 지난번에도 연락에 늦은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늦어지자 무려 11통의 톡을 보내 놓으셨다. 내가 답을 하지 못하는 동안 답답함에 메시지를 그렇게나 많이 보내 놓은 것이다.      


가끔은 결이 너무 다르고, 에너지가 사뭇 달라서 그에 호응하기가 힘든 사람들이 있다. 성격이 나쁘거나 행동이 무례하다거나 그런 것 하나 없이 모두 각자는 좋은 사람들이다. 다만 내가 그에 어울리는 스타일이 아닐 수 있고,  상대가 내게 다가서는 방법을 모르는 걸 수도 있다.     


B 씨와 내가 그렇다. 내 입장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카톡을 주고받을 만큼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그저 프리랜서인 내가 일로써 몇 번 얼굴을 보고 이야기 한 어느 회사의 관계자일 뿐. 그래서 상대방의 과한 친화력이 내게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마도 B 씨는 나와 친구가 되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이를 어째야 한담 우리의 온도차가 큰 것을! 나는 도무지 친구가 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았던 까닭에 내심 미안했다.



    




언제부터일까, 일적인 연락마저도 일반 메시지가 아니라 SNS와 카톡으로 주고받는 시대가 됐다. 그러다 보니 상대방에게 사적인 정보가 노출되기도 하고, 그러다 가끔은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가 되기도 한다. 꼭 얼굴을 보면서 대화를 통해 무언가를 깊이 공유해야만 관계가 형성되던 인맥 맺기가 구식이 된 요즘이다. 누군가를 만나고 사귀고 헤어지는 일마저도 카톡으로 해결한다고 하니까 문득 격세지감을 느끼고 말이다. 이렇게나 달라져버린 일상 문화에 한편으로 공감을 하면서도, 그에 따른 개인적인 아쉬움과 부담감을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가 고민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늦게 SNS 메시지를 확인하거나, 쌓여있는 카톡의 1을 해소하지 못할 때 죄책감마저 느끼곤 했다. 그렇게 상대방의 입장에 서서 생각을 하다 보니 어느새 내가 스마트폰의 노예가 된 기분이 들었다. ‘에라, 2G 폰으로 다시 돌아갈까?’ 싶었던 순간에도 다들 카카오톡으로 일을 공유하고 친교를 쌓는 요즘인 까닭에 족쇄가 차였다. 이런 나를 두고 스스로 세련되지 못한 사람이라고 치부하려다 우연히 숙명여대 심재웅 교수의 인터뷰를 찾아서 보게 됐다.  

    

심 교수에 의하면 사람들은 카톡을 대화로 생각하지만, 본질적으로 그것이 온전한 대화는 아니다. 카톡에 담긴 문자와 카톡을 보내는 마음은 서로 다를 수 있고, 이러한 과정에서 사람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는 것. 무엇보다 SNS에 스트레스를 받는 가장 큰 원인은 카카오톡의 수신 확인 기능 때문이다. 그는 특히 숫자 ‘1’ 표시로 확인할 수 있는 이 기능은 커뮤니케이션을 순수하지 못하게 만드는 기능이라고 꼬집었다. 보낸 사람 입장에서는 문자를 안 읽은 것에 대해 의미를 부여하거나 왜곡을 하기도 하기 때문. 반대로 문자를 받는 사람 입장에서도 큰 압박감을 받을 수도 있다.      


수년간 이어져온 청년들의 ‘혼밥’, ‘혼술’, ‘혼여’ 문화, 그리고 요즘 사람들의 ‘인맥 다이어트’의 확산도 바로 이러한 SNS 부작용과 스트레스의 연장선상에 자리하고 있다고 하니 보통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이렇듯 명쾌한 전문가의 설명 덕분에 ‘이런 사람이 의외로 많다니까!’ 하면서 내 스트레스가 딱히 유별난 것이 아니라는 확인을 하게 된다. 그렇지만 요즘 문명인인 내가 기술과 문화의 흐름을 어찌 거스를 수가 있으랴. 나만의 기준과 세상의 기준, 그 사이에서 무게 중심을 제대로 잡아야 할 것이다.     



   




아마도 앞서 이야기한 B 씨는 내가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마음의 온도가 다르고 속도가 다른 나에게서 짜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B 씨가 나를 이해하려는 한마디를 건네줘서 너무 고마웠다. “걱정했어요”라는 한마디에 오히려 내 마음이 열리기도 했으니까 말이다.       


간혹 연락에 늦을 때면 바짝 쫄아있곤 한다. “아니, 뭐가 그렇게 바빠서 내 메시지를 안 보는 거예요?”하면서 다짜고짜 따지고 든 격한 사람도 분명히 있었기 때문이다. 친구이든 거래처든 누구든 간에 상대 입장을 모르고서 답답함에 내지르던 갑작스러운 짜증이 내게는 당황스러웠고, 결국에는 상처가 되기도 했다.   

         

답답하더라도 조금만 더 기다려주면 안 될까?

조금 다르게 표현해주면 안 될까?

서로의 속도가 다름을 이해할 때, 친구가 되는 속도는 더욱 빨라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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