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고운 May 14. 2021

“인생 경험 하나를 쌓았다”

내 마음에 처방하는 백신 한마디

     

마음을 다쳤을 때 바르는 연고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피부에 난 생채기에는 연고를 바르면 되지만, 마음의 상처를 치료하기는 생각처럼 쉽지가 않다. 사람마다 상처의 깊이와 치유 속도마저 다른 까닭에 누구나 평생을 고민하게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더군다나 사람과 사람이라는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누군가와 상처를 주고받는 일에는 이따금씩 노출될 수밖에 없으니까.


나 또한 이 주제에 대해선 무척 관심이 많다. 평소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기도 하고,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을 교육하는 사람이기도 하니까 말이다. 더 나아가 어느 한편이 아니라 서로에게 ‘조금 덜 상처인’ 한마디를 고민하기도 한다.   


그리고 비단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속에서 뿐만 아니라 드라마에서도 상처는 등장인물 간의 갈등과 이야기의 전개 포인트로서 작용하는 것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얼마 전에는 케이블 채널을 이리저리 돌리다 보니 20년도 더 된 인기 드라마 ‘청춘의 덫’이 방영되고 있는 게 아닌가.


드라마의 전반적인 스토리는 남자에게 버림받은 후 단단히 상처를 입은 한 여인의 복수극. 극 중 배우 심은하가 보여주는 절규가 여전히 몰입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특히 독기를 강하게 내뿜으며 뱉어내던 그녀의 멘트 하나가 요즘도 자주 회자되는 명장면으로 손꼽힌다.


 "당신, 부셔버리겠어."


이 한마디가 안방 시청자들의 긴장감을 높이면서도 한편으로 통쾌함마저 선사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격한 말들이 분분한 막장 드라마가 더 많은 시청률을 끄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현실에서는 이토록 극단적인 말을 쓰기가 매우 조심스럽고, 격한 언어를 쓴다 하더라도 득이 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당신은 어떠한가? 물론 상처를 입었을 때 바로 상대에게 강하게 응수하듯 받아치는 사람도 있겠지만, 반대로 집에 돌아와서 속을 끓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대놓고 싸우자니 후폭풍이 두렵고, 마음이 아픈 상황을 꾹 참고 견딜 수만도 없는 일. 밑지는 느낌에 혹은 바보가 되는 기분에 우울감마저 찾아오곤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우선의 상황에서 벗어나 최대한 감정을 배재하려는 노력을 들인다. ‘상처 받았다’라는 생각이 더 깊은 감정을 자아내는 까닭에 최대한 ‘이 또한 좋은 경험이다’는 생각으로 감정 빼기에 힘을 기울이는 것. 사실 상처에 대한 보상을 바라거나 상처를 준 사람에 대한 복수를 꿈꾸기에는 미처 에너지가 부족한 데다 상대방을 자극하는 상황은 대개 결말이 좋지 않다는 것을 이미 직. 간접적으로 경험해서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정은 ‘상처 받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연습’이기도 하다.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상처를 받는 일에 쉽게 노출되어 있는 일상. 그때마다 감정 소모를 해대며 건강마저 해치느니 ‘경험’이라는 측면에서의 사고를 끌어내어 나에게 이로운 효과를 부여하자는 차원에서다.


빅터 프랭클은 나치의 아우슈비츠에서 생존한 비결을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자극과 반응 사이에는 어떤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 자신의 반응을 선택하는 우리의 힘이 존재한다. 우리의 반응에는 성장과 자유가 있다."


어떤 사람은 상처라는 자극을 준 사람에 대해서 강한 집착을 보이고, 또 다른 사람은 우선 스스로의 치유에 집중하여 면역력을 기른다. 후자는 마치 상처에 대한 강력한 백신을 맞는 일과도 같다. 생각의 전환이라는 반응을 선택한 우리에게는 한결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 방어막과 성장이 찾아오는 것이다.


당장 치유에 성공하지는 못하더라도 실망할 필요가 전혀 없다. 일부러라도 생각만큼은 달리 먹어볼 수 있다. “좋은 인생 경험 하나를 쌓았다!" 이렇게 한마디를 뱉으며 마음속 백신 한 대를 놓아주자. 곧이어 한결 평온해진 내면과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걱정했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