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Yes 걸
안녕하세요. #MumzHive 주인장 김현주입니다.
오랜만에 햇볕 내리쬐는 환한 공간에서 글을 씁니다. 인공강우 실험을 자주 하는 이곳이지만 올해는 심한 거 같아요. 사막 한가운데서 까무잡잡한 구름을 마주하다니요. 오랜만에 햇볕을 보니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거 같아요. 좋은 일만 가득하면 좋으련만, 오미크론 영향으로 학교는 텅 빈 느낌이에요. 오전 8시에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놓고 나니, 몇 년 전 오전 10시에 커피 모닝 하던 그때로 생각나네요.
커피 모닝은 각국 영어를 쓰는 여성들이 만나서 이런저런 정보도 주고받고 친목을 다지는 소모임이에요. 저는 그곳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 해외 생활의 즐거움을 하나씩 알아갔어요. 그 과정에서 친구를 사귀면서 새로운 환경에 익숙해지기 시작했어요. 한국에 있었다면 굳이 하지 않았을 여러 활동을 반강제로 (친구들 덕분에 ) 이어 나갔어요. 예를 들면 여러 명 친구를 초대해 음식 대접하기, 꽃꽂이 배우기, 허브티 마시기, 특이한 이벤트 참여하기, 바다에서 수영하기, 오가닉 마켓 들러보기, 중고마켓에 물건 팔기 등등이에요.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우연찮게 시작한 커피 모닝은 두 시간 동안 영어 듣기 수업과 비슷했어요. 각 나라 호주, 영국, 미국, 캐나다에서 온 네이티브 아주머니들 엄마들 새댁들 영어를 들었습니다. 그저 졸리고 무슨 말인지 몰라 웃느라 얼굴 근육이 굳는 거 같았지요. 토익 리스닝 시험시간도 아닌데 어찌나 졸리던지 커피를 두 잔씩 먹고 싶었어요.
간혹 용기 내어 말이라도 꺼내보면 어느새 이 사람 저 사람 모여들어 저쪽에서 수다 떠는 모습을 지켜만 보게 됩니다. 아는 주제가 나와도 끼어들기도 애매한 그런 타이밍이 이어졌어요. 커피 모닝은 딱 두 시간이에요. 끝나면 집에 돌아와서 아쉬워했더랬지요. 다음번에는 어떻게 해야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까? 이 시간을 좀 더 의미 있게 보내고 싶은데 하면서요. 몇 주가 지나서야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프레젠테이션은 아니지만 가서 말할 내용을 미리 준비하면 좋지 않을까?
아랍어 클래스 정말 어렵다는 이야기,
저녁 산책 후 도넛 먹은 이야기,
이국적인 인도 카레 이야기,
체육관에서 복싱 수업 한 이야기, 등등 일상적이면서도 제 딴에 재미난 이야기를 준비했어요.
전날 저녁 한두 가지 주제로 짧은 스크립트를 준비했어요. 다음날 아침 10시 커피 모닝 장소로 이동했지요. 큰 맘먹고 아주 활기차고 한껏 기쁜 마음으로 "Hello" 하고 인사를 시작했어요. 몇 번 나가다 보니 아는 얼굴도 보였어요. 커피를 주문하기 전에 친구들 얼굴을 하나씩 마주하면서 인사했어요. 처음 보는 사람에게는 간단하게 자기소개도 했고요. 익숙한 얼굴이 보이면 "또 봐서 반갑다고" 인사했지요. 큰 용기를 내어 후다닥 인사를 마치고 나니 뿌듯했어요. 마치 먼가 대단한 일이라도 한 거 같았습니다.
붙임성 좋은 Tanya 이야기는 저번에 말씀드렸지요. 세상 밝은 친구라고요. 까무잡잡한 피부는 더 까매졌어요. 바닷가에서 하루 종일 놀다 온 사람처럼요. Tanya 옆에 앉아서 준비한 대화 내용을 말하려 했지요. 그런데 Tanya가 선수를 치네요. 다시 보니 반갑다며,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반갑에 맞이해 줍니다. 그래서 그렇게 특별한 일은 없었다고 했지요. 그랬더니 자기가 좋은 곳을 안다면서 같이 밥 먹으러 가재요. 커피 모닝 끝나고 출출하니까 나온 김에 같이 점심이나 먹자면서요.
얼결에 Yes라고 대답했어요. 여기에 와서 No를 외친 적이 거의 없어요. 성격이 변하나 봅니다. Tanya 옆에 앉아서 이야기를 듣고 가끔씩 소리 내어 제 이야기도 하고 좀 더 익숙하게 대화에 낄 수 있었어요. 그 친구가 대화 도중 주위에 앉은 사람들에게 물어봐 주고 또 이야기를 이어나가더라고요. 나중에서야 이게 그 친구의 배려란 걸 깨달았어요. 사회성 부족한 제가 옆 친구를 직접 보면서 이렇게 배웠습니다. 이게 모임에서 갖춰야 하는 태도라는 걸 말입니다.
Tanya는 소위 인싸였나 봐요. 커피 모닝의 모든 친구들이 그녀를 보면 환하게 미소 지었어요. 수다쟁이였고 리액션도 거창했어요. 크게 웃고 맞장구치고 다른 사람과 함께 좋은 내용을 공유했어요. Tanya에게 이야기하면 그룹 전체가 그 내용을 알 정도였지요. 저는 그 친구 옆에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모임을 즐기게 되었어요. 그 친구의 제스처만 봐도 두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데 아직 입을 떼기도 힘들었거든요.
변화가 있었다면 모임에서 다른 친구들이 하는 이야기를 아주 집중해서 듣게 되었어요. 그래서 짧지만 한마디는 할 수 있었어요. 이런 점이 좋았다 던 지 나도 그런 적이 있었다 그 정도의 말들이요. 정말 집중했기 때문에 커피 모닝 후에는 집에 가면 푹 퍼져 있기도 했어요. 영어 리스닝 두 시간 하면 힘들잖아요. 또 하나의 변화는 왓츠앱으로 친구들과 대화도 시작했어요. 아랍에미레이트에서 왓츠앱은 카톡 정도의 SNS 에요. 전화번호가 있는 누구든 이 왓츠앱 계정이 있어야 지내는데 불편함이 없지요.
아주 작은 변화였지만 일주일에 커피 모닝 두 시간은 아랍에미리트에서 생활에 큰 부분을 차지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