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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노 Mar 24. 2021

지시하지 말고 질문하라.

기계와 경쟁하지 마라.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변화는 항상 있어왔지만 이번은 과거의 양상과 다른 공포를 안겨 준다. 공포의 근저에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기술로 인간의 고유 영역이 밀려나는 현상에 있다. 과거 산업혁명을 거치며 기계는 계속 인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었지만 인간이 주인의 역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지식을 습득하고 종합적으로 분석하여 판단하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인공지능이 이러한 인간의 능력을 더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 여러 분야에서 입증되면서 기존 인간과 도구로서의 관계에 일대 변혁을 예고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이 점점 더 가속화되면서 인간과 기계의 새로운 역할 정립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최근 미국의 인공지능 회사 오픈 AI가 2020년 5월에 공개한 GPT-3은 지금까지의 AI와는 차원이 다르다. 지금까지 간단한 질문에만 답하고 사람이 하는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해 엉뚱한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면, GPT-3은 인간의 말을 인간처럼 알아듣는다. 1750억 개에 달하는 파라미터(매개변수)로 다양한 답변을 할 수 있고, 인간이 생각하지도 못했던 이야기를 능숙히 이어갈 수 있다고 한다. 최대 2048 단어까지 기억해 문맥을 파악해 어떤 말이든 질문을 이해하고,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의 상식 확보가 가능하다고 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오픈 AI는 앞으로 100조 개의 파라미터까지 발전시켜 더 다양한 기능을 수행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분명 사회 전반에 큰 변화가 일어나겠지만, 그렇다고 AI가 교사가 되고, 의사가 되고, 판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교사를 보조할 수 있고, 의학적 지식을 조언하고, 법률 지식을 조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기계와 경쟁하기보다는 기계와 공생하는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역사가 말해 주듯 기계와 경쟁에서 우리는 이긴 적이 없다.     

1870년대 철도노동자로 일했던 전설의 노동자 존 헨리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압도적인 체격과 업무능력까지 겸비한 넘사벽(매우 뛰어나서 아무리 노력해도 따라잡을 수 없거나 대적할 만한 생대가 없음을 이르는 말)이었다. 어느 날 공사현장에 시간과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기계가 도입되고, 철도노동자들은 기계 때문에 자기들의 일자리를 잃을까 봐 걱정을 하게 된다. 이때 존 헨리가 나와 기계보다 인간이 훨씬 잘할 수 있다며, 기계와 경쟁을 펼쳐 보겠다고 나선다. 그리고 존 헨리와 증기 드릴은 동시에 산을 뚫기 시작했다. 얼마가 지났을까 굴을 뚫고 먼저 모습을 드러낸 것은 존 헨리였다. 모두가 환호하며 열광하는 순간 존 헨리는 쓰러져 죽는다. 최초 기계와 경쟁에서 패하는 순간이다. 존 헨리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런 메시지를 전한다. 죽을 만큼 하지 않으면 기계를 이길 수 없구나, 그리고 지금 이겼지만 조만간 기계가 이기겠구나.     

그리고 2012년 2월 퀴즈 게임에서는 IBM의 왓슨이 2004년에 74번이나 우승한 켄 제닝스와 그런 제닝스를 2005년에 이긴 브래드 루터를 상대로 이겼다. 이 대회에서 왓슨은 43번의 단추를 눌러 38번의 정답을 맞히고, 제닌스와 루터가 먼저 누른 횟수는 둘이 합쳐 33번에 불과했다. 이틀에 걸친 대회가 끝났을 때, 왓슨은 상대인 인간들이 번 액수의 세배가 넘는 7만 7천147달러를 벌었다. 2위를 한 제닝스는 패배를 인정하며 이렇게 말했다. “20세기에 새 조립라인 로봇이 등장하면서 공장 일자리가 사라졌듯이, 브래드와 나는 ‘기계에게 밀려난 최초의 지식산업 노동자입니다.’ 그리고 나는 내가 마지막이 아닐 것이라고 믿습니다.”

2016년 3월에는 컴퓨터와 인간의 바둑 대결에서 알파고가 이겼다. 그리고 이어서 1년 후 알파고는 2017년 5월에 당대 바둑 랭킹 1위 중국의 커제에게 완승을 하였다. 이세돌은 알파고와의 대결에서 조금도, 한순간도, 앞섰다고 느낀 적이 없는 완패를 인정했다. 바둑은 경우의 수가 흔히 우주에 존재하는 원자의 수보다도 많다고 한다. 이렇게 경우의 수가 많음에도 불고하고 인간은 기계에 완패를 했다.     

이것은 딥러닝 기술의 결과다. 딥러닝은 컴퓨터가 사람처럼 생각하고 배울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을 뜻한다. 딥러닝도 기계학습의 한 분야이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의 가르침을 거치지 않고도 스스로 학습과정을 통해 미래의 상황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알파고도 이세돌과 대결하기 전 끊임없이 바둑 기보를 가지고 전략을 스스로 학습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인공지능 의사 IBM의 왓슨은 의학서 1500만 쪽 분량의 의료정보로 구축된 데이터베이스와 환자의 진료 정보를 바탕으로 가장 성공률이 높은 치료법을 제안해주고 있으며, 지금도 한 달에 7만 개 이상의 의학 논문을 분석하며 무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인간이 인공지능의 영역에서 경쟁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가를 잘 보여주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알파고든 왓슨이든 이러한 인공지능의 영역이 이미 우리가 만들어 놓은 답에 의해서 만들어진 기계학습을 넘어 스스로 학습을 통해 무서운 속도로 진화하는 데 있다. 24시간 잠을 자지도 먹지도 커피를 마시지도 않고 365일 단 하루도 쉬지 않고 학습이 가능한 기계와 같은 영역에서 경쟁한다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사람의 일자리는 위협받고 기계의 일자리만 늘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공지능이 아니라 인간지능이다. 

인지과학자 스티브 핑거는 이렇게 설명한다. “35년 동안의 인공지능 연구가 준 중요한 교훈은 어려운 문제는 쉽고 쉬운 문제는 어렵다는 것이다. 새로운 세대의 지적인 장치가 등장함에 따라, 주식 분석가와 석유화학 공학자와 같이 어려운 일은 기계로 대체될 위험에 처할 것이다. 반면에 정원사, 요리사, 간호사와 같이 수시로 발생하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관이 동원되어야 하는 일은 수십 년 동안 직장을 지킬 것이다.” 이 말은 모두 정원사나 요리사, 간호사가 되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인간만이 가능한 인간지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우리는 아직 창의적인 기계나 모험적이고 혁신적인 기계를 본 적이 없다. 운율에 따다 문장을 지어낼 수 있는 소프트웨어는 나왔다고 하지만 감정이입이 된 시를 쓰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는 소식은 없다. 산문을 지울 수 있는 프로그램의 탄생은 놀라운 일이지만 무엇을 써야 할지를 이해하는 프로그램은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인공지능이 못하는 활동에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창의적인 활동이다. 궁금해하고 상상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것은 기계가 인간을 따라올 수 없는 영역이다. 과학자는 새로운 가설을 떠올리고, 기자는 좋은 기사를 구상한다. 요리사는 새로운 요리를 추가하고, 공학자는 기계의 작동하지 않는 이유를 생각한다. 디자이너는 인간이 욕망하는 디자인을 구상한다. 기계는 이런 일들을 지원하고 촉진시킬 수 있지만 이런 활동을 주도적으로 이끌지는 못한다. 어느 날 파블로 피카소가 컴퓨터를 두고 ‘대답만 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한 것은 맞는 말이다. 기계는 답은 할 수 있지만 질문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가치를 생각하는 질문은 오직 인간의 영역이다. 그러나 여전히 대답하는 일에 열심인 사람은 머지않아 기계에 의해 밀려날 것이다. 그리고 이제 기업의 채용도 어떤 답을 하는가 보다 어떤 질문을 하느냐로 사람을 판단할 것이다.     

이제 말하지만 나는 직장에서 오랫동안 채용업무를 담당하며 면접관으로 많이 참여했었는데, 이때 당락을 결정한 것은 내 질문에 대한 답이 아니라 응시자의 질문이었다. 대부분 면접은 면접관이 질문하고 응시자가 답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다. 그러나 나는 질문을 마치면 반드시 응지자가 면접관에게 질문을 하게 했고, 그 질문의 수준으로 당락을 결정했다.     

인공지능은 인간지능의 한 부분을 극단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시도에서 탄생했다. 그리고 특정 분야에서 인간을 넘어섰지만 특정분야가 인공지능의 한계다. 여전히 인공지능 로봇은 프로그래밍된 틀 안에서만 인간을 능가할 수 있다. 딥블루는 체스, 왓슨은 퀴즈게임에 능력을 보이고, 알파고는 바둑에만 놀라운 능력을 보일 수 있는 것이다. 반면에 우리는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오감에 사물이 닫는 순간 정서적 파동이 일어난 새로운 의미를 만들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힘이 있다. 

스페인 의류회사 자라는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지능의 이점을 적극 활용하여 소비자의  변화를 가장 빠르게 반영하는 페스트 패션 전문기업이다. 자라는 매장 관리 알고리즘을 참조하는 것이 아니라 매장 관리자들의 의견을 참조한다. 매장 관리자들은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들의 옷을 관찰하고, 어떤 옷을 좋아하고, 어떤 옷을 찾는지 이야기를 하고 들으면서 고객의 필요를 상세히 느끼고 파악한다. 매장 관리자들은 이런 과정을 통해 얻은 정보를 정리하여 본사에 전달되고 수집된 정보를 바탕으로 새로운 디자인의 옷이 나온다. 자라는 한번 생산한 디자인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재생산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하다. 끊임없이 변하는 고객의 욕구를 반영하는 자라의 디자인이 언제나 새로운 이유다. 

인공지능이 사람만이 할 수 있었던 영역을 잠식해오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오감을 기반으로 감정을 표현하고 삶의 패턴을 인식하고 복잡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등 직관적인 활동에서는 대부분 인간이 우위를 보이고 있다. 예를 들어 영업사원은 고객과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수준 높은 상호작용을 만들어갈 수 있으며, 상대방의 욕구와 필요를 생각하고 파악한다. 부족한 부분은 질문이란 인간만이 쓸 수 있는 도구를 사용해 차이를 좁혀간다. 이렇게 서로 이해의 과정을 거쳐 신뢰하고 사랑하게 된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우리는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갈 날이 길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잘 살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해야 한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 인간이 더 잘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사유하고 질문하는 일이다. 인류는 생각과 질문이 만드는 차이의 반복으로 발전해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조직의 발전도 다르지 않다. 생각하지 않아도 살아갈 수 있는 조직이란 없다. 사유하고 질문하는 조직만이 살아남는다. 리더의 사유와 질문이 멈추면 구성원들은 수용에 길들여진다. 수용에 길들여진 조직은 기계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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