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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관노 Mar 31. 2021

지시하지 말고 질문하라.

숫자의 차이가 아니라 가치 차이다.

기업은 매년 4분기가 되면 다음 연도의 경영전략 수립에 바쁘다. 그 계획은 경제 동향과 산업 조건의 상황에 대한 거창한 묘사로 시작한다. 매출 목표와 예산을 설정하고 그에 따른 M/S 확대 전략, 새로운 시장개척, 비용 감축 방법 등 수많은 숫자로 채워지고 지나칠 정도로 많은 그래프가 첨부된다. 그러나 이 과정의 목표는 경제 상황과 무관하게 언제나 위에서 정해진 숫자로 결정된다. 이렇게 목표가 정직하지 못하니 과정 또한 아름답지 못하고, 경영자들은 경쟁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방법을 찾고 개발하는 대신 전형적인 틀에 끼워 맞추는 수치를 찾느라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만들어진 목표와 전략이 각 부서에 하달되지만 누구도 목표에 공감하고 전략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기업이 나가야 할 선명하고 통일된 방향성 없이 각 부서마다 잡다한 전술로 가득하다. 이런 상황이 우리 회사의 경영 전략 수립 과정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시장이 안정되고 약간의 변화가 수반되는 상황에서는 지금과 같은 기업의 전략이 효과적일 수 있다. 그동안 기업들이 3년에서 5년 단위로 세우던 계획도 예측 가능한 변화만큼만 수정하면 되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많은 기업들이 본래 계획이라고 만든 전략이 얼마 안 가서 진부 해지는 경험을 한다. 시장은 계획기간이 끝나기도 전에 이미 앞서가는 상황을 많은 기업들이 경험하고 있다. 3년 계획은 1년 계획이 되어 버리고 1년 계획은 6개월을 넘기지 못하고 폐기하는 사례도 있다. 우리가 숫자로 세우는 계획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는 것이 되어버린 것이다. 

지금까지 시장이 발달한 경로를 따라가는 전략은 기업에 장애가 되고, 시장의 가능성에 대해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방해한다. 이제 어떤 전략도 시장보다 강하고 빠를 수 없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민첩한 리더라도 시장의 변화 속도에 맞추어서 전략을 변화시킬 수도 없다. 빈틈없이 숫자로 세운 전략 때문에 시장 변화에 꼼짝할 수 없다면 기업의 미래는 위험하다. 급변하는 시장을 앞서가려면 시장과 함께 흘러가는 유연한 사고가 필요하다. 

시장조사를 통해서는 더 이상 시장의 변화를 다룰 수가 없다. 시장조사는 미래와 점점 멀어지는 과거를 분석할 뿐이고, 미래에 대한 통제는 시장 경쟁에서 패배를 초래하는 요인이다. 

이제 숫자 중심의 전략의 유도와 소수 경영진의 통제로부터 벗어나 어떻게 고객가치의 차이를 만들 것인지를 시장의 가능성에 민감한 직원들의 다양한 안목을 가이드로 삼아야 한다.     

그럼 왜 많은 기업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고객가치를 말하지만 성공하는 기업은 적을까? 이걸 논하기에 앞서 고객가치의 본질과 왜 본질에 충실할 수 없었는지에 대해 알아볼 필요가 있다. 고객가치 본질은 첫째 기업이 아닌 고객이 가치의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고객이 가치를 인정하는 것만이 시장에서 살아남는다는 말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은 고객가치보다는 기업 가치를 기준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만든 경향이 높다. 원가에 맞춰 재료를 선택하고, 운영의 편리함을 고려하여 서비스를 제공했던 것이 사실이다. 대량생산 대량소비 시대의 상품은 기업의 기준에 맞춰 생산되고 광고 선전을 통해 고객의 소비를 촉진시켰다. 우리가 알다시피 CF가 보여주고 약속하는 이미지가 사실이 아니라는 것은 모두가 잘 알면서도 기업이 의도하는 데로 소비되었다. 이렇게 광고 카피의 허구와 진실성이 결여된 시장은 공급자 중심이다. 그러나 이제 아무리 손익이 좋고 기업이 운영하기 편리하여 내부적으로 만족도가 높아도 고객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끝이다. 가성비는 고객이 느끼는 것이지 기업이 느끼는 것이 아니다. 

두 번째는 고객의 필요는 모두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나 각기 다른 욕구와 필요를 느끼면서도 공급자 중심의 시장에서 고객의 가치는 ‘가격’으로 표준화되었다. 기업은 가격 경쟁을 하고 고객은 가격이 저렴한 상품을 선택했으며, 기업은 더 좋은 상품을 연구하고 개발하기보다 표준화와 자동화 설비 투자를 통해 가격을 낮추는데 노력했다. 시장에 고객은 없고 가격만 존재했다. 그러나 이제 시장은 자기 욕구를 실현하고자 하는 개인들로 가득하다. 더 이상 시장은 이성적이지 않고 감성적으로 변했다. 

세 번째 본질은 고객의 가치는 변한다는 것이다. 장수 상품 하고는 다르게 한 상품을 참 오래도록 우려먹는 경우가 많다. 단물 빠지면 잠시 생산을 중단했다가 어느 날 포장만 바꾸어 슬그머니 다시 시장에 등장한다. 이것은 고객에 대한 기만이고, 한번 성공한 방법으로 두 번 세 번의 재탕하는 것은 경영에서 가장 큰 실패의 원인이다. 시장은 흐르는 강물과 같이 한 번도 같은 적 없이 변한다. 이제 흐르는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그려 해서는 안 된다. 어리석은 짓이다.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고객 가치의 본질을 이해하는데 소홀히 했다면 이제 고객가치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시장의 변화에 맞게 새로운 고객가치를 만들어야 한다.     

그럼 고객가치는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어려운 문제다. 타인이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도 고객이란 불특정 다수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더 어려운 일이다. 그동안 많은 기업들이 고객의 마음을 알려고 노력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고객으로부터 무엇을 파악해야 하는지 충분히 생각하지 않고 보고를 위한 조사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많은 기업들이 주로 했던 방법이 고객 설문조사다. 설문조사의 결과는 언제나 숫자로 표시되었고, 우리는 이런 숫자에 대한 믿음이 강했다. 숫자 중심의 기업문화에서 숫자는 가장 신뢰하는 설득 도구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문은 대부분 설문자의 의도대로 이루어진다. 참여자는 자기와 무관한 일이기 때문에 의뢰자의 의도대로 답변을 하는 확률이 높다. 그래서 스티브 잡스는 신상품 기획 시 설문을 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이유는 설문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신 상품을 기획하는 사람보다 정보와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우리는 항상 쉬운 일을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이 어렵다.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한테 물어보면 될 것을 묻지 않기 때문이 모르는 것이다. 그러니 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한테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는지 질문하면 된다. 

샤오미는 고객을 참여시킴으로써 지속적으로 답을 찾아간 좋은 사례다. 샤오미의 창업자 레이쥔은 처음 회사를 창업할 때 팬들이 참여하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 했다고 한다. 사용자도 제품 생산에 참여하는 것이야말로 미래에 진정 가치 있는 회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동료 리완창이 쓴 ‘참여감’(와이즈베리)의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샤오미를 설립할 때부터 미래에 회사가 얼마나 크게 성장하든 그 규모에 관계없이 사용자들이 활발히 참여하는 음식점 같은 곳이 되기를 바랐다. 사장을 포함해서 찾아오는 손님들 모두가 친구인 회사. 이렇게 고객과 친구가 될 대 회사도 오랫동안 성장, 발전할 수 있다.”

그는 어떻게 하면 사용자도 자유롭게 의견을 낼 수 있는 운영체계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고, 이 고민이 훗날 매주 업데이트라는 인터넷 소프트웨어 개발 주기의 모델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샤오미의 성장의 가장 큰 동력은 고객이다. 상품개발은 물론 운영체계까지 고객을 참여시키며 끊임없이 사용자의 의견을 묻고 반영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지속적으로 고객가치의 차이를 만드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차이의 반복을 어렵게 하는 것은 경쟁사도 시장도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 과거 성공에 집착하여 시장의 흐름과 고객가치의 변화를 놓치기 때문이다. 우리는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상황도 변하고 그래서 고객의 마음도 변하고 의미도 변한다는 것을 모른 적은 없다. 그럼에도 일상의 변화를 체화하며 받아들이는 것 또한 쉽지 않다. 여전히 성공 열매의 달콤함이 입안 가득한데 다시 쓴맛을 생각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기에 성공한 경험을 놓고 새로운 가치를 만든다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그것이 생사의 문제라면 어쩌겠는가? 

노키아의 변신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노키아는 1871년 제지업으로 시작하여 이후 고무 사업으로 업종을 변경하고, 1960년대 다시 전자 장비로의 변신을 한다. 그리고 1980년 컴퓨터, 2000년대에는 휴대폰 사업으로 확대하면서 발 빠르게 환경변화에 변신을 시도한다.  그리고 세계 휴대폰 시장을 장악했다. 뿐만 아니라 경영이 투명하고 도덕적인 것으로도 유명하여 세계 많은 대학의 MBA 과정에서 가장 우수한 성공사례로 다루었다. 그러나 스마트폰 시장으로 환경이 바뀌면서 위기가 온다. 노키아의 스마트폰 OS 신비안과 미고의 개발이 지연되며 방심한 사이 애플의 iso와 구글의 안드로이드가 세계 시장을 양분하게 된다. 노키아의 태양을 저물어가는 순간이다. 이후 2013년 9월 MS사에 단말기 사업 분야 전체를 매각하게 이르렀고, 2014년 MS사가 노키아 브랜드를 폐기하면서 노키아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노키아의 몰락은 스스로 거둔 성공의 제물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공의 달콤함에 빠진 노키아는 자신들을 위대하게 해 준 개방적이고 혁신적인 문화를 통해 고객 가치의 차이를 만드는 것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달콤한 현실에 안주한 결과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 같았던 노키아는 혁신 기업답게 세계적인 통신장비 기업으로 다시 부활하고 있다. 우리는 노키아의 부활을 지켜볼 필요가 있다.    

기업의 가치는 지금도 숫자로 평가된다. 그러나 그 가치가 정직하지 못한 수의 반복에서 얻은 결과인지 고객의 가치를 통해 얻은 것인지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기업가치가 매출 목표를 지향한다면 고객가치는 고객을 향해 끝없이 차이를 만드는 활동이다. 기업이 위기에 처하는 것은 바로 고객가치의 차이를 만드는 활동이 멈출 때이다.

이렇듯 기업의 성장은 숫자 차이의 반복이 아니라 고객가치 차이의 반복에서만 가능하다. 고객가치의 차이는 고객의 이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사오미가 그랬듯이 고객에게 묻고 고객과 접점에 있는 현장 직원들에게 질문해야 한다. 차이를 만드는 열쇠는 질문에 있다. 고객의 생각을 묻고, 시장에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리더의 질문이 멈추면 스스로가 답이 되어 고립되고 사라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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