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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ki May 19. 2020

“말랑말랑 젤리 같은 여행이 멋진 여행이다!” 2

(2편) 빨강 머리 앤의 말을 기억하며..

플랜 B에 익숙한 아이가 유연하면서도 강한 아이로 성장한다


50여 차례의 전투를 모두 승리로 이끌었던 유럽의 전쟁영웅 나폴레옹은 정확성과 빈틈없는 계획을 수립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전쟁 전에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위험의 가능성들을 숙고해서 오랜 시간 계획을 수립했다고 한다.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불리한 조건과 나쁜 상황들을 상상해서 플랜 B, C, D가 들어가 있는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50여 차례의 전쟁 승리는 이러한 빈틈없는 계획 수립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교토삼굴(狡免三窟)이라는 말이 있다. 영리한 토끼는 죽음을 피하기 위해 굴을 3개씩 판다는 뜻이다. 동물이지만 토끼조차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 플랜 B와 플랜 C를 준비해 놓는 것이다.


플랜 B가 진짜 빛이 나는 순간은 플랜 B까지 감안한 플랜 A를 수립할 때다. 플랜 A를 수립할 때부터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서 플랜 B의 내용까지 함께 준비하는 것이다. 이러한 플랜 A는 실제 행동에 옮길 때에도 마음이 편안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바로 플랜 B로 바꾸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념이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백업플랜(Back-up Plan),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 만일의 사태 대비계획) 혹은 리스크 매니지먼트(위기관리)라고 불린다. 하지만 플랜 B조차 망가지거나 소용없어지는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 여기서 내가 강조하는 플랜 B는 플랜 B 이외에도 플랜 C, 플랜 D ~ 플랜 Z까지의 모든 가능한 계획을 포함하는 개념이다.


처가 가족들 10명을 모시고 내가 잘 아는 해외로 가이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한 갑이 넘으신 형님부터 갓 태어난 1살짜리 아기까지 나이도 다양했다. 가족 인원이 많고 세대차이가 커서 그 어느 때보다 준비를 많이 했다. 가족들이 원하는 것들을 모두 담아 여행코스를 잡았다. 맛집도 문 닫을 경우를 대비해서 플랜 B, C, D까지 빈틈없이 준비했다. 이동거리와 시간, 관광지 오픈 시간 등도 세세하게 준비했다. 어느 지역은 플랜 D까지 준비한 맛집들이 모두 문을 닫거나 예약이 차서 플랜 E카드를 쓰기도 했다.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계획을 세세히 짜면 급작스런 일이 생겨도 당황하지 않게 된다. 인천공항에 귀국한 후 마지막 인사를 나눌 때 다들 즐겁고 행복한 모습에 피곤이 싸악 가셨다. 플랜 B개념을 통해 준비를 다양하게 했던 노력이 가족들의 행복한 추억으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여행을 하다 보면 예상치 못한 순간들이 자주 찾아온다. 여러 번 가봐서 친숙했던 제주도로 친구들 가족들과 함께 간 적이 있었다. 내가 먹어본 맛집들을 자랑하며 모두를 이끌고 가이드하듯이 돌아다녔었다. 유명한 제주갈치 요릿집으로 모두를 이끌고 갔는데, 너무 장사가 잘 돼서 이사를 가고 난 후였다. 이사 간 곳까지 물어물어 갔더니 예약 없이는 앉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다시 ‘플랜 B’를 가동해서 근처의 처음 보는 국숫집으로 들어가 봤다. 국수 맛을 본 후 우리는 인터넷에 알려지지 않은 의외의 맛집 리스트를 추가할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 태국 방콕에 여행 갔을 때에는 시내가 너무 막혀서 택시 말고 플랜 B로 ‘툭툭이(삼륜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서민들의 이동수단)’를 잡아탔었다. 가격은 택시요금의 1/3로 훨씬 저렴했다. 게다가 막힌 길을 요리조리 피해 가서 더 빠르면서도 재미있게 갈 수 있었다.


플랜 B는 어떤 곳에서든 유연한 사고로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게 도와준다. 유연한 사고는 상황을 전혀 다른 방법으로 바라보고 해결해 주기도 한다. 플랜 A만을 고집하는 것은 대나무처럼 딱딱해서 상황이 맞지 않으면 부러지고 만다. 플랜 B는 예상치 못한 상황이라는 바람이 불 때, 그 바람에 맞춰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다. 줏대가 없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유연한 것이다. 딱딱해서 부러지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라, 유연한 것이 진정 강한 것이다.


여행에 있어서 나는 항상 두 가지를 모두 준비한다. 특히 가족들이 함께 갈 때는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것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한다. 플랜 B, C, D까지 다양한 상황을 준비하면 변수가 생겨도 불안하지 않고 마음에 여유가 있다. 언제든 계획은 바뀔 수 있다는 유연한 마음 때문이다. 준비한 모든 플랜들을 다 써도 안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때는 준비하지 못했지만 유연한 마음으로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걸 바로 한다. 여행도 인생도 철저한 준비와 함께 유연한 마음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 초반기에는 지금보다도 시행착오가 더 많았다. 아무리 계획을 열심히 짜고 만약을 대비해도 예상치 못한 변수들로 틀어지기가 다반사였다. 그때마다 아이는 “아빠! 그럼 우리 오늘 일정 망친 거야?”라고 묻곤 했다. 그러면 항상 아니~ 플랜 B로 넘어가야지! 더 재미있는 플랜 B가 기다리고 있을 거야!”라고 대답하곤 했다. 수많은 여행에서 계획이 틀어질 때마다 아이는 아빠의 플랜 B를 귀가 아프게 듣고 자랐다. 이제는 그러한 상황이 되면 아빠의 눈빛만 봐도 ‘플랜 B’를 눈치 챈다.


플랜 B는 단지 여행에서만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면서 항상 맞닥뜨리게 되는 모든 상황에도 해당된다.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가 막히거나 친구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길 때도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플랜 B를 상기시켜준다. 아이가 꼭 갖고 싶고, 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계획대로 되지 않을 때도 플랜 B를 상기시켜 준다. 여행을 통해 플랜 B의 개념을 몸으로 체득한 아이는 공부건 학교생활이건 스스로의 힘으로 다른 방법을 생각하고 실천한다. 우리의 아이들은 부모세대보다 더 많은 어려움과 실패를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플랜 B를 통해 유연한 사고를 가진 아이들은 계획대로 되지 않아 쓰러져도 다시 일어날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아 거절당하고 실패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설레임으로 다시 시작할 것이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는 건 정말 멋지네요.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일어나는 걸요.” -빨강머리 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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