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빛을 따라서_권여름 지음] 2부
[2부_ 꿈의 기능]
이 고장은 너무 심심했고 뻔한 걸 요구했다. 뻔한 이유로 누군가는 학이, 누군가는 닭이 되어버리는 세계. 이곳에 이대로 있다가는 수많은 닭 중 하나가 되어 좁고 더러운 양계장 한구석에서 꾸웨엑 소리만 내다가 죽어버릴 것만 같았다
누군가에게 언어로 내 꿈을 설명하고 설득하는 대신 내 안에서 조용히 몸집을 키우고 단단하게 만드는 것을 택했다
내 꿈을 지킬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본문 중에서-
나의 하노이 생활은 뻔했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밥을 차려주고 집안일을 하고 가끔씩 쇼핑을 하고 친한 엄마들과 밥을 먹곤 했다
나는 심심했다
하루 종일 빈둥빈둥할 일이 없는 심심함과 할 일이 줄줄줄이 뒤로 계속 있어도 심심한 사람과의 갭 차이를 소분하여 구분 짖고 싶었다
집안일을 중간중간 끊지 않고 몰아서 한다면 아마도 오전 중으로 모든 걸 다 해내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하루 중 반나절의 황금 같은 시간을 선물받을 수 있다
하지만, 5분 대기조로 살아야 하는 전업주부에겐 조각조각 부러진 시간으로 승부를 걸어야 한다
현실적으론 긴 호흡이 필요한 몰입은 할 수 없다
초인적인 집중과 열정이 조각 시간을 가치 있게 쓸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가능 한 사람이 있다면 그 건 열정보다 분노에 가까울 수도 있다
미적 미적 몰입이 필요 없는 가벼운 것들로 조각 시간을 채우며 나름의 변명으로 심심할 수밖에 없다며 숨어버렸다
숨어만 있다 보니 크게 숨 쉬는 법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있다간 누구의 엄마, 누구의 배우자 딸랑 역할만 남기며 이름도 없이 사라져 갈 것 만 같았다
부러진 조각 시간들을 이어줄 뭔가가 필요했다
시간을 이으고 이으다 보면 숨을 쉴 수가 있을 것 같았다
숨을 마시고 내시는 공기 사이로 몰입할 수 있는 꺼리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숨을 쉰 지... 3년이 흘렀다
나도 갖고 싶은 꿈이 생겼다
나에게도 갖고 싶은 나의 미래가 생겼다
나의 이름이 존엄적 가치로 인정받길 원했다
가슴으로 진정 나를 끓어 안았다
차가운 머리엔 유니크한 세포와 뜨거운 가슴엔 섬유질 근육의 합이 나를 단단한 트랜스포머로 변신시켜 주었다
영화 속 트랜스포머는 세상을 구한다
나는 나를 구원한다
내 꿈의 세상으로 데리고 갈 수 있는 건
나뿐이니까.....
-글쓰는 말뚝박이 생각-
은세 언니는 아빠 차에서 내리자마자 삐죽삐죽 눈물을 흘렸다. 평소에는 할머니 말은 더럽게 안 듣더니 눈물은 참 많다
-본문중에서-
"집에 오는 버스 까정 옳게 타니까, 가슴이 훤해지고 어깨가 따악 퍼지더란 말이다. 인자 고창이 문제것냐. 전주며 서울이며 못 갈 것이 어디겄냐. 버스서 내려가지고 택시 탈라고 터미널 앞에 섰는디, 옴마! 눈 앞 간판 글자들이 '할메' 하믄서 손을 흔들어야. 그것이 다 읽히는 거여. 저놈까지만 읽어 보고 타자. 앞에 두 군디만 더 쳐다보고 가자 한 것이 점드락 걸었지야. 다리 아픈지도 모리고 꼭 구름 우를 걷는 것 같았시야."
"부런 사람이 읎다"
부러운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그 말을 나는 알아들었다. 나 역시 뺑덕어멈 되고 처음 느낀 감정이 그것이었으니 말이다. 꿈은 부러운 것이 없게 만든다
-본문 중에서-
꿈은 부러운 것이 없게 만든다
이 말이... 너무 좋았다
글을 모르고 살던 할머니가 글을 알기 시작하면서 상가 간판 글자들이 손을 흔들어 준다며....
따라가다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른 체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라고 했다
글을 알아야 했고 글을 읽고 싶어 했던 할머니
인생의 작은 소망으로 시작해서 꿈으로 이어진 더 이상의 부러운 사람이 없다는 할머니....
꿈이란 그런 것일까?
몸과 마음이 투명한 솜털이 되어 훠이~~ 휘이~~
고통의 칼날이 들어와도 어느 한 곳 다치지 않게 하는가?
은동이 할머니의 말을 알아들으며 꿈의 기능이 점점 부활하며 다가오는 설렘이다
-글쓰는 말뚝박이 생각-
"사람이 맨날 하던 것만 하면 쓴데?"
-본문 중에서-
하던 것만 하고 살았다
용기가 무엇인지도 몰랐고, 용기를 꺼내 쓸 줄도 몰랐다
아는 방법대로만 살 줄 알다 보니 새로움은 두려움이었다
나는 하던 것만 하고 살아왔다
은동이가 심청이 역에 도전하듯 나도 작가라는 역할에 도전하고 있다
오디션을 봤다면 아마도 나도... 뻔했을 것이다
"이런 글을 누가 읽을까요?"
해 보는 거다
도전은 누구에게나 열린 창이고, 열린 창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나의 몫이기 때문이다
-글쓰는 말뚝박이 생각-
꿈을 잃은 자는 이토록 차가워질 수 있다
--본문 중에서-
너무 차디차면 자신을 얼어붙게도 한다
그러나
얼어붙은 영혼을 녹여 내는 봄바람은 또 불어온다
-글쓰는 말뚝박이 생각-
현실 직시, 2학년이 되어 가장 많이 듣는 말이었다 여전히 그 현실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리키는 방향이 현실적인 방향인 걸까 가능성이 낮은, 어울리지 않는 꿈을 꾸는 것과 반대쪽인.
-본문 중에서-
현실적인 방향을 무시할 순 없었다
아이들을 키우고 교육해 보니 나의 아이와 맞는 방향이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초보 엄마 시절 동네 엄마들과 만나기만 하면 아이들을 어느 방향으로 키워야 하는지 현실적 정보에 정보를 더한 이야기만 하다 기운이 쏙 빠져서 들어 오곤 했다
아이가 좋아하는 걸 잘할 수 있는 기반으로 키우고 싶었던 나의 계획과는 달리 아이는 좋아하는 걸 찾지도 좋아하는 게 쉽게 생기지도 않았다
차라리... 현실적인 방향 노선에 올라타 필요한 공부를 하겠다는 말이라도 기다렸던 것 같다
현실적 방향이든 그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이든 어딘가를 향해 가겠다는 의지라도 분명해 주길 바랐던 것 같다
사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나 또한 10대 시절 현실을 직시하고 인생의 방향을 몰랐던 그때를 생각해 보면 내 아이가 특별히 부족 한 건 아니었다
100세 시대 인생의 절반을 살고 있는 지금도...
현실적 방향은 매번 어렵다
현실적 방향 안에 나만의 길을 만들고 다양하게 수용하며 살아 내는 속도에 관심이 가는 요즘이다
-글쓰는 말뚝박이 생각 -
집으로 혼자 들어가는 길 내 내 석희의 목소리가 따라왔다 내 어깨보다 낮은 어느 집 담벼락을 지나며 생각했다 천장이 낮고 벽 한쪽이 허물어지는 낡은 왕국이라고 할지라도 어둠 속에 빛나는 장소 아무도 몰라줘도 내 안에서 빛나는 많은 이야기가 살아 있는 나만의 왕국 그것을 나는 그것을 완전히 잃어버린 걸까 혹시 내가 버린 건 아닐까 그런 생각에 휩싸여 걸었고 저 멀리 우리 필성 슈퍼가 보였다
-본문 중에서-
며칠 전 큰아이는 취미를 다시 살려야겠다며 큰돈을 쓸 예정이라고 했다
나는 덜커덩 겁이 났다
큰돈이라니? 얼마나 쓰러고.. . 겁을 이리 주나...
한동안 손을 놓던 건담을 살 것이며 아주 희귀 제품이어서 값이 나간다는 구체적 설명을 해 주었다
이곳 하노이 인터넷 쇼핑몰은 물건이 도착하면 현장에서 택배기사에게 현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거금 5,000,000만 동 우리 돈으로 치면 250,000원가량 되는 돈이다
주문한 제품이 맞는지 또는 파손된 부위는 없는지 사실 확인 후 물건을 받고 돈을 지불하고 싶은 소비자의 입장과는 다르게 무조건 주문자만 확인되면 돈을 지불해야 되는 시스템이다
나는 아이에게 제안을 했다
직접 판매처에 가서 구매하면 어떨까?
아이는 오히려 그게 더 좋다며 함께 베트남 로컬 가게에 같이 가달라고 부탁했다
판매자가 알려준 주소를 그랩에 찍고 우린 어느 골목 입구에서 판매자와 만났다
얼추 이제 막 20살쯤 돼 보이는 베트남 남자는 자신을 따라오라며 골목길을 앞서 걸어갔다
우린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갔다
좁은 골목길은 오토바이가 겨우 다닐 정도로 비좁았다
베트남 남자는 오른쪽 왼쪽을 꺾을 때마다 우리가 잘 따라오는지 뒤를 돌아 보며 수시로 얼굴을 보여줬다
좁은 주택 길에는 각종 잡화 물건을 파는 가게를 지나 미용실, 빨래방, 식당, 옷 가게 등 주로 동네 주민들이 고객이 되어 오고 가는 모습이 보였다
베트남 시민들의 일상을 볼 수 있는 로컬 주택가에서 생뚱맞은 한국 사람의 등장으로 그들도 우리를 희귀하게 구경했다
골목길에서 놀던 어린 꼬마들의 눈과 입이 동시에 동그랗게 부풀러졌다
페인트칠 하나 없는 낡은 담벼락엔 민낯 회색 시멘트로 까칠해 보였다
여린 소등 하나만 켜져 있는 음식점은 쌀국수를 먹는 사람들의 실루엣만 보일 뿐이었다
도로포장과 하수구 처리가 안돼 울퉁불퉁한 좁은 골목길엔 버려진 오물이 군데군데 모여 있었다
낡고 허물어질 듯한 그들만의 왕국에 들어온 나는 시선을 어디로 두어야 할지 몰라 막연히 신발의 앞코에 시선을 고정시키곤 했다
동네 구멍가게로 모여든 아저씨들...
미용실에서 수다를 떨며 머리를 하는 아주머니들...
목욕탕 작은 의자에 앉아 쌀국수를 후루룩 먹는 젊은 사람들....
때 묻은 옷에 코를 닦으며 노는 아이들....
오토바이를 타고 노련한 운전 솜씨를 뽐내며 좁은 골목길을 씽씽 지나가는 행인들....
잘린 햇살에서 꾸벅꾸벅 졸며 볕을 쬐고 있는 노인들....
사람들이 사람들과 숨 쉬며 살아갔다
그들만의 빛나는 이야기 흐르고 있었다
허물어지고 보잘것없는 나의 그 어떤 것도 살아 있으면 된 것이다
나만의 빛나는 이야기가 가득 찬 나만의 왕국도 살아 있으면 된 것이다
-글쓰는 말뚝박이 생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