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제주에서 안개 낀 도로를 달린 적이 있다.
제법 짙게 깔린 안개 탓에 5미터 앞 차량도 깜빡이등만 간신히 보였다. 분명 화창한 날에 날 감동시켰을 주변의 수많은 꽃과 나무, 바람과 바다가 '원래 그곳에 있지 않았던 것처럼' 사라져 버린 것이다.
오늘 내 하루에도 예고 없이 안개가 내려앉았다.
내 곁에 있던 좋은 사람, 긍정적 신호, 그럭저럭 괜찮은 현재와 미래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짙고 뿌연 걱정과 불안만 주변에 가득했다. 난 모두 사라진 곳에서 길 잃은 아이가 되어 엉엉 울고만 싶었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안개를 만나 듯, 내 안의 걱정과 불안도 그렇게 불현듯 나타나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삼켜버린다. 그럼 난 또 바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