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해외 생활은 중국이었고 그곳에서 나는 외국인이지만 튀지 않았다. 그때 내 중국어는 거의 기초 수준으로 턱없이 부족했지만 로컬 학교에 다녔었고 교복을 입는 한 중국 친구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반 내 유일한 외국인이다 보니 다르게 대하기보다는 그냥 함께 어울려 지냈고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면 받았지 차별받는다고 느낀 적이 없었다.
내가 처음 인종차별을 느낀 건 미국에서였다. 중서부의 작은 도시에 위치한 보딩스쿨을 다녔는데 개방적인 학교 특성상 학교 생활을 하면서 인종차별을 느낀 적은 별로 없었지만 학교 밖에서는 종종 인종차별을 경험했다. 내가 살고 있던 곳엔 거의 아시아인이 없었기에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이목을 끌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도 대놓고 인종차별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이따금 '니하오'를 들었다. 처음엔 그게 인종차별인지 몰랐는데 나중에서야 의미를 알고 기분이 나빴다. 중국인으로 오해받는 것이 기분 나쁜 게 아니라 그렇게 농담 삼아 인사를 건네고 실실 웃는 사람들의 심리가 기분 나빴다. 하지만 괜히 보복을 했다가 일이 커지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고 그냥 못 들은 체 무시하면서 지나갔다.
아부다비에서 살면서는 인종차별을 느낀 적이 거의 없었다. East asian이 많지 않기에 길거리를 걷다 보면 이목을 끄는 경우가 있긴 했지만 한 번도 인종차별적인 발언을 들은 경우는 없었다. 그렇게 인종차별에 대한 기억이 희미해졌을 무렵에 이스라엘에 갔고 인종차별을 다시 느꼈다. 성지 순례 목적의 단체 관광객을 제외하고는 거의 아시아인이 없고 혼자 여행하는 동양인 여자는 나도 본 적이 없어서 더 조심해야 하는 건 알고 있었다. 그러나 치안이 좋고 안전하다고 느껴서 혼자서도 잘 돌아다녔는데 몇 번 인종차별적인 대우를 받은 적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내게 영어로 말할 때 엄청 천천히 말한다던지 (그리고 내가 유창한 영어로 대답하면 어떻게 그렇게 영어를 잘하냐고 되물었다) 아니면 이제는 익숙한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것 등등이었다. 예루살렘 올드시티에서 수많은 상인들의 무례한 호객행위도 이 도시에 대해 약간은 실망한 것에 한몫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충격적인 건 내가 En Gedi 등산을 하고 내려왔을 때 현장체험학습으로 온 듯한 초등학생 무리들이 있었는데 그중 아이 한 명이 나를 바라보며 칭챙총이라고 말한 것이었다. 아이는 웃으면서 나한테 말해서 순간 당황스러웠다. 순수한 반가움의 웃음인지 비웃음인지 헷갈렸다. 시골지역이었기에 아마 동양인을 거의 못 봤을 것이고 이것이 차별적인 발언인지 모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했다. 선생님은 바빠서 못 들으셨던 건지 아니면 관심이 없었던 건지는 몰라도 아무런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냥 못 들은 척 지나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이에게 다가가서 단호하지만 화나지는 않은 톤으로 "That is rude. You don't say that."이라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아이가 약간은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일이 있고 나서 묘한 감정이 느껴졌다. 별 일 아니지만 뿌듯했다. 그동안 수없이 인종차별을 겪었었지만 보복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상대하기 귀찮음 때문에 대응하지 않았었는데 처음으로 바로잡았다는 사실에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그 아이에게 가르침을 줄 수 있었다는 사실도 기뻤다. 다음에 동양인을 만나면 그런 말을 다시 하지 않겠지.
드디어 인종차별을 대하는 올바른 자세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 같다. 본인의 무례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단호하게 잘못됨을 알려주는 것 그리고 기분 나빠하지 않고 지나가는 것. 운 좋게도 나는 다양한 문화와 언어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그럴 기회가 없는 사람들도 많기에 무지에 대해 화내기보다는 이해하고 그 사람이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최선의 대처 자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