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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라 Apr 12. 2022

아부다비에서 자리잡기

집 구하기 여정과 첫 출근

오늘은 대망의 첫 출근 날이었다. 시차 적응이 안 되어서인지 설레서인지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하고 일찌감치 셔틀 픽업 장소에 가서 기다렸다. 10분 정도밖에 서있었을 뿐인데 너무 힘들었다. 역시 아부다비의 더위는 정말 쉽지 않다. 다행히 회사 버스를 잘 타고 오피스까지 갈 수 있었다. 버스 창문 밖의 풍경은 꼭 영화 같았다. 시내 쪽에는 화려한 고층 건물들이 즐비했고 외곽으로 가서는 황량한 사막에 으리으리한 저택들이 띄엄띄엄 있었다. 30분 정도 달리고 다니 회사가 있는 마스다르 시티에 도착했다. 전에 봤던 마스다르 시티 홍보 영상 속의 미래도시보다는 황량함이 가득한 곳이었다. 공사를 하는 곳이 많았고 주변에 너무 아무것도 없이 그냥 휑한 사막이였다.

회사 건물에 도착해서는 크기에 한번 놀라고 삭막함에 두 번 놀랐다. 생긴 지 10년 정도밖에 안된 국제기구라 최신식 건물 느낌이 났지만 들어가서 보니 유령 회사 같았다. 내가 오늘 출근한다고 해서 출근해주신 상사분이 말씀해주셨는데 거의 모두 재택근무를 하고 있어 오피스엔 사람이 별로 없다고 했다. 처음에 건물에 들어올 때 본 보안팀 직원분들과 상사 분 외의 직원 분들은 만나 뵙지도 못했다. 자리를 안내받고 앉아서 상사 분이 주신 작년 리포트를 읽고 있는데 보안팀에서 전화가 왔다. 어제 입국해서 아직 회사에 오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분명 HR직원 분과 컨펌하고 첫 출근을 했는데 바로 쫓겨나게 됐다. 회사에 사람도 거의 없었고 지난 72시간 내에 PCR 검사를 두 번이나 받고 음성을 받았고, 30분이나 버스를 타고 오피스까지 왔는데 온 지 두 시간도 채 되지 않아 다시 돌아가라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규정은 규정이니만큼 따를 수밖에 없었고 결국 택시를 타고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길 택시에서 본 풍경. 내가 정말 중동에 와있구나 싶었다.

점심때 한국에서부터 계속하고 있던 인턴 회의를 마치고 오후에 회사에서 만났던 상사분과 줌으로 미팅을 했다. 우리 부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국제기구가 어떤 조직인지 등등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다양한 생활 팁도 많이 주셨다. 혼자서 아부다비에서 생활하려면 어려운 부분이 많을 테니 언제든지 물어보라고 친절히 말씀해주셨다. 좋은 상사분을 만난 것 같아 감사하다.

상사분께서 강력 추천하셔서 먹어본 레바논 음식. 양 많고 맛있었다.

오후엔 또 열심히 숙소를 찾아보다가 에어비앤비에서 괜찮은 숙소를 하나 찾았다. 주인 분이 영어도 잘하셨고 소통도 잘돼서 바로 저녁에 직접 집을 보러 갔다. 집은 딱 맘에 들었지만 역시 가격이 많이 비쌌다. 원래 4800 디르함을 불렀었는데 오랜 흥정 끝에 4100 디르함까지 가격을 낮췄다. 하지만 그래도 나의 원래 budget보다 한참 높아서 결정을 하기 어려웠다. 한국에서도 자취 경험이 없는데 없는데 외국에서 혼자 집을 알아보고 결정하려고 하니 많이 벅찼다. 당당하게 가격을 요구하고 권리를 말했어야 됐는데 주인 분이 친절하셔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내가 아부다비에 처음이고 현지 상황을 잘 모른다는 것을 말해버렸다. 주인 분이 집 예약하고 싶다고 연락한 사람이 많아서 결정을 빨리 내려줬으면 한다고 재촉을 하셔서 내일 만나서 deposit을 일단 내겠다고 얘기했다. 돌아와서 생각해보니 너무 섣부른 결정이 아니었나 싶지만 당시엔 결정에 대한 압박이 심해서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가 어려웠던 것 같다. 협상의 세계는 너무 어렵다.

호텔에 돌아와서 계속 집에 대해 생각했다. 집은 마음에 들었지만 높은 집세가 학생 신분에 너무 사치가 아닌가 생각이 들었고 부동산을 거치지 않고 집주인과 직접 계약을 하는 거다 보니 너무 리스크가 크진 않을까 계속 걱정이 되었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좋은 게 좋은 거다 식으로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서 집주인 분한테 credential과 residence paper를 요구했다. 집주인 분은 당연히 요구해도 되는 거라고 하시면서 아부다비가 아무리 치안이 좋더라도 조심할 건 조심해야 한다면서 오히려 대견해하셨다.

타지 생활 정말 쉽지 않다. 미성년자 일 때 학생 신분으로 학교의 보호 안에서 지냈던 것과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라는 걸 또 느꼈다. 이런 경험을 하면서 또 성장을 하는 것이겠지만 당장 여러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은 많이 벅차게 느껴진다. 오늘도 참 에피소드가 많은 날이었다. 겨우 둘째 날인데 한국 생활과의 갭 차이가 너무 크다 보니 많은 시간이 지난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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