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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차니 Jul 08. 2019

5. 간호사가 되기 위한 발자취
군입대

다섯 번째 이야기


① 군 입대하러 가는 길


남자라면, 한 번쯤 다녀와야 되는 군입대. 간호학과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군 휴학계를 과사에 제출하였다.  군 입대하기 전 초, 중, 고등학교 등 많은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며 식사를 하고, 술도 마시며 싱숭생숭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시간이 흘러 입대 날짜가 다가왔다.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보통 말을 하지만, 내가 느끼는 군 입대는 착잡하고, 눈앞이 캄캄했다. 입대 전날 한숨도 못 자고 부모님과 함께 해뜨기 전에 집을 떠났다. 지하철을 타고 서울역에 도착한 후 논산역으로 향하는 KTX에 탑승하였다.


논산역 앞에 있는 음식점에 들어가 간단한 식사 하였다. 그리고 택시를 타고 논산 육군훈련소에 도착했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2012.10.15일 부로 논산 육군훈련소 460기로 입대를 하였다.


육군훈련소 수료 후, 국군의무학교에서 의무 교육을 받고 자대 배치를 받았다. 의무병으로 다녀온 선배들이나, 의무병 출신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군 생활이 다른 보직에 비해서 편하다고 말했다. 의무병의 일과는 보통 의무실에서 앉아서 군의관과 함께 일하는 게 주 업무라고 하였다. 부대 훈련 같은 것도 다른 보직에 비해서 덜 받는다고 하였고 자기 계발 시간도 많다고 하였다.



② 5군단 직할 705 특공연대


내가 배치받은 자대는 5군단 직할 705 특공연대였다. 특공연대..? 특공대..? 그래도 난 의무병이니까 괜찮겠지 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나만의 착각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의무병 생활은 하나도 찾을 수 없었고, 기대했던 생활은 산산조각이 났다. 특공연대는 중대라는 개념을 지역 대라고 말하며, 나는 지역대 소속 의무병으로 배치를 받아 군 복무를 하였다. 다시 말해 모든 훈련을 다 받아야만 했다.


혹한기, 유격, 산악행군, 헬기레펠, 호국훈련, DMZ경호작전, RCT, 등 많은 훈련들이 있었다. 더해서 태권도, 특공무술까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위와 같은 훈련을 견뎌냈을까...? 정답은 간단했다. 하루하루 버티면 된다. 그러면 어떻게든 시간은 흘러간다는 걸 알 수 있다. 군생활 동안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면 남는 것이 없다고 전역한 선배님들께서 조언을 해주셨다. 그래서 나는 취침하기 전, 연등이라는 것을 통해서 관심이 있는 분야에 대한 책을 읽거나, 내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 미래에 대해서 계획하기도 하였다. 더해서 휴가를 나갈 예정이 있었다면, 휴가에 대한 계획을 틈틈이 세우기도 하였다.


내가 적응하기 힘들고, 어려웠을 때 많이 도와주고, 격려해준 우리 1 지역대 2 소대원들에게 항상 감사하다.


왼쪽 사진은 내가 자대에 전입 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찍은 단체 사진이다.

오른쪽 사진은 유격훈련 중 우리 지역대에서 근무하고 계셨던 행정관님이다. 지금은 대대 주임원사가 되셨다.



③ 휴가


총 5번의 휴가를 나갔다.


신병 위로휴가(3박 4일), 일병 정기휴가(10박 11일), DMZ포상휴가(3박 4일), 상병 정기휴가(11박 12일), 말년휴가(11박 12일). 주변 지인들의 군생활을 들어보면 확실히 휴가를 많이 나오는 편이었다, 비교적 나는 적은 편에 속했다. 포상휴가를 나눠서 나갈 수 있었지만, 휴가를 나갔다가 다시 자대로 복귀하는 느낌이 나는 개인적으로 싫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정기휴가에 다 붙어서 나갔다.


휴가를 나가기 전 철저히 계획을 세우고 나갔다. 어디에 맛집이 있는지, 어디에 멋진 장소가 있는지. 위의 그림은 사이버 정보지식 방(일명 싸지방)이라고 하는 곳에서 인터넷을 검색해서 A4용지에 틈틈이 적어둔 내용이다. 휴가라는 게 귀중한 시간이고, 한정된 시간이다. 이 한정된 시간에 많은 친구들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아침, 점심, 저녁에 약속을 잡았고, 그 사이에 시간이 된다면 카페에서 커피 한잔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신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심적으로는 너무 행복했다.


휴가를 나갈 때 매번 나는 작은 수첩을 샀다. 그리고 사람들을 만날 때 항상 작은 수첩을 내 몸에 지니고 다녔다. 친구, 지인들에게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이 수첩에 적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이 작은 수첩. 방명록이 군생활을 하면서 큰 힘이 되었다. 군생활을 하면서 힘들거나 지칠 때, 이 글들을 보면서 내가 즐겁게 휴가를 보냈던 기억을 회상하였다. 그리고 다시 마음을 잡고 군생활에 임했다. 한 번씩 내 수첩에 글을 남겨준 모든 친구들, 지인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두 번씩 남겨준 친구도 있었다.



④ 전역


나는 군 생활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못했다고 하는 편이 맞다. 그래도 군 생활 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노력하려고 했다. 전역날까지 내 옆에는 든든한 소대장님과, 부소대장님, 1 지역대 2 소대원들이 있었다. 그동안 부족한 내 옆에서 많이 도와주고, 격려해준 덕분에 군생활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전역날 행정관님께서 마지막으로 배웅해주셨던 게 기억에 남는다.


육군훈련소에 입소했을 때 나에겐 작은 꿈이 있었다. 육군훈련소에서 같이 훈련받은 동기들이 있었다. 여러 지역에서 육군훈련소라는 한 장소에 함께 모여서 훈련을 받았고, 어려운 점이 있으면 서로서로 도와주면서 하루하루 버틸 수 있었던 동료들이었다. 육군훈련소 수료를 마치고 나는 동기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을 전했다.


"우리가 나중에 전역하고, 전역날에 만나서 단체사진 찍으면 더 의미 있는 날이 될 거 같아. 꼭 해봤으면 좋겠는데 다들 생각은 어때?" 다들 내 말에 동의해주었다. 하지만 보통 훈련소에서 헤어지면 거의 연락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수첩에 동기들의 핸드폰 번호와, 페이스북 아이디를 적었다. 자대 배치받고서 틈틈이 페이스북 메시지를 통해 안부를 전했다. 1년 9개월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전역하는 날. 건대입구에서 다 같이 모일 수 있었다. 개인 사정이 있는 동기들은 안타깝게도 참여하지 못했다.


감회가 새로웠고, 각자 군생활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해서 짧게 들을 수 있었다. 동기들과 함께 점심식사 후 사진관에 가서 단체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전역 후 현재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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