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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희수 Nov 29. 2021

아직 남아있는 모서리에 대한 기록  -이희수

- 30±1살의 시작



나의 서른에 대한 조건은 딱 3가지였다. 첫번째, 나에게 어울리는 멋진 안경을 쓸 것. 두번째, 누가 맡아도 나와 가장 어울리는 향수를 뿌릴 것. 그리고 세번째, 완벽한 미소를 가질 것.


그렇다면 현재 내가 이 세 가지의 조건을 얼마나 충족하고 있는지를 알아보자. 첫번째, 나는 주황빛의 뿔테 안경을 쓰고 싶었지만 누구보다도 무난한 갈색의 철테 안경을 쓰고 있다. 두번째, 나와 가장 잘 어울리는 향수를 찾는 일은 수년에 걸쳐 진행되었지만, 혼란이 가중되어 버린 나머지 총 6개의 향수를 돌려가며 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고 세번째, 2년에 걸친 코로나 상황 속에서 마스크에 완벽하게 적응해버린 나의 얼굴 근육은 완벽한 미소는 커녕 익숙하게 웃음을 짓는 습관조차 잊어버렸다.



생각해보면 나의 서른을 위한 세가지 조건은 안경, 향수, 미소와 같은 외적인 요소들로 특정지어졌지만, 그저 서른이 되었을 즈음에는 가장 나다워지기를 원하는 것 뿐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마치 숙성되어지는 와인 혹은 청국장처럼 그 본연의 자기다움이 점점 더 강해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실상은, 나의 정체성이 되어주던 겉으로 튀어나온 모서리들은 험난한 세상과 부딪힌 뒤 그 모서리를 숨겨내기 시작했고, 점점 더 내면을 향해서만 뾰족해지고 깊숙해졌다.


올 한 해는 특히 그런 시기였다. 예측하지 않은 일은 벌어지지 않는 삶의 연속이었다. 코로나로 인해 외출, 만남, 이동이 모두 제한된 환경의 결과는 결국 예측되는, 통제되는 삶이었다. 그 안에서 첫 해에 나는 불편해 했고, 불만족스러워 하며 탈피하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두번째 해에는 점차 안정적으로 변했고, 순응했으며, 끝내는 그것을 평화라 부르며 깨질 것을 두려워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나의 모서리들은 나를 향해서만 날카롭게 뾰족해졌고, 겉으로는 가장 평범하고 원만하기를 바랐다.   



지금 나와 같은 연령대의, 시대를 살아가는 30±1살의 친구들은 어떤 2021년을 보냈을지 궁금했다. 그들의 모서리는 나처럼 안으로 휘어버렸을지, 여전히 굳건한지, 혹은 내면을 향했던 모서리가 이제는 바깥을 향하기 시작했을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총 20인의 30±1살들의 소중한 글들을 한 편씩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누구보다도 조용하게, 마치 모든 것이 꽤나 순조로운 것처럼 서른에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우리의 모서리가 바깥을 향할 수 있는 지금의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우리는 가장 소란스럽게 그리고 가장 조심스럽게 서른에 진입하려고 한다.  




30±1 intro,

written by HEESU LEE

@urheesulee

이희수, born in 1993/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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