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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호균 Mar 31. 2023

말씀 중에 죄송합니다만, 우리 지올팍 월클 맞습니다

지올 팍이 지겹다는 당신에게

'I'm still fxxkin christian'. 요즘 쇼츠나 릴스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노래의 한 소절입니다. 약간은 섬뜩한 춤과 의상을 한 채 기독교인들을 살짝 당황하게 만드는, 중독적인 베이스와 중성적인 목소리로 무장한 이 짧은 영상의 주인공, 지올 팍에 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아마 대중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난해한 가수였을 겁니다. 특이한 목소리와 기괴한 뮤직비디오, 해석이 바로 안 되는 영어 가사까지. 개인적으로 저도 지올 팍의 노래를 찾아 듣진 않았습니다. 앨범을 내면 타이틀곡만 한번 들어보고 대충 음색이 특이하네라 생각하며 플레이리스트에는 집어넣지 않았던, 그런 가수였습니다.

그러다 이번에 나온 신곡 'Christian'의 중독적이고 선정적인 멜로디는 알고리즘을 타고 모든 한국인의 쇼츠와 릴스로 퍼져나갔습니다. 이젠 유튜브만 키면 나오는 이 노래는, 지올 팍을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확실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팔로우하는 인스타 노래 소개 채널에서도 'Christian'을 필두로 지올 팍의 천재성을 내세우며 예전 노래까지 홍보하는 게시물이 올라오기도 하더군요. 조금 바이럴이 심하다는 느낌이 들긴 했지만 별로 신경 안 쓰고 댓글 창을 열어봤는데 반 이상이 지올 팍을 욕하는 글이었습니다. 천재 호소인이라고.

안타까웠습니다. 'Christian'이란 노래가 나오기 전 지올 팍이 마니아틱적 관심을 받고 있을 당시 유튜브 댓글은 지올팍의 천재성을 찬양하는 글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신곡 'Christian'이 알고리즘을 타고 유명해지자 갑자기 여론이 뒤바뀌었습니다. '이젠 그만 좀 보고 싶다', '천재도 아닌 게 컨셉 잡고 뭐 하는 거냐' 등, 심지어는 지올 팍과 아무 연관이 없는 다른 가수의 유튜브 영상 댓글에 '이게 천재지, 지올 팍은 천재 호소인이고ㅋㅋㅋ'라는 글까지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이젠 안타까움을 넘어 약간 화가 나더라고요.

뮤지션을 포함한 모든 예술가들은 대중성과 예술성 그 사이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고민해야 합니다. 결국엔 대중의 관심과 소비가 이어져야 자신의 예술이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지올 팍의 독특한 음색과 특이한 컨셉의 뮤직비디오는 한동안 대중의 관심을 끌진 못했습니다. 그러다 이제야 알고리즘을 타고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첫 번째 발걸음이 생겼습니다. 설령 그 발판이 소속사의 과도한 마케팅이나 어디선가 들어본 사운드를 차용했다 할지라도, 지올 팍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노래도 꽤나 좋아 사람들이 알아서 영상을 공유하고 카카오톡 프로필 뮤직으로 등록하기도 했습니다.

2018년에 데뷔한 그는 이 노래가 뜨기 전 5년 동안 많은 고민을 해왔을 겁니다. 유튜브 '힙한 편집샵에서 나오는 트렌디한 음악'에서 한 번만 소비되고 버려질 음악이 아닌, 단순한 2-5-1 진행의 감미로운 기타 리프가 반복되는 발라드 사랑 노래가 아닌, 자신의 색깔을 유지하면서 대중들이 지올 팍이라는 아티스트를 알아서 찾아 듣게 만드는, 그런 음악을 만들겠다는 고민의 흔적이 30초짜리 쇼츠에서 느껴집니다.

지올 팍이 천재 호소인이라고 비판하시는 분들도 이해가 됩니다. 아마 그분들 중 대다수는 칸예, 프랭크 오션, 타일러나 SZA의 노래를 자주 듣고 계시겠지요. 이 아티스트들은 천재가 맞습니다. 한국에서 이런 음악성과 혁신성을 가진 아티스트는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죠. 그렇다고 해서 지올 팍을 비롯한 한국의 아티스트들이 천재가 아니라는 말에는 전 동의하지 못하겠습니다.

당신과 나, 그리고 세상 모든 사람들은 각자 기준이 다릅니다. 당신이 혁신성과 독창성을 천재의 기준이라고 볼 때 저희 어머니는 임영웅의 구수한 가창력을 보고 천재라 일컫습니다. 당신이 마케팅과 알고리즘을 빼면 별 볼일 없는 곡이라고 비판한다면, 맞습니다. 단순한 가사, 반복되는 멜로디, 특별할 거 없는 사운드 등 마케팅과 알고리즘이 없었다면 또 묻혔을 노래지만 음악이 시각화된 시대에선 마케팅과 알고리즘을 활용하는 능력도 예술가들이 길러야 할 역량입니다. 알고리즘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어떻게 알고리즘을 써먹을지 생각해야 저같이 게으르고 침대에 누워 쇼츠만 두 시간씩 보고 있는 대중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죠.

지올 팍 소속사의 과도한 마케팅은 비판할 수 있어도, 그것이 지올 팍의 음악성을 비판하는 행위까지 이어지면 안 됩니다. 당신이 무심코 쓴 천재 호소인이라는 단어 하나로 아티스트는 도전을 망설이게 되고, 가뜩이나 획일적인 한국 사회에서 다양한 장르의 음악은 꿈도 꿀 수 없게 되겠죠. 아티스트의 다양한 도전을 응원해 주지 못할망정 자신의 음악적 기준에서 벗어난다는 이유로 비판을 가한다면 그냥 원래 하시던 것처럼 40만 원짜리 소니 헤드폰으로 베이스를 잔뜩 키워 놓고 당신이 듣는 미국의 천재 아티스트 노래만 듣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지올 팍은 서울 패션 위크에서 피날레 무대를 장식하고 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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