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 한때 아무리 잘 나갔어도 40이라는 숫자 앞에서 자신감은 쪼그라들기 마련이다.
그럼에도 나는 여전히 사랑고백을 받았다. 그것도 한 명이 아닌 여러명에게.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 전담을 할 때의 일이다.
초등 1~2학년은 웬만해서는 전담수업이 거의 없지만 그 당시 우리 학교에서는 저학년의 수업 시수가 늘면서 담임교사들의 부담을 줄여주고자 일주일에 한 시간씩이라도 전담을 넣어주기로 했다. 나는 업무 부장을 맡은지라 담임은 제외되었고 대신에 1학년과 2학년의 음악 수업을 일주일에 한 시간씩 들어가게 되었다.
저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은 일단 체력적으로는 꽤 버거운 편이다. 저학년 꼬마들은 학교 생활이 익숙치 않기 때문에 쉬는 시간에 나갔다 수업시간에 들어 오지 않는 아이도 있고, 수업 시간에 화가 나면 수업 내내 울기도 한다. 같은 질문을 스무명이 스무번씩 해 대고, 단체 사진 하나 찍으려면 목이 터져라 부르고 붙잡아 줄을 세워도 제대로 된 사진 한 장 건지기 힘들다.
그럼에도 저학년이 매력적인 이유는 무한한 귀여움과 무해함, 순수함 때문이다. 그런 순수함 때문에 8~9살 아이들은 선생님을 정말 정말 사랑한다. 온 마음을 다해 사랑해 준다. 그리고 그 사랑에는 거침이 없고 내숭이 없다. 게다가 나는 담임이 아닌 전담 선생님. 일주일에 한번 뿐인 수업이라 최선을 다해 방긋방긋 웃으며 신나게 노래 부르고 게임해 주는 재미있는 선생님인 것이다. 혼낼 일도 없고 잔소리 할 일도 없으니 아이들에게는 내가 천사로 보였는가 보다.
내가 음악 수업을 하러 들어가는 날이면 몇몇 친구들은 벌써 교실 밖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시골 동구밖에 나와있는 똥강아지들처럼 내가 나타나면 "떤땡님"하며 달려든다. 어떨 때는 내 사무실 앞까지 와서 자기 교실로 나를 에스코트 해 가기도 한다. 급식실에 내가 나타나면 수십명의 아이들이 밥먹다 말고 마구 손을 흔들며 나와 눈을 맞추려고 고개를 쑥 뺀다. 혹시라도 내가 자기를 못 본 것 같으면 급식을 다 먹고 가는 길에라도 내 등을 급식판으로 툭 치며 기어코 눈을 마주치게 만들고 만다. 마치 연예인이 된 것처럼, 다른 선생님들 보시기엔 민망하지만 급식실에 들어갈 때는 열화와 같은 성원 때문에 미스코리아처럼 손을 흔들며 입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업이 끝날 때마다 헤어짐이 아쉬운 몇몇 아이들은 내 품에 와 안긴다. 키가 겨우 내 배만큼 오는 꼬마 아이들은 나를 꼭 안고 내 배에다 제 이마의 땀을 닦기도 한다. 두 개밖에 없는 손을 서로 잡겠다고 싸운다. 어떤 1학년 녀석은 내 옆에서 작은 목소리로 "아, 선생님이랑 결혼하고 싶다."라고 까지 했다. (예끼! 이 녀석아, 내가 니 엄마뻘이다.)
가끔은 각양각색의 선물도 준다. 문방구에서 뽑기로 뽑은 반지, 구슬 팔찌, 점토로 만든 인형, 마이쭈 등 나름 자신이 아끼는 오색찬란한 것들을 주고 간다. 그 중에서 제일 귀여운 선물은 단연코 편지다. 색종이에다 삐뚤빼뚤 쓴 맞춤법이 엉망인 편지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선물이다. 대체로 '성생님(선생님) 사랑해요' 란 문구는 기본이다. '으막(음악) 선생님 예뻐요.' '으막(음악) 선생님 고맙습니다.'에 공주님같이 그린 내 그림도 곁들여져 있다. 크기도 줄도 제각각이면서 소리나는 대로 발음을 쓴 편지야말로 내 취향 저격이다.
나는 이 시기에 남녀 할 것 없이 넘치는 사랑을 받아서 어느 연예인도 부럽지 않았다. 아이들이 주는 조건없는 사랑은 마음을 포근포근하게 만들었고 매일 출근길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여름 방학.
한 달이 조금 넘는 여름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오는 날은 가슴이 무척 설렜다. '우리 꼬마들이 나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2학기에도 아이들이랑 재미나게 수업해야지' 이런 생각들을 하며 학교 앞을 지나는데 학교 앞에서 익숙한 얼굴의 1학년 꼬마가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나는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아, 안녕?"
그런데 그 꼬마는 나를 보고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갸우뚱하는 것이 아닌가.
"어.... 누구더라?"
헉! 그렇다. 이 녀석은 나를 그새 잊은 것이었다. 내가 좋다며 그렇게 다가와 치대던 녀석이 고작 한달 남짓 사이에 나를 잊은 것이다. 잠깐 배신감이 스쳐갔지만 '그래도 이 아이는 고작 8살이니까 그럴 수 있지.'란 생각이 들어 "나 음악선생님이야. 기억 안 나?"
누가 보면 열심히 얼굴을 들이밀며 나를 알아봐 달라고 설명하는 내 모습이 참 구차해 보였을 것다.
그래서 한번 확인해 보기로 했다. 비록 일주일에 한 시간 만나던 선생님이었지만 그래도 나를 그렇게 좋아했던 너희들이라면 날 기억해 주겠지.
개학 후 첫 수업.
"얘들아~ 안녕? 내가 누군지 알아? 선생님 이름 기억하는 사람?"
그런데 학급의 반 정도 아이들은 그래도 내 얼굴을 기억했고 한 두명정도는 내 이름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도 기억해 주는 아이들이 있어서 고맙다 흑흑'
잊혀진 사랑을 돌이키고자 하는 몸부림이었다.
다행히 몇 주간의 수업을 하고서는 아이들은 잊혀진(?) 나를 다시 기억해 주었고 예전과 다름없는 사랑을 나에게 쏟아 주었다.
하지만 깨달은 바가 있었으니.
내 자리에 누가 오더라도 사랑이 넘치는 이 아이들은 그 선생님을 나처럼 사랑해 주리란 것도.
사랑이 넘치는 우리 꼬맹이들은 금사빠(금방 사랑에 빠지는), 금사잊(금방 사랑을 잊는) 존재라는 것을.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받은 사랑의 유효기간은 이 한 해 뿐이겠지만 우리는 짧아도 쿨하고 강렬한 사랑을 했다는 것을. 아이들의 사랑에는 구차함도 미련도 없어서 참 맑은 것이었다는 것을.
내 나이 마흔에 받은 사랑 고백이 전 생애를 통틀어 받은 사랑고백보다 더 많았기에 참으로 고맙고 행복했었다고 말해주고 싶다.(이미 나를 잊었을 그 녀석들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