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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센척하는 겁쟁이 Feb 05. 2024

내향형 인간의 설날 보내기

그렇다, 나는 내향형 인간이다.


사람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과 함께 있는 것은 힘들다.

같이 수다 떠는 것, 노는 것도 즐겁지만 그것은 몇 시간이면 충분하다.

밖에 나가 노는 것도 즐겁긴 하지만 에너지 소모가 커서 꼭 집에 돌아와 혼자 만의 시간으로 에너지를 충전해 줘야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장소는 집이다. 집에 있는 있을 때 심심하지 않냐고 물어보지 마라. 하나도 안 심심하다.



그런 내향형 인간의 집에 손님이 무려 11명, 우리 가족까지 모두 15명의 사람이 모였다. 그것도 2박 3일로.



사실, 내가 자청한 일이었다.

설날의 교통체증이 끔찍하게 싫기도 하고 매번 명절맞이를 홀로 준비하시는 손윗 동서와 고통을 분담하고자 하는 마음도 있어서 이번 설은 한 주를 당겨 우리 집에서 치르자고 내가 일을 벌인 것이다.


아이들은 좁은 방에서 뒹굴며 사촌들끼리 밤이 새는 줄 모르고 놀고,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오랜만에 회포를 풀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새벽에는 마침 축구 경기도 열려 우리 팀의 승리를 같이 만끽하기도 했다. 한 마디로 모두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15명의 사람을 먹이고 재우는 일은 한 마디로 장난이 아니었다.

며칠 전부터 시장, 마트, 코스트코를 돌며 장을 보고 밑반찬을 만들고 집안 청소를 했다. 손님들의 이부자리를 챙기고 틈틈이 간식과 야식을 차려 주고, 뒷정리까지... 나 혼자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내가 집주인으로서 모든 것을 관리하고 진두지휘 해야 했다.


그렇게 폭풍 같은 2박 3일이 지나고 드디어 손님들이 모두 떠났다. 그들이 떠나자마자 나는 대낮에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내가 초대한 손님들이니 기분 좋게 맞이하였지만, 가니까 더 좋은 이 기분. 큰 숙제를 끝낸 이 기분.



이번 손님맞이를 통해서 알게 된 나라는 사람은 역시나 내향형 인간이라는 것. 사람을 좋아하지만 많은 사람과 부대끼면 에너지가 급속도로 소진된다. 이번에도 거실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는 와중에 나는 내 방에 혼자 충전을 하러 가야 했다. 틈틈이 그런 시간을 확보하지 않으면 숨이 막힐 지경이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역시 능동적 인간이라는 것. 시댁에서 며느리로서 시어머니의 수족 노릇을 하는 것은 힘은 덜 들어도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내 집에서 나의 의지 대로 하는 것은 몸이 힘들지언정 기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만약, 이 손님맞이를 남편이나 시부모님이 강요해서 한 것이라면 나는 크게 반발하고 감당치 못하겠다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도했고 내가 계획한 행사였기 때문에 기꺼이 감당할 수 있었다.


명절이 며느리들에게 스트레스인 이유는 며느리의 의견 따위는 반영이 안 되는 견고한 프레임 때문일 것이다. 관습대로, 가풍대로, 시어른들의 의지대로 묵묵히 따라야 하는 프레임 속에서라면 숨이 막힐 수밖에 없다.


내향형 인간인 나는 그 프레임을 한번 깨뜨려 보려고 내 몸 하나 2박 3일 동안 하얗게 불살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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