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oiled Adult
남편이 출장 가기 하루 전 날이다.
남편은 카톡으로 나에게 이것 저것을 주문한다. 가서 나눠 줄 선물, 빨아 두어야 될 옷, 마트에 가서 사올 간편식 등. 오더를 받자 마자 발빠르게 장을 보고 집안을 뒤져 필요한 물건들을 찾아 모아 놓는다. 옷을 수선해 놓고 빨래를 돌려 건조까지 마쳐 놓는다.
얘기만 들으면 남편이 꽤 권위적이고 와이프를 부려 먹는 사람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기쁜 마음으로 하고 있으며 남편은 평소에도 아내 바라기로 불린다.
내 남편은 곱게 자란 사람은 아님에도 입맛이며 취향이 꽤 까다롭다. 김밥 꽁지도 안 먹고 예쁜 중간만 먹는다. 커피도 예쁜 컵에 타 주는게 더 맛있다 하고 카페 가는 것도 좋아 한다. 같은 돈이 있어도 면세점에서 고급품을 사느니 그 돈으로 비지니스 좌석을 택하는 사람이다. 피자도 테두리는 먹지 않고 초밥도 마트에서 파는건 공짜로 줘도 안 먹는다. 뷔페도 싫고 남이 서빙해 주는, 양이 적어도 질이 좋은 음식점을 선호한다. 결론적으로 남한테 보이기 위해서는 돈을 쓰지 않지만 자신의 몸을 편하게 하고 입을 즐겁게 하는데는 돈을 쓴다.
나는 남편만큼 맛이나 편안함에 민감하진 않아서 아무 음식이나 잘 먹고 편안함보다는 가성비를 따져서 불편하더라도 돈을 아끼는 편이다. 그래서 맛난 부위도 남편에게 더 주고 편한 자리도 남편에게 양보를 잘 한다.
어느 날, 가족들이 같이 피자를 먹는데 아빠 접시에는 피자 꽁다리만 남아 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 아이들은 볼멘 소리를 한다.
"엄마, 우리는 피자 꽁다리도 다 먹고 저렴한 부페가서도 맛있다고 먹는데 아빠는 왜 저렇게 버릇이 없어? 옆에서 투덜거리기나 하고. 엄마는 아빠를 잘못 키웠어. 너무 오냐오냐 하며 키운 것 같아."
왠지 아빠가 버릇없는 아이를 보고 해야 할 말을 딸들이 반대로 하고 있으니 웃기기만 하다.
맞다. 너무 오냐 오냐 키운 것 맞다.
그런데 그래도 내 눈에 귀여워 보여서 그런걸 어쩌겠냐 말이다. 남편이 밖에서는 근엄한 교수일지 모르지만, 집 현관문을 들어서는 순간 혀짧은 소리를 내는 귀여운 아저씨인걸. 학업적인 면에선 똑똑하지만 생활 면에서 허당인지라 챙겨주고 싶은 사람인걸. 내 무릎 베고 누워서 자기는 영원히 철이 안들고 싶다는 어리광쟁이인걸.
마흔이 넘어도 내 눈에만 귀여워 보이는게 어쩌면 이게 사랑인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