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부산 사람이냐고? 나는 원래 서울이 고향이다. 부산에는 친인척이나 친구가 한 명도 살지 않는, 나랑은 전혀 연고가 없는 고장이었다. 그런 곳에 남편의 이직으로 인해 10년 전부터 부산에 살기 시작했다.
부산은 한 마디로 재미있고 다이내믹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처음에 듣는 부산 사람들의 말투는 마치 나에게 싸우자는 듯이 들렸으나 누구보다 정이 많은 부산 사람들이란 걸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남 일에 관심도 참견도 많지만 도와주는 것도 발 벗고 나서는 사람들이다.
의리! 하면 부산!
그들의 성격을 닮아 음식도 강렬하고 자극적이다. 어떤 음식을 시키든 땡초(청량고추)는 필수, 학교 급식에 짜장면이 나왔는데 고춧가루를 찾는 꼬맹이들한테서 부산을 느꼈다. 그들은 하나같이 서울 음식이 밍밍하다고 하는데 이해가 된다.
부산 집에서는 30분만 차 타고 나가도 코발트 빛 바다와 산, 계곡을 만날 수 있었다. 부산의 바다는 서해의 것과는 때깔부터 달랐다. 타지 사람들은 해운대만 바다인 줄 알겠지만 부산에는 유명하진 않아도 예쁜 해변과 청량한 바다가 널려 있다. 마음이 답답한 날에는 한적한 바닷가에 캠핑의자 하나 펴 놓고 앉아 윤슬을 바라보면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날씨는 사시사철 왜 이리 좋은지 겨울에도 거의 눈이 내리지 않을 정도로 따뜻하고 여름은 서울보다 기온이 낮은 전형적인 해양성 기후를 품고 있었다. 미세먼지도 잘 오지 않는 부산, 날씨만큼은 한국에서 이보다 더 살기 좋은 곳은 없으리라.
그런 부산을 떠나 일 년 전부터 서울 살이가 시작되었다.
서울에 오자마자 현타가 온 부분은 출퇴근이었다. 한 시간 내외인 출퇴근 시간이 수도권 사람들에겐 일상이라지만 부산에선 자가용으로 15분이면 가던 거리를 서울에서는 지하철, 버스를 번갈아 타며 인파에 휩쓸려 50분이 걸리니 죽을 맛이었다. 자가용을 타도 교통체증 때문에 걸리는 시간은 마찬가지였다. 자가용이 있어도 무쓸모.
문화생활? 물론 서울이 압도적으로 풍부하고 가까이 즐길 수는 있다. 하지만 유명하고 멋진 곳에는 언제나 수많은 인파들로 북적였다. 뭔가를 즐기기도 전에 인파에 숨이 막히고 기가 빨려 얼른 집에 돌아가고 싶기만 했다. 잠깐 쉬러 들어간 카페조차도 빡빡한 테이블 간격에 한번 놀라고 그마저도 앉을 데가 없어서 눈치게임을 하는 상황에 두 번 놀란다.
물가는 어떻고. 부산에서 내가 살던 집은 3억대 신축 아파트였다. 서울의 여느 신축아파트와 견주어도 모자라지 않는 수영장까지 딸린 아파트였다면 믿겠는가. 그런데 서울에 오니 3억으로는 겨우 빌라 전세나 얻을 수 있는 돈이었다. 맞벌이하고 절약하는 우리에도 10억이 넘는 아파트는 넘사벽이었다. 삶의 질이 수직 하락하는 기분이다.
서울에 살아 보니 열악한 환경의 빌라촌들이 많이 보인다. 각 지역에서 올라온 많은 청년들이 그곳에 자리를 잡고 산다. 굳이 안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들의 생활을 떠 올리면 청년들의 애환을 짐작할 수 있다. 고작 9년을 부산에서 산 나도 부산의 바다가 보고 싶고 쾌적하고 여유로웠던 그곳의 생활이 그리운데 청년들도 그렇지 않을까. 비싼 주거비와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젊음을 방패로 버티어 내고 있지만 마음에는 고향을 품고 그리워하고 있겠지. 비싼 아파트들이 올려다 보이는 원룸촌에서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자괴감을 느끼지 않기란 정말 힘든 일일 테지만 그들이 절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름답고 살기 좋은 부산이지만 나날이 청년과 아이들이 사라져 가는 것이 나에게도 체감이 된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들도 매년 학급 수가 줄어든다. 내가 알고 지냈던 부산 청년들의 많은 수가 서울로 올라와 산다. 부산을 떠난 청년들일지라도 그들이 언제든 돌아갈 곳이 되어야 하는데 이대로 부산이 황폐화될까 봐 겁이 난다. 그들이 돌아갈 자리마저 없을까 봐. 정말로 노인과 바다만 남는 곳이 될까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