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지역을 이사 다니긴 했지만 태생은 서울여자이며, 지금까지 도시에서만 살아왔다. 그런 내가 올해는 농부가 되었다.
내가 사는 서울의 지역구에서는 초봄이 되면 텃밭을 분양한다. 3월부터 10월까지 채 일 년이 안 되는 기간이지만 그 기간만큼은 지주 노릇을 할 수 있는 한 평의 땅이 주어진다. 고작 한 평이지만 경쟁률은 꽤나 높아서 나는 무려 거의 4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밭 한 평의 주인이 되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날이 따뜻해지기 시작한 4월. 마침 우리 집에 오신 시어머니께 텃밭을 구경시켜 드렸더니
"아이고, 코딱지만 한 밭이네. 여기다 뭘 심어먹겠니."
역시 400평 밭을 가진 대지주 이신지라 나의 한 평짜리 밭은 한없이 작고 하찮아 보이시겠지.
어머니와 같이 밭을 일구는데 둘이서 30분도 안 걸린다. 농부답게 조금 더 노동이란 걸 해 보고 싶었는데 땀 좀 날만 하니 일이 다 끝나버렸다. 이럴 땐 뽑을 잡초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도 처음 시작해 보는 농사라 유튜브로 이것저것 공부도 하고 할 일 없이 모종가게 들러서 새로 나온 모종은 없나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모종으로 심은 상추, 고추, 토마토, 가지 등은 아직 어려서 말라죽지 않도록 물을 자주 줘야 한다. 이 녀석들 때문에 아침에는 무조건 밭을 간다. 밤새 춥지는 않았는지, 엊저녁에 땅이 너무 건조하지는 않았는지 걱정이 되어 발걸음이 빨라진다. 하룻밤 새에도 자란 것이 내 눈에는 보인다. 물만 주는데도 쑥쑥 커가는 아이들이 기특하기만 하다.
농장에는 내 밭만 있는 게 아니라서 남의 밭을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 밭을 가꾸고 돌아가는 길에는 꼭 남의 밭들을 이리저리 구경해 본다. 성장이 월등한 밭들은 자동으로 눈이 간다. 엄친아, 엄친딸처럼 뭘 먹여서 남의 애들이 저렇게 풍성하고 키가 큰지 부럽고 샘이 날 지경이다. 그들이 비료를 뭘 줬는지, 특수한 비법이 뭔지 궁금한데 도통 밭주인들을 마주치기란 쉽지 않다. 우리 애들도 그에 못지않게 잘 키우리라, 마음을 다잡으며 집으로 돌아오곤 한다.
별 기대 없이 시작한 농사가 매일의 기쁨이 되었다. 작은 식물들이 매일의 아침 나를 깨우고 움직이게 하며, 하루를 기대하게 만든다. 얼마 안 되는 소출이지만 상추며 열매들을 딸 때, 돈 주고 사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뿌듯함이 몰려온다. 가족들에게 음식을 차려 낼 때도
"오늘 우리 밭에서 딴 무농약 상추야."라고 꼭 얘기를 해 준다. 그러면 아이들도 엄마가 기른 상추는 더 맛있고 싱싱하다고 칭찬을 해 준다.
내가 기른 채소는 마트에서 사 와서 냉장고에서 시들다가 죄책감 없이 버려졌던 채소들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버렸다. 상춧잎 하나도 아까워서 꼭 먹겠다는 마음이 든다. 작고 하찮은 한 평짜리 밭에서 나는 수확물이기 때문에 이것들이 더욱 작고 소중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