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서노트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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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맘


에릭 와이너의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

오랜만에 읽는 철학책.

대학생 때는 인생은 무엇인가,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등 다소 심오(?)한 탐구에 목적을 두고 철학책을 읽었다.

왜... 그랬을까.. 무엇이 그리 심각했던지.

지금 돌이켜보면 그것 또한 그 나이대의 특권인것 같다.

하지만 서른이 넘으면 자연스레 깨닫는 진리.

“인생의 의미는 없다.”

지금은 옛 현자들의 목소리에서 지혜를 얻고 싶어 철학책을 찾는다.

시절마다 겪는 어려움을 헤쳐나가는데에 큰 도움이 된다.

이 책 역시 그런 의미에서 마음에 새길 말들이 많았다.


​​1. 소크라테스처럼 궁금해하는 법

1) 소크라테스의 목적은 모욕을 주는 것이 아니라 빛을 밝혀 일종의 지적 광합성을 일으키는 것이었다.

소크라테스는 정원사였다. "마음속에 당혹스러움을 심고 그것이 자라나는 것을 지켜보는 것만큼" 그가 좋아하는 것은 없었다.

2) 끝없이 해야할 일 목록에서 또 하나를 지우려고 성급히 문제 해결을 향해 달리는 대신, 의혹과 수수께끼의 곁에 머무는 것.

여기에는 시간과 용기가 필요하다.

2. 루소처럼 걷는 법

1) 상상 속에서든 현실에서든 역경을 만나면 자기 연민이나 절망에 빠지지 말고 그저 다시 시작하라.

이런 식으로 바라보면 삶은 더 이상 실패한 서사나 망쳐버린 결말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건 진실이 아니다. 결말 같은 건 없다. 무한한 시작의 사슬만이 있을 뿐.

3. 쇼펜하우어처럼 듣는 법

1) 삶은 삶을 가장 덜 인식할 때 가장 행복하다.

2) 듣기는 연민의 행위, 사랑의 행위다. 귀를 빌려주는 것은 곧 마음을 빌려주는 것이다.

3)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의 도움을 받아 인간관계를 설명한다. 추운 겨울날 한 무리의 고슴도치가 옹기종기 모여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자.

고슴도치들은 얼어 죽지 않으려고 서로 가까이 붙어 서서 옆 친구의 체온으로 몸을 덥힌다. 하지만 너무 가까이 붙으면 가시에 찔리고 만다.

쇼펜하우어는 고슴도치들이 "두 악마 사이를 오가며" 붙고 떨어지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서로를 견딜 수 있는 가장 적절한 거리"를 발견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고슴도치의 딜레마라는 이름으로 알려진 이 딜레마는 우리 인간의 딜레마이기도 하다.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타인을 필요로 하지만 타인은 우리를 해칠 수 있다.

관계는 끊임없는 궤도 수정을 요하며, 매우 노련한 조종사조차 가끔씩 가시에 찔린다.

4) 좋은 예술은 정념을 초월한다. 욕망을 키우는 모든 것은 고통을 키운다.

욕망을, 쇼펜하우어의 표현에 따르면, 의지를 줄이는 모든 것은 고통을 완화한다. 예술 작품을 바라볼 때 우리는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포르노가 예술이 아닌 것이다. 포르노는 예술의 정반대 지점에 있다. 포르노의 유일한 목적은 욕망을 자극하는 것이다.

욕망을 자극하지 못하면 그 포르노는 실패작으로 여겨진다. 예술에는 더 고귀한 목표가 있다.

체리 한 그릇을 그린 정물화 앞에서 느껴지는 반응이 배고픔뿐이라면 그 작품을 그린 예술가는 목표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4. 에피쿠로스처럼 즐기는 법

1) 에피쿠로스는 결핍과 부재의 측면에서 쾌락을 규정했다. 그리스인은 이러한 상태를 아타락시아라고 불렀다.

말 그대로 '문제가 없다'는 뜻이다. 우리를 만족으로 이끄는 것은 어떤 것의 존재가 아니라 바로 불안의 부재다.

쾌락은 고통의 반대말이 아니라 고통의 부재를 뜻한다. 에피쿠로스는 향락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평정주의자'였다.

2) 호화로운 삶에 으레 따라오는, 예를 들면 고급 레스토랑 프렌치런드리에서 5코스 정찬을 먹은 후에 따라오는 불쾌함이란 정확히 무엇일까?

에피쿠로스는 신체감각(소화불량, 숙취)에 대해서도 이야기하지만 그가 주로 언급하는 것은 더 드러나지 않는 고통, 즉 갖지 못한 고통이다.

당신이 대서양에서 잡은 자연산 왕연어 테린을 맛있게 즐겼다고 해보자. 하지만 이제 연어 테린은 다 먹고 없고, 당신은 다시 그 요리를 간절히 갈망한다.

당신은 연어 테린에, 즉 그 연어를 잡은 어부에게, 테린을 내놓은 레스토랑에, 테린을 사먹을 월급을 준 상사에게 당신의 행복을 의탁했다.

이제 당신은 연어 테린 중독자이며, 당신의 행복은 연어를 주기적으로 먹을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렸다.

이게 다 당신이 불필요한 욕망을 필요한 욕망으로 착각했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3) 우리가 가진 것이 아니라 우리가 즐기는 것이 우리를 풍요롭게 한다.

4) 에피쿠로스 철학은 수용의 철학이자, 수용의 가까운 친척인 감사의 철학이다. 무언가를 진정으로 받아들이면 감사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5) 우리는 특히 내가 '조금만 더-주의'라고 부르는 것에 취약하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것(예를 들면 돈과 명예, 친구들)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그저 조금만 더 많으면 된다.

하지만 조금 더 갖게 되면 우리는 눈금을 재조정하고 생각한다. 그저 조금만 더 있으면 돼. 우리는 얼마큼이어야 충분한지를 모른다.

충분히 좋음은 안주한다는 뜻이 아니다. 자기변명도 아니다. 충분히 좋음은 자기 앞에 나타난 모든 것에 깊이 감사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완벽함도 좋음의 적이지만, 좋음도 충분히 좋음의 적이다. 충분히 오랜 시간 동안 충분히 좋음의 신념을 따르면 놀라운 일이 생긴다.

마치 뱀이 허물을 벗듯 '충분히'가 떨어져 나가고, 그저 좋음만이 남는다.

6) 행복에 대해 너무 열심히 생각하면 행복은 사라진다.

5. 시몬 베유처럼 관심을 기울이는 법

1) 무언가를 욕망하는 것은 곧 거기에서 얻고자 하는 바가 있다는 뜻인데, 바로 그 상태가 우리의 시야를 가린다.

우리는 우리의 욕망이 향하는 대상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문제인 것은 그 주체, 즉 '나'다.

무언가를 간절히 바랄 때 그것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그건 환상이다.

헤로인 중독자는 헤로인을 갈망하지 않는다. 헤로인을 하는 경험,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헤로인을 못 하고 있는 게 아니라는 안도감을 갈망하는 것이다.

그가 원하는 것은 정신적 괴로움으로부터의 자유, 즉 아타락시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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