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언희 시인의 시집
김언희 시인의 시집. <트렁크>
역시.... 시집은 너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집을 계속 읽는 이유는...
어렵기만 하다가도 가끔 내 감성을 후벼파는 시가 등장하기 때문.
시집에 수록된 시들을 다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위안하며.
다음엔 어떤 시집을 읽을까나..?
1. 빨래
버저가 울리면 / 뚜껑을 열고 / 가족들을 끄집어낸다
분당 칠백 회전 / 와류식 세탁조 속에서
얼마나 서로를 붙들고 늘어졌던지 식구들은
근친상간의 / 사람 똬리를 틀고
팔다리가 엉겨 떨어지지도 않는다
표준 탈수 / 침도 땀도 흘리지 않는 식구들을
빨랫줄에 널어 걸치며 단단히 / 일러준다 줄 밖은
낭떠러지야
쓸개나 / 허파야 / 뒤집혔건 말건
여벌의 팔다리 있는 전부로 턱을
걸어, 바람을 핑계 삼아
늘어진 넓적다리로 / 친친 휘감아도 버려
발이 땅에 닿지 않는 허공을
팔다리를 흔들어가며 / 걸어야 한단 말야
하루종일
.......?
해부용이었니..... 나
는?
(마취풀린 개구리 한마리가 내장을 질질 끌며 달아나고 있는 테이블 위)
이렇게, 절개되기로 되어 있었니?
오장육부까지 꺼내 보여야만 했어?
주르륵 흘러내리는 기억의 창자를 끌며 어기적거리는
어기적거리는, 이게, 내, 인생이니.....봉합
되지 않는?
-표현이 참 재밌으면서도 섬뜩한 시.
가족이라는 존재, 모순점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인데..
이제 곧 태어날 나의 딸도 나중에 커서 나같이 생각할까? 그건 또 싫은데.. 라고 생각하는,
나는 정말 모순덩어리 인간.
서로 절대 떨어지지 않으려하고 서로를 누구보다도 걱정하다가도...
오장육부 속마음을 꺼내어 보이는 것에, 그런 속마음을 마주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K-가족...
2. 거두절미
두드릴 필요 없는 문
열면, 열리는 냉장고 속에서
탱탱한 비닐 정조막을 덮어쓰고
비늘 친 알몸으로 당신의
식욕을 / 기다린다
마음놓고 상할 수도 없는 몸이
거두절미
잘 장만된 / 가운데 토막으로
-거두절미를 이렇게?
'당신의 식욕을 기다린다'라는 표현이 '본론만 말해'라는 말과 겹쳐지면서...
감탄했다.
시의 공간을 냉장고로 설정한 이유도 두드릴 필요조차 없는 문이라서? 거두절미랑 너무 착붙이잖아!
또 감탄..
그러다가 '마음놓고 상할 수도 없는 몸'을 읽고나면, 괜스레 안쓰러운 마음.
너무 거두절미하고 살지 말자.. 가끔은 마음놓고 상해보기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