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했어, 오늘도.
서랍에 넣어놓은 글이 많다.
서랍은, 브런치의 임시보관함이다.
글을 쓰면서 떠오르는 것을 조금씩 메모하고 있다.
그 메모 중 하나는,
-
이 글은,
이것은 그러므로 오늘 무리하라는 뜻이 아니다.
윤달, 윤년.. 주기를 맞추려고 이것저것 만들고 계산했다.
그저 그 뿐이다.
물론 어리면 어린 만큼, 살았다면 살아온 만큼,
각자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언젠가 든 생각이 있다.
내가 내일 뭐 입을지를 고민할지언정,
일로 고민하는 순간도,
연애로 고민하는 순간도,
또는,
내가 세계평화와 사회적 정의실현을 고민할지언정,
누구나 가진 고민의 무게는
그 객관적 크기에 관계없이,
누군가가 너의 고민에 공감하지 못한다고 해서,
힘들다는 감정과 행위에, 신이 의도한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다.
종교적 고난인지, 칠전팔기의 연습인지,
지난날에 대한 벌인지 앞으로에 대한 액땜인지, 아무도 알 수 조차 없다.
하지만,
힘든 것을 거쳐왔다고 생각하면,
곧 지나지 않아,
삶이 여정이듯,
지금의 힘듦을 거치면,
아무 힘듦 없지 않겠지만,
다음에 흘릴 땀과 눈물에 대비해,
손수건, 물티슈, 뭐 그런 것들, 생소하지 않게 나 자신을 위하여 챙겨둘 수 있다.
누구나 힘드니 너가 힘들어도 된다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누군가를,
누군가가 누군가를,
그 뿐이다.
비관하는 게 아니라,
비난하는 게 아니라,
비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은 어차피 혼자다.
너의 취향도,
너의 생각도,
너의 표현도,
너만의 아름다움도,
모두 존재하고 소중하다.
밤의 온도에,
그 시간에,
공기에,
잦아드는 감정과 수다스러워지는 감정은 때로 자주 존재한다. 공존하기도 한다.
한껏 자도 좋지만,
도저히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책을 읽든, 음악을 듣든, 영화를 보든, 다 좋다.
그 또한 왜냐하면,
아침도 한낱,
지구 자전의 결과물이다.
지구가 돈다고 해서 너가 억지로 니 삶을 지구에 끼워맞춰줄 필요는 없다.
다만 때로, 새벽의 어스름이 보여주는
하늘의 색깔은 멈춰있지 않고 매순간 다르기 때문에,
가끔은 그 공기, 오늘의 생각, 오늘의 영감을 보고 숨쉬며 떠올려,
그 호흡을 저녁까지 이어가 본다면,
조금은 다른 발견이 있을지도 모른다.
사람들과 약속해둔, 해야 할 것만 끝내고,
나머지 시간에 멍때리는 것에 도전해보면 어떨까?
즉,
멍하니 있는 것으로도,
그대는,
멀리 가야만 여행이 아니다.
평소와 조금 다른 길을 걸어 집에 도착했다면,
그 또한 여행이고 여정.
그런 다른 길이 귀찮다면,
서점에서 산 여행책을 보며,
언젠가 갈 여행을 상상하는 것으로, 마음은 조금 쉴 수 있을지 모른다.
갈 수 있다면, 티켓을 지르면 가게 된다.
어딘가 도착해서,
아무와도 말이 통하지 않는 순간,
비로소 새로운 세계에 발이 닿는 것이다.
그게 여행이다.
너무 멀거나,
너무 비싸거나,
너무 복잡하거나,
극단적 쉼과 극단적 고생 그 경계에서, 고뇌하지 않아도 된다.
시간이 없어서,
밥맛이 없어서,
아파서,
피곤해서,
들른 곳에 원하는 메뉴가 없어서 등등,
못 먹을 이유도 많고 상황도 많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원하는 때에, 또는 배고플 때에, 밥 한 번 온전히 먹을 수 있는 것으로,
이미 충분히 그대는
맛보고 있는 것일 수 있다.
어려운 말로 정의하기보다,
어떤 마음닿는 선택을 자유롭게 한번, 하루, 혹은 1초 잠시 할 수 있다면,
그 또한,
70억의 인구처럼 70억가지 인생이 있듯,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합법적으로.
주변에 피해가 되지 않게.
그것만 지키면 된다.
망설이지 말고,
스스로에게 말해주세요.
내 머리를 톡톡,
내 어깨를 토닥토닥,
내 손과 다리를 토닥쓰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