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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조용히 Feb 13. 2024

집안일이 싫은 전업주부

집안‘일’도 ‘일’인 것을!

나는 완벽한 엄마를 가졌었다. 아침이면 칙칙 압력밥솥 소리와 타닥타닥 칼질소리, 고소하고 다정한 아침밥 냄새가 나를 깨웠다. 깨끗한 집, 옷, 언제나 내 편인 다정한 엄마를 보며 자랑스러웠고, 나도 크면 자연스럽게 그런 엄마가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고등학교 때부터 적성검사를 하면 나오는 내 MBTI에서 ‘가장 맞지 않는 직업’란 맨 위칸에는 항상 ’ 전업주부‘ 가 있었지만, 엄마는 적성을 초월한 인간 본능의 영역이라고 생각해 잘 해낼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다. 여성이라면 아이를 낳을 수 있듯이, 여성이라면 엄마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히 자신했다.

반대칸에 적힌 ‘가장 잘 맞는 직업’ 맨 위칸 ‘경영자’를 보며 고등학생 나는 생각했다.


전업주부가 집안의 경영자 아닌가?
자신 있어!


‘집’의 경영자라고 해서 마냥 쉽게 생각했던 건 나의 오만이었다. 경영학과 공부는 했어도, 그렇게 꿈이라 외치던 주부 될 준비는 하나도 하지 않은 채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결혼-임신-출산을 휘몰아치듯 끝내고 나는 맨땅에 헤딩하듯 살림을 시작했다. 혼수로 왕창 살림을 사 오긴 했는데, 써본 적이 없어서 인터넷만 뒤졌다. 갑자기 전업주부가 된 뒤로 4년 동안, 도무지 감당 안 되는 육아와 집안일에 바닥까지 우울을 찍고 결국 깨달은 것은, 집안일과 내조야말로 그릇이 큰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것이다. 나처럼 자기중심적인 성격은 주부 역할에 소질이 없다는 것도, 하지만 모든 커리어를 놓고 전업주부를 선택한 이상 어떻게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변치 않는 사실이었다.


나의 엄마는 타고난 전업주부였다. 시대가 만든 엄마의 역할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기도 했겠으나, 성격 자체가 그랬고 애초에 그릇이 큰 사람이셨다. 꼭 자신이 행복하지 않아도, 자신의 노력으로 다른 사람들이 행복한 것을 본인 행복으로 누릴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가족을 위해 하는 요리, 빨래, 청소 등을 하는 소소한 매 순간들이 그녀에게는 본인도 충만해지며 타인도 충만하게 만드는 값진 일이었다.

이런 성향을 여동생도 똑 닮아, 그녀의 취미 역시 빨래를 탈탈 털며 널 때 섬유유연제 냄새 맡는 것이었다. 두 모녀가 흥얼거리며 빨래를 널 때, 나도 당장은 공부가 바빠 그 재미를 모를 뿐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그녀들과 같은 여자니까, 결혼해서 아이 낳고 엄마가 되면 집안일을 즐길 수 있게 될 줄 알았다. 여자니까, 같은 여자니까 그럴 줄 알았다!


그러나 나는 나를 너-무 몰랐다. 사실 안 그런 척 숨기고 살지만, 나는 성격적으로 타고나길 정말 이기적이고 미숙하고 모자란 사람이란 것을!

기숙사에서 내 몸 하나 건사하며 살 때를 ‘자취경험’이라 치부하고, 나는 살림을 잘한다고 생각해 왔다. 기숙사 방도 깨끗하고, 닭가슴살 샐러드 같은 간단한 건강식으로 끼니도 잘해 먹고, 자기 관리로 꾸준히 운동해서 몸도 최상의 상태였기에 나는 내가 전업주부에 소질이 있는 줄 알았지. 하지만, 전업주부는 자기 몸 하나 잘 건사하는 직업이 아니다. ‘미인간’ 상태의 유아(하나면 다행이게, 둘, 셋 그 이상)와 자신과 배우자의 모든 삶을 관장하는 아주 복합적인 고난이도의 업인 것이다.


신혼 때까지만 해도 우리 집도 파리가 미끄러질 만큼 반짝반짝했다. 남편은 내 청소실력과 요리실력에 감탄하는듯했지만, 사실 다 큰 성인 둘이 어지르면 얼마나 어지르겠으며 두 명이 먹을 음식은 맵기와 염도를 신경 쓸 필요 없는 소꿉장난에 가까웠다. 임신한 몸으로 살살 깨끗한 집을 더 반짝거리게 정돈하고 재밌게 요리를 하고 퇴근하는 남편을 기다리는 삶이, 제법 마음에 들었다. 바로 그 녀석- 모든 집안일 효과를 도르마무 만드는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반짝거리던 거실에 매트가 깔리고 하나 둘 짐이 쌓여가면서 ‘이게 아닌데’만 외치다 보니 어느새 집은 <우리>에 가까운 형태를 하게 되었다. 귀찮음을 부여잡고 의무감으로 꾸역꾸역 겨우 해내는 집안일이 한두 시간만 지나도 원상태로 더러워지는 걸 보면서 서서히 집안일에 정이 떨어지고 있었다.


청소, 귀찮다. 누가 좀 해줬으면.

기본적으로 내가 청소하고 싶은 마음이 들어야 움직인다. 나의 노동으로 가족이 깨끗한 집에 사는 것이 보람차게 아니라, 더 이상 더러워지면 내가 스트레스받으니까 치운다. 먼지 날려서 아이가 아프면 내가 힘들어지니까 먼지를 닦는다. 그래서 내가 쓰는 방법은 일명 <배수진 전략>. 집에 손님을 일단 초대하고 본다! 그러면 창피당하기 싫은 미래의 내가 알아서 집을 빡빡 닦고 치울 테니 하하핫. 그렇게 깔끔하게 둬도, 어쩜 하루 이틀 만에 다시 청소 전 더러운 상태로 돌아가는지. 무의미한 노동의 반복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집안일이 싫어지는 이유인듯하다.


요리? 품이 많이 든다. 엄마 밥 먹으러 친정이나 가자.

매일 아침 최소 사 첩 반상에 국까지 곁들인 완벽한 밥상을 받던 나. 입은 고급인데 칼질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이 갑자기 엄마가 된 나는 좌절하고 만다.

소질이 있긴 한데, 열심히 만들면 맛있긴 한데, 그걸 매일 세끼를 해야 한다니. 이유식부터 난관이었으며 한 끼 아이밥과 어른밥을 하고 나면 주방은 초.토 화. 먹어본 가락이 있기에 영양밸런스를 무시하면 죄책감이 들지만, 엄마처럼 맛있고 멋진 요리를 해내기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현대과학에 감사하며 최소한의 노동으로 최대한 영양밸런스를 맞춰 차려준다. 특별한 요리는 내가 대충 차려주면 죄책감이 들 것 같은 날만 한다(주로 내가 먹고 싶은 메뉴로). 남편과 아들을 위한 메뉴를 할 때도 있지만 그 이유는? 먹고 싶은 메뉴를 해주는 내가 멋지기 때문에! 그 성취감보다 귀찮음이 크다면 미안하지만 해줄 수 없다. 내일 배움 카드로 요리수업만 몇 번을 듣고 심지어 제과 제빵 자격증까지 취미로 취득했지만 나는 요리가 귀찮다. 자고로 음식은 남이 정성껏 차려준 것을 느릿느릿 즐겁게 먹고 나서 돈 싹 내는 기분까지가 디저트로 완벽한 것 아닌가. 냉장고에서 재료 꺼내고 다듬고 쓰레기 모아 버리고 조리하고 밥 푸고 그릇에 요리 담고 곁들이는 반찬 한 두 개 통 열어서 꺼내 접시에 담고 다시 냉장고에 넣고 수저 놓고 먹고 설거지하고… 이걸 매 순간 즐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지!


빨래? 으 으 빨래! 비효율 비효율!

유년시절 매일매일 삼 남매를 포함한 다섯 식구 빨래를 산처럼 쌓아놓고 낮에 한 번 밤에 한 번 개는 엄마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어차피 입을 거! 왜 또 예쁘게 개야 하는 거죠? 왜 각까지 맞추는 거죠? 엄마가 비효율적인 것에 집착하는 미련한 사람 같았다. 하지만 이제는 나름의 실험을 통해 알게 됐다. 건조기라는 신문물이 있음에도 바로 개지 않은 옷이 얼마나 쭈굴쭈굴해지는지, 바쁜 아침에 빨래통을 뒤지면서 양말 짝을 찾는 일이 얼마나 다급한 일인지. 그렇다고 내가 엄마처럼 매일매일 빨래를 하고 개느냐? 아니다. 미안하지만 빨랫감이 바구니를 넘칠 때까지 이틀 삼일은 못 본 체하는 날이 대부분이다. 수건도 대충 두 번 개서 수건장소에 쌓아놓을 테니, 사우나처럼 씻으러 가는 사람이 수건 챙겨가기. 양말 뒤집어져있으면 굳이 다시 뒤집어 짝 맞춰주지 않고, 속옷은 좀 구겨져도 되니 그냥 바구니에 넣어놓는다.


우리 엄마에게 들키면 등짝스매싱 감인 적나라한 전업주부의 나태를 고백하는 이유는, 혹시 나와 같은 ‘적성에 맞지 않는 전업주부’들이 있다면 그대들이 이상한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서이다. 보고 자라온 ‘엄마 상’과 내가 받아온 기대인 ‘딸 상’ 그리고 결혼 후 엄마로서 기대받는 ‘새로운 나의 모습’이 갖는 괴리감에 자책하며 괴로워할 필요 없다는 것이다. 대차게 전업주부가 꿈이었다고 말하던 나도, 갓 이 직장에 취업(?)했을 때는 진심으로 절망했었다. 평생 내가 뭘 해도 그럭저럭 잘 해낸다는 자신감으로 살았는데, 이렇게 어렵고 하기 싫은 일을 평생의 직업으로 삼았다니! 후회막심이었다. 그냥 커리어우먼 할걸… 남편도 나도 똑같이 “공부만 잘해다오” 기대받고 살아왔는데, 심지어 내가 남편보다 더 공부 잘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여자라서? 임신하고 아기 키운다는 이유로? 한 번도 안 해본 일을 척척 잘 해내려니 될 리가 있나. 10대 20대 내내 학교에서 시험 잘 보는 법만 익혔는데, 정작 배웠어야 하는 건 내 한 몸 건사하는 걸 넘어서 배우자와 자녀까지, 주변까지 돌볼 줄 아는 ’ 어른이 되는 법‘이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시간은 약인지라, 이제는 제법 사람다운 살림을 영위할 수 있는 4년 차 전업주부가 되었다. 코로나블루와 육아우울감이 나아지는 동안 아이도 말이 통할 정도로 자랐고, 온 집을 둘러쌌던 아이 짐이 방 두 칸으로- 한 칸으로- 창고로 줄어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이가 우리와 같은 음식을 먹게 되면서 요리 시간도 줄어들고, 아이 짐이 없는 거실에서 충분히 휴식할 수도 있게 되었다. 전업주부 취업 4년 차, 이제야 좀 살림이 손에 익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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