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하고 남편의 제안으로 내가 가진 정보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 보고자 블로그를 시작했었다. 그런데 2023년 4월 3일 새벽, 리암이가 이 세상에 나오고는 출산휴가를 시작하면서 글을 쓸 여유는 한동안 갖지 못하게 되었다.
열심히 앞만 보며 달려오기만 했던 내게 일도 공부도 아닌 6개월 간의 긴 출산휴가를 갖는 건 처음 겪는 일이었는데. 산후조리와 24시간 아기를 보는 육아를 하다 보니 이건 휴가는 아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신생아 육아는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다. 직장인이라면 출근 뒤에 퇴근이 있고 학생이라면 방학이 있는데 육아는 시작만 있고 끝은 없는 듯 느껴졌다. 첫 몇 달은 잠도 편히 못 자고, 밥도 편히 못 먹고, 잠깐 밖에도 편히 나갈 수 없었다. 모유수유를 하다 보니 아기와 떨어질 수 없는 불편함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아이를 낳고 보니 처음으로 친정 엄마의 마음도, 그리고 다른 엄마들의 마음과 고충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사실 리암이 엄마가 되고 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서 우울한 시간도 있었다. 많이들 산후우울증을 겪는다는데 호르몬의 변화 때문인지 하루종일 육아만 하고 잠도 제대로 못 잘 때면 너무 지치고 힘들었다. 혼자만의 시간은 가질 수 없었고 내 생각을 정리할 틈도 없었다. 엄마의 정신건강을 생각하자면 잠깐이라도 나를 위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느끼게 되었다.
스위스에서 여성은 보통 16주간의 출산휴가를 받게 된다. 그 이후에 복직을 해야 하는 엄마들도 많이 있기 때문에, 공립 어린이집 (불어로 크레쉬, crechè)은 만 4개월이 지난 아기부터 받아준다. 칸톤별로 어린이집 자리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 공립 어린이집은 자리를 얻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내 주변에 지인들은 제네바는 임신 만 12주 차부터 크레쉬 대기자 명단에 등록할 수 있으니 최대한 빨리 하라고 조언했다. 임신 만 12주 차가 되면 스위스에서는 예정일이 포함된 임신 확인 증명서 같은걸 산부인과에서 발급해 주는데 크레쉬 대기자 명단에 등록할 때 첨부해 넣어야 한다. 나는 만 12주 차가 되자마자 신청을 했고, 일찍 등록한 덕분인지 리암이가 태어나고 만 3개월이 지나자 크레쉬로부터 연락이 왔다. 우리 집이 위치한 Eaux-Vives 지역에 크레쉬는 자리가 없어서 내가 다니던 직장 근처에 있는 크레쉬에 자리를 줄 수 있다고 말이다. 아기가 만 4개월 반이 되는 8월 중순부터 입학이 가능했다. 그렇게 리암이는 유엔 근처 O comme 3 pommes라는 크레쉬에 등록해서 만 5개월부터 다니게 되었다.
다만 임신 중기에 우리 부부는 제네바의 새로운 지역으로 이사를 오게 되어서 이사한 집 근처 지역의 새로운 크레쉬 대기자 명단에 신청을 해야 했다. 임신 12주 차가 아닌 임신 6개월 차에 신청이 들어가다 보니 자리를 받을 수 있을지 확실치가 않았다. 그런데 리암이가 이미 유엔 근처 크레쉬에 다니기 시작한 9월 초, 집 근처 크레쉬에서 연락을 받게 되었다. 결국 유엔 근처 크레쉬는 한 달만 다니다가 취소를 해야 했고, 바로 집 근처 EVE Monthoux라는 크레쉬에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 다니게 되었다.
리암이가 크레쉬에 가있는 낮 시간 동안은 내게도 조금의 여유가 생기는데, 아직은 어린 리암이를 떨어뜨려놓고 오는 게 마음에 걸리고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남편은 내게 언젠간 한 번은 해야 하고 우리는 그걸 조금 일찍 겪는 거라고 괜찮다고 했다. 무엇보다 보내지 않는다면 가족도 친척도 없는 스위스에서 우리가 리암이를 하루종일 케어하는 방법은 집에 도우미를 부르거나, 우리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다 그만두고 리암이만 보는 건데 그 어떠한 방법도 우리에겐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께 손을 벌리는 건 이미 출산 전부터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던 바였다. 부모님들도 이제 건강도 생각하시고 노후도 즐기셔야 하는데 우리 때문에 멀리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해외에 나오셔서 고생을 하시는 건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스위스에서 둘이서 리암이를 키워야 하는 우리 부부의 최선의 선택은 주중에 크레쉬에 보내고, 주말에는 세 가족이 함께 더 좋은 시간을 충분히 갖는 것이었다. 함께 있는 시간에 더 최선을 다하고, 떨어져 있는 시간을 더 잘 사용하면 나도 더 행복하고 아기도 더 행복해지지 않을까 싶었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기도 행복하니까 말이다. 올 9월부터 박사를 시작하기로 결정한 것도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다.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고 연구하고 공부하는 게 아직은 좋고, 힘들기는 하겠지만 내가 보람을 느끼고 가치를 느끼는 것들을 육아를 하며 같이 하고 싶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나의 걱정과는 달리 리암이는 크레쉬에 너무 잘 적응해 주었고 크레쉬 선생님들도 너무 좋았다. 리암이가 안전하게 사랑과 케어를 받으며 지낼 수 있는 곳이라서 마음이 놓인다. 나중에 다른 글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스위스에 크레쉬는 정말 정말 좋다. 그래서 내가 부모님이나 가족들의 도움도 전혀 없는 이곳에서 남편과 둘이서 육아를 하며, 박사 공부까지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