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OT Aug 23. 2024

소각된 다이어리

서커스

"들어왔다. 나갔다."


나는 서커스 단원으로 공중에서 그네를 타고, 절벽에서 공중제비를 하며 관객의 환호를 받는다. 이게 나의 일상이다. 그러나 무대 뒤 또 다른 공연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 다이어리 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다이어리는 내 비밀의 천막과 같다. 때로는 공중의 두 고리를 통과하는 느낌이다. 생각과 감정이 그 고리 안으로 들어오고, 나갈 때는 변해있다. 무대 위 화려함과는 달리, 여기서는 더 개인적이고 깊은 이야기가 펼쳐진다.


사람들이 웃을 때, 행복하지만
몸이 아프다.


펜이 종이를 스칠 때, 서커스의 막이 열리는 순간처럼 나는내면을 마주한다. 기쁨, 두려움, 절망이 다이어리에 들어와 자리를 잡는다. '들어왔다'는 생각과 감정이 다이어리에 적히는 순간을 의미했다. 모든 걸 종이에 써내려 갈 때, 나는 공중에서 뛰어내리는 듯 가벼워진다.


박수소리가 커질 때, 놀랍지만
떨어질까 두렵다.


'들어왔다'와 '나갔다'라는 과정은 두 개의 고리 같다. 지나가는 서커스의 정면들이 멈춘 듯 보이지만, 나갈 때는 예측할 수 없다. 들어오는 사건을 기록하고 정리하면서, 그 고리를 통해 나는 진실을 알게 됐다. 행복해도 절망스럽다는 사실을.


'나간다'는 사건들이 사라지기 직전의 잔상이다. 무대의 놀이가 끝난 뒤, 불이 꺼지면 다이어리를 쓴다. 펜을 꼿꼿하게 세우고, 얼마나 무서운지와 몸이 병들었는지를 낱낱이 적는다. 내 비밀스러운 묘기들이 펼쳐진 다이어리는 모든 경험을 기록했다.


하지만 이 다이어리는 이제 나만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감추고 싶은 것들이 가득한 다이어리는 읽지 않고서는 넘길 수 없다. 같은 단원이 내 일기장을 발견했다. 그 단원은 모두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그는 나의 아픔과 병든 몸을 떠들고 다녔다. 정신이 온전치 않으니 공연을 하는 게 아니라병원을 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이 나를 얼마나 아끼는지를 이야기하며 눈물을 흘렸다. 한 사건에는 두 개의 고리가 존재한다. 이 고리는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만큼만 생각할 수 있다. 가장 정직하게 자신의 불행을 인정한 서커스 단원을 아무도 인정해 주지 않았다.


완전히 망가지면
나올 고리는 더 이상 없겠지.


나는 내 몸이 가장 가벼울 때를 골라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웃음과 박수소리가 없이 무대를 나갔다. 더 이상 비밀스러운 서커스에 들어와도 새로운 공연은 없었다. 마지막 묘기가 끝나고 무대가 비어지듯, 모든 건 불에 타 사라지게 된다.

이전 09화 타오르는 단편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