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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T Aug 26. 2024

타들어가는 듣기

작은 쥐


자그만 생쥐 이야기를 들려줄게. 햄스터를 키워본 적이 있지만 쥐는 정말 무서워. 두 번인가 이 작은 생명체를 죽이고 나서야 깨달았지. 내가 얼마나 무책임했는지.


초등학교 때의 일이야. 교실에 들어갔는데, 아이들이 웅성거리고 있었어.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한 친구가 손바닥 위에 햄스터를 올려놓고 있었지. 햄스터는 둥글게 웅크리고, 반짝이는 눈으로 둘러보고 있었어. 하루종일 따라다니자 단짝은 그 햄스터를 하루 빌려도 좋다고 했어. 빨간색 뚜껑에 물방울무늬가 그려져 있는 작은 상자를 꺼내, 조심스럽게 햄스터를 그 안에 담았어. 햄스터는 상자 안에서 톱밥이 깔린 구석에 자리를 잡았지. 집에 와서 햄스터와 놀다 잘 시간이 됐어. '컴컴하면 무서울 거야, 숨은 쉬어야겠지?'라고 생각했어. 햄스터가 나오지 않을 만큼만 뚜껑을 비스듬하게 닫아 두었지. 그런데 다음날 아침, 친구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어. 자는 동안 햄스터가 나가려고 했는지, 아니면 내가 죽인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 상자 안에는 햄스터가 머리를 걸친 채로 죽어있었거든. 친구는 다행히 나보다 덜 슬퍼 보였어. 대신 다른 햄스터를 찾으면 된다고 했던가.


한참 지나, 나는 햄스터 두 마리를 집에 데려왔어. 마트에 가보니 새로운 코너가 생겼더라고. 작은 동물들이 상자에 갇혀있었어. 물고기, 새, 거북이, 햄스터 종류도 다양했어. 나는 햄스터들이 있는 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어. 아마도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이번에는 다를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지도 몰라. 서로를 밟고, 밟히는 곳에서 두 마리를 구출해 냈어. 이번에는 암컷과 수컷 각각 한 마리씩 데려왔어. 귀여운 새끼 햄스터를 꿈꾸며 집으로 갔지.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갈색 암컷은 점점 커져만 가고, 흰색 수컷은 몸집이 작아져 갔어. 이유를 알 수 없었어. 더 많이 먹으니까 곧 새끼를 낳을 때가 됐나 했지. 안전할 수 있도록 검은 천으로 덮어주었어.


어느 날, 햄스터의 밥과 물을 갈아주기 위해 천을 열었어. 그런데 깜짝 놀라서 햄스터 철창에서 멀어졌지. 파란색 플라스틱 지붕 밑을 들여다보니, 흰색 수컷 햄스터가 뻘겋게 변해 있었어. 그 장면에 충격을 받았지. 죽음에는 조금도 익숙해지지 않았어. 이게 두 번째임에도 여전히 충격적이었지. 알고 보니 햄스터는 다른 햄스터를 잡아먹기도 한다더라고. 이 작은 쥐가 이제는 불쌍하지 않았어. 오히려 눈앞에서 치워버리고 싶었지. 천을 꽁꽁 덮어두고, 누군가 가져갔으면 했어. 난 귀여운 모습만 보고 싶었던 거야. 지난번에도 이번에도 할머니가 햄스터를 치워줬어. 살아있던 햄스터는 버렸는지, 풀어줬는지도 난 절대로 물어보지 않았어.


길을 걷고 있었어. 좁은 길 위에서 작은 쥐를 발견했지. 햄스터만큼이나 작은 새끼 쥐였어. 놀라 뒤로 물러섰어. 그런데 그 쥐가 온전하지 않았어. 뒷다리가 으스러졌는지 질질 끌면서 기어가고 있었지. 마치 두 다리가 잘린 채로 기어가는 군인을 보여주는 전쟁 영화의 한 장면 같았어. 징그럽고 처절하지만 눈을 떼지 못했지. 난 용기가 없었어. 지나치는 수밖에 없다고 여겼지.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그 쥐가 안전한 곳에 도착하길 바랐어.


얼마 못 가서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더라고. 다시 보니, 멀리서 여자가 핸드폰을 보면서 걸어오고 있었어.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 '설마...' 여자의 발을 보게 되더라. 검은색 굽 높은 검은색 워커를 신고 있었어. 군화가 따로 없었어. 신호등 앞에서 초록불이 깜박였지만, 그 쥐와 발이 점점 가까워지는 걸 보고 있었어. '안돼...' 여자의 발이 그 쥐와 밟은 순간 "아!"라고 외쳤지만 늦었어. 더 소름이 끼친 건, 그 여자는 자기가 뭘 했는지도 모르고 계속 폰만 보고 걸어가더라고. 손으로 눈과 머리를 감싸 안고 앞으로 걸었어. 꿈틀거리며 기어가던 그 쥐의 모습이 잊히질 않았어. 그 쥐는 어떻게든 살아보겠다는 의지를 가지고 있었어. 결국 한 발자국에 끝이 났지. '빨리 간 게 나을 수도 있어. 차라리 죽여줘라는 말이 왜 있겠어?'라고 스스로 합리화해보려 해도 죄책감이 들더라. 처음 그 쥐를 봤을 때, 화단으로 옮겨 줬다면 어땠을까? 용기가 없었어. 기어가는 쥐보다 못했지.


횡단보도를 지나 그 자리에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어. 그곳엔 터져버린 새끼쥐가 있었지. 뻘겋게 변해버렸어. 제대로 볼 수없지만, 이대로 두고 갈 수도 없다고 느꼈지. 또 밟히고 짓이겨질 걸 생각하니 못 견디겠더라고. '낙엽으로 덮어서 쥐어볼까?' 생각했지만 무서워 다시 떨굴 것 같았어. 주변에 쓸만한 게 없나 둘러도 봤어. 지나가는 행인한테 물어도 봤지.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어. 좁은 길 위에서 왔다 갔다 하며 길을 막고 있으니, 이상한 사람처럼 보더라고.


이해가 되는 반응이었어. 두 다리를 질질 끌면서 기어가는 걸 보지 않았다면, 나도 이렇게까지 하진 않았을 거야. 주변에 무언가를 빌리기 위해 돌아다녔고, 다행히 한 분이 집게를 들고 도와주셨어. 그분은 화단에 얕게 땅을 파고 쥐를 덮어주었지. 나는 여전히 죽음을 손으로 마주하기가 쉽지 않았어. 낙엽 몇 장만 덮어주었지.


죽기 전, 살아있을 때 제대로 듣고 도움을 줬다면 달라졌을까? 죽음이 가까워져 버리면 거리를 조절을 못해. 당황스러워서 내가 듣고 싶은 대로 듣지. 내가 하고 싶은 대로만 행동하고. 책임을 지지도 못해. 결국 모든 게 벌어지고 나서야. 그 작은 쥐를 치우게 되지. 그것도 다른 누군가에게 부탁해서.


죽음에 무책임한 건 살아있는 것들밖에 없을 거야. 때가 늦기 전에 들어야 했어. 마음속 깊숙이 듣고 있어야 했어.

Deep down in my heart _ Liao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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