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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T Aug 28. 2024

허기

배가 고픈가?

허기가 지면 폰을 뒤진다. 입에 뭘 넣는 게 아니라. 액정 속탐나는 것들을 살핀다. 여기서 찾는 건 물건이 아니라, 나한테만 없는 무언가를 찾는다. 빈 곳은 많다. 돈으로 해결해도 멈추지 않는다. 배가 고파서만 이 욕구가 생기는 건 아니다. 부족한 마음은 무엇을 사줘도 소용이 없다.


회사 앞 새로운 오마카세 집이 생겼다. 유명한 셰프가 하는맛집이라 했다. 가격이 비싸다. 이미 주변 음식점도 비싸서 점심값이 많이 들어간다. 그래도 한 달에 한 번쯤은 특별한 음식을 먹어도 된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벌어서 무엇하겠나? 색색의 그릇에 예쁘게 담긴 음식들을 맛본다. 조금씩 먹으니 감질맛 나는 것 같다. 처음 먹어보는 별모양오이도 있다. 맛은 있는데 느낌이 싸하다. 술과 함께하며 일주일치 점심값을 단번에 쓴다. 문화생활을 했다며 만족해한다.


얼마 못 가 속이 좋지 않다. 구토가 오른다. 안 먹던 걸 먹어서인지, 뭔가 잘못 먹은 것 같다. 허기는 필요 이상의 음식을 원한다. 이건 더러운 회사생활 때문일 것이다. 일주일치를 한 번에 먹어서 그런가? 괜히 비싼 거 먹고 다 토했다. 허기가 허기를 낳는다. 고로 내가 산 건 밥이 아니라 허기찬 만족일 뿐이다.


새로운 립스틱이 나왔다. 이미 많은 립스틱이 굴러다니고 있지만, 이건 특별하다. 신상품이 왜 나오겠나? 유행에 뒤처지지는 말자. 장밋빛 레드 이런 건 이제 촌스럽다. 자연스러운 이 색상이 필요하다. 엿같은 말을 뱉느니 차라리 입술을 칠한다. 이게 좀 더 세련됐으니까. 결국 내가 산 건 화장품이 아니라 입마개다.


허기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가진 것에 만족하라는 게 말이 되나? 그 상태로 만족한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없는 거 말고 있는 걸 돌아보라는 말도 이상하다. 부족한 건 채워야 한다. 다만 어떤 걸로 채웠을 때 토하지 않고, 뻔하지 않을 수 있냐는 거다. 적당하게 먹고 취하는 게 어렵다.


연습하는 허기는 체하거나 토하는 시간을 지난다. 안정된 시기가 와도 또 허기에 시달려 돈을 버릴 것이다. 버리면서배우는 게 입맛이니 어쩔 수 없다. 이걸 사고 나면 배가 부를까? 얼마 못 가는 건 안다. 정말 먹고 싶은 건 못 사니까. 그럼에도 요즘 입맛은 알아야 굶어 죽진 않지. 그래야 재미가 있지.


Hunger_ Liaol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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