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언의 도시
그는 새로 온 이곳에서 혼자였다. 자신이 왜 여기로 왔는지그는 잘 알고 있다. 이곳은 ‘무언의 도시’, 말과 소음이 사라진 곳이었다. 그의 고통을 덜어주기를 바라는 곳이었다.
그의 이름은 한서. 언어학자였다. 그는 말을 연구하고, 문자의 의미를 파헤쳤다. 다양한 언어와 그 속에 담긴 배경을이해하는 일을 했다. 말과 글에 깊이 연관된 삶을 살아왔지만, 그는 점점 언어의 무게에 짓눌리고 있었다.
그는 문자를 볼 때마다 심한 고통을 느끼기 시작했다. 길을걸을 때 마주치는 간판과 표지판이 불편하게 느껴졌다.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형편없는 글자와 색의 도배에 화가 났다. 맞춤법이 잘못된 것도 참을 수 없어 분노가 치솟았다. 그는 어두운 선글라스를 끼고, 일부러 보이지 않은 척했다.
불필요하게 작은 소리도 필요이상으로 가까이 들렸다. 타인이 허공에 뱉고 가는 말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강박에 시달렸다. 무수한 언어에 스스로를 잃어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그가 이해할 수 있는 글자와 말에 대해서만 이런 반응을 보였다 점이 기이했다.
그는 ‘무언의 도시’를 알게 되었고, 그곳에서 새로운 시작을 원했다. 처음 도시에 발을 들였을 때, 거리에는 사람의 목소리나 기계소음이 없었다. 아무런 언어도 존재하지 않는 백색의 도시에 눈이 밝아졌다. 그는 완벽한 고요함에 감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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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의 신기한 점은 그저 알게 된다는 것이었다. 상황과맥락 속에서 모든 게 이해가 됐다. 더 이상 궁금해할 것도, 오해할 것도 없었다. 그에게 언어는 의미를 잃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내면에서 언어는 자꾸 올라왔다. 그에게는 여전히 언어의 잔해가 남아있었다. 언어를 사용하려 할 때마다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그러나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무엇을 골라 목구멍으로 뱉어야할지 모를 때, 그는 황량한 자유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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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의 도시’에서 부작용을 겪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도시가 제공하는 침묵이 자신들에게 필요한 치유의 열쇠 일 것이라 믿었지만, 오히려 혼란에 빠지게 되었다. 종종 자신이 뭘 하고 있는지, 왜 여기에 왔는지에 시달렸다. 이 도시는 그들이 찾던 평화의 표상이었지만, 고요함이 내면의 불안을 일깨웠다.
이런 사람들은 모여 치유의 방법을 모색했다. 그들은 도시의 하얀 벽과 구조물에 색을 덧입히기 시작했다. 구석구석 흰색만을 칠하며, 더욱더 하얗게 변해갔다. 그들은 ‘하얀 인간’이 되었다. 온몸이 흰색 페인트로 뒤덮였고, 이제 백색의 외피를 쓰고 있었다.
그제야 그들은 온전한 평화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고요함의 진정한 의미는 자신을 완전히 지우는 것이었다. 그들은 진정한 해방을 경험할 수 있었다.
백색 무언의 도시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아무도 없는 아주 고요한 곳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