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계절

피어싱

by Liaollet

해가 지고 있었다.

창밖을 본다. 어둠이 찬찬히 빈틈을 채워 마신다. 겨울 해는 늘 급하게 햇빛을 치웠다. 기다려주지 않았다. 겨울로 들어선 밤은 무심했다. 빛을 기대하지 않는 감각. 흘러가는 대로 빠르게 어두워지는 무대.


어느 때보다 짧은 가을이었다고 하지만, 나에겐 긴 가을이었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계절. 낙엽을 다 떨구고, 모든 게 땅에 들어가기엔 시간이 더뎠다. 빈 가지처럼 아무것도 붙잡지 못한 채 겨울을 맞이했다.


위스키를 따르고, 잔을 들어 살짝 흔들어본다. 얼음이 잔에 부딪힐 때 나는 소리가 좋다. 투명함이 차갑게 얼어서야만 낼 수 있는 소리. 컵 바깥으로 물방울들이 맺혀있고, 떨어지지 않으려 버티다 결국 흘러내린다.


너를 어떻게 흘려보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이해하는 것이 귀찮아 너를 사랑하기로 했으니까.

이해라는 말 자체는 불편했다.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관계를 원했다. 나를 닮은 너를 만나면 괜찮을 줄 알았다. 그런 건 없었다. 결국엔 너는 소리 없이 흘러내렸다. 너라는 존재를 나를 통해 증명하려 했으니. 나는 나와도 실패했다.


귓바퀴에 딱 맞게 꽂힌 피어싱이 살을 타고 조금씩 부풀어 오른다. 붉게 변한 주변 피부가 미세한 압박을 견디는 중이다. 작은 금속 조각 하나가 피부를 밀어내고, 또 밀어낸다. 그 틈에 숨겨진 염증은 조금씩 스며 나온다. 통증은 뾰족하지 않고, 둔하게 퍼져 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든다. 옳다고 믿었던 선택들이 결국 곪고 있다는 걸.


귀를 만지작거리다, 다시 잔을 본다. 위스키는 더 이상 차갑지 않다. 얼음이 다 녹았다. 피어싱을 떼어낸다. 남은 위스키에 툭 떨어진다. 금속이 잔 바닥에 닿으며 내는 짧은소리. 얇은 표면이 잠시 일렁이다가 금방 가라앉는다. 그뿐이다. 기대하지 않아야 실망도 없다. 특별할 것도 없이. 그저 그렇게.


얼음이 다 녹아 물이 됐다.

얼음은 누구의 사랑을 받아 녹은 걸까.


끝나지 않은 계절.jpg 끝나지 않은 계절 _ THE3FLO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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